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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Oct 12. 2018

어른이 사랑을 해?

생각편의점


어른이 사랑을 해?




어른은 이야기를 한다.


사랑이야기가 대개 우리 삶에서 도드라진, 그러나 한심한 이야기이어서 그런지 우리는 사랑하는 이야기보다는 사랑했던 이야기를 한다. 의식적으로 현재시제로 되짚으려고 해도 사랑에 사로잡혔던 이야기가 되고 만다. 현재 진행형 이외에는 사랑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간 진화에 포함된 삶의 방식과 달리 사랑이 진화에 포함되지 않은 탓이라고 본다. (이건 사랑을 해본 이들만 이해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어른은 이야기를 하고, 아이들은 사랑을 한다. 타협에 익숙해진 어른에게 사랑은 쉽지 않다. 사랑은 이야기할 줄 아는 어른을 싫어한다. 사랑에 빠져 아이가 되는 건지, 아이여서 사랑에 빠지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사랑에 관한 한 어른은 대개 아이들보다 사랑을 모른다. 사랑을 하나의 관계로 치환하는 데에 거부감을 보이지 않게 되면서 아이는 어른이 된다. 사랑을 하기보다는 사랑을 사용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어른과 아이를 나이로 구분하지 않는다. 나이는 인간이 가진 관습의 하나에 지나지 않아서, 그대가 무엇을 하든 그 관습에 얽매여서는 아무래도 제대로 된 사랑을 할 리가 없으니 그렇다. 


그대가 지금 사랑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겉모습과 달리 사랑에 빠지지 않았거나 거기에서 방금 빠져나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랑에 빠진 게 맞다고 우기고 싶다면, 사랑으로 보이는 관계에 불과할 테다. 사랑은 우리를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한가롭게 두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의 시간은 시계나 계절이 아니라 사랑으로 잰다. 사랑이야기는 사랑에 빠진 그와 그대가 그대들의 사랑을 분석할 때나 하는, <너와 나>만 통하는, 정신 못 차릴 정도로 고소하고 달콤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타인에게는 대개 유치한 이야기여서, 10년을 1년처럼 살게 하기도 하는 사랑이 지나고, 1년을 10년처럼 살게 될 때 해도 전혀 늦을 일이 없는 쓸데없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사랑이 맞나, 그게 사랑이냐는 의심을 받았다 해도 일부러 떠들 일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대가 사랑한다는 그에 관해서 타인과 입방아를 찧을 정도라면, 그대는 그를 절실히, 제대로 사랑하는 건 아니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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