이름 불러주기
여하튼 그가 그대에게
따뜻하거나 차가워졌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그대가 그의 사랑에
익숙해졌다는 방증이다
(그대가 겪는 이 현상은
사랑뿐 아니라
대개의 인간관계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사랑에 빠진 이들이 곧잘
걸려드는 함정이 그것인데
그의 사랑으로 그대의
희비가 나뉠 정도라면,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기 있다
그대가 곧 버려져도
이상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대가 그의 곁에 없을 때, 또는
이 세상에 그가 있는 줄
그대가 몰랐을 때에도
그가 <그를 사는 것>에
회의가 있었다거나
그 자신을 사랑하기 귀찮았기에
비로소 그대를 알고
그대를 사랑하기로 한 것이 아니다
한편, 어떤 사랑이든
사랑의 희비를 느끼는 것은
사랑의 주체인 그대 자신이다
그대가 왜 즐거운지, 왜 슬픈지
그가 전혀 모른다고 해도
대개는 그를 비난할 게 없다
툭 터놓고 이야기하자면,
그대의 즐거움과 슬픔이
그로 인해 좌우되는 것은
그대의 사랑이 하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으로
그대가 그를 거의
사랑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그대가 즐기지 못하는 사랑이
시나브로 그대를 배제하는 것은
봄을 기억하지 못하는 한겨울처럼
자연스럽다고 본다
선후를 따져보면,
그는 다만, 그대가 사랑해서
그대의 사랑이 된 것뿐이다
아무리 억지를 부린다 해도
그의 잘못이라 할 만한 것은
그 자신도 모르게 그대의 눈에 띄어
그대의 사랑을 눈뜨게 한 것이다
왜 그대의 사랑에 대한 희비를
그가 책임져야 하는가
그는 그대의 사랑을 위해
그대가 구매한 AI 로봇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