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다면, 타인으로

사랑엔 중고가 없다

by 어뉘



이해할 수 없다면, 타인으로



사랑에 빠진 그대가

그와 나눈 대화에

이해할 수 없는 화두는 없다


<여섯 시 삼분은 순간이야>

<생각이 같다면,

네가 필요하지 않잖아>


어떤 화두이든 간에

그대는 그와의 모든 대화를

명백하게 이해하며

그것을 이해한 자신에 대해

아무런 의심을 품지 않는다


<사랑해>


그가 하는 모든 말이

결국, 그 말이었기 때문이다



<여섯 시 삼분은 어제도 있었어>

<어렵다, 머리를 정리할

시간을 줘야지>


아무리 생소한 이야기일지라도

그가 하는 말이라면

설명 없이 알아들었는데

갑자기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대가 들어야 했던 말과 달리

그 자신을 위한 말은 언제나 어렵다


그가 한 말이

이 말이기 때문이다


<이제 사랑하지 않아>




아무리 어려운 말로 해도

그대가 듣는 말 가운데

가장 이해하기 쉬운 그의 말은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며,

아무리 쉬운 말로 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의 말은

<이젠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대의 잘못이 아니다

잘 알아듣던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가 더 이상 그대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가 더 이상 그대의 이해를

구하지 않는 탓이다)


그대가 하는 사랑은

그대의 것이든, 아니든

그대가 사랑으로 느낀

그 무엇으로 시작된 거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머리로 이해해야 할

무엇이 아니지만

그래도 따져보고 싶다면,

어쩔 수 없다


그대가 사랑한 것이

그가 가진 타인은

아니었을 것이므로,

그대 역시 사랑에

빠져있던 그대를

그대가 가진 타인으로

남겨두는 것에서

놔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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