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뉘 Nov 07. 2018

내가 미쳤었어

생각편의점


내가 미쳤었어




사는 게 선택의 연속이라 해도 그 선택의 양면을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 어려운 까닭은, 거시적으로 보아 현재 그 선택에 따른 또 다른 선택 앞에 놓이기 때문이겠다.


선택은 말 그대로 선택이므로 흡족할 수는 있어도, 만족을 보장하지 않는다. 거꾸로 말하면, 만족을 보장하지 않기에 선택이다. 로버트 프로스트처럼 대개는 <가지 않은 길>로 앓게 되는데, 선택에 만족하기 어려운 이유로 가장 그럴듯한 것은 그 선택으로 포기해야 했던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과 더불어, 요즘을 사는 우리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과는 다른, 가장 <그럴듯한> 선택을 위해 현실과 타협해야 한다는 것에 있을 터다.


뻔한 말이지만, 그것을 피하는 방법은 선택하지 않는 거다. 선택할 필요가 없도록 그대 자신이 미치면 된다. 정신과적 판단이 아닌, 흔히 말하는 <미쳤다>는 비이성적 이성을 말하는 건데, 그것을 모두 무모하다고 싸잡아 매도하는 건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삶에서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핑계는 <내가 미쳤었다니까, 글쎄!>인데, 이것은 역설적이게도 결혼뿐 아니라 죽음으로 가는 것이나, 사랑에 빠지는 우리가 우리를 위해 마련한 가장 합리적이며 안전한 핑계이다.


<뭐에 씌웠나 봐!>


살펴보면, 대개의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느끼는 달콤함은 비이성적인 것에서 온다. 자유를 끊임없이 입에 담으면서도 결정적 순간에는 어쩔 수 없다거나 도저히 피할 수 없다는 불가항력에서 오는 - 그것이 실제적 쾌감이든, 안정감이든, 소속감이든 - 구속의 쾌감을 부정하기 어렵다. 갈바람에 시려서 썰렁하던 옆구리를 채워준 그에게, 한밤중 지친 몸으로 되돌아온 집에 이미 전등을 켜놓은 그가 있다는 것에 그렇다. 


거기 더해, 미쳐서 한 선택이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든 이미 자신의 오늘을 위한 핑계가 마련되어 있으므로 살만한 삶이 된다. 이성(理性)이 종종 광기(狂氣)를 그리워해도 광기가 이성을 그리워하는 경우는 없으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미치지 않은 채 사랑하고, 미치지 않은 채 결혼하고, 미치지 않은 채 죽는다면, 그래서 사랑이 자신의 책임이고, 결혼도 자신의 책임이며, 죽음도 자신의 책임이라면, 그게 정말,  정말 <나>를 미치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미쳐서 사랑하고, 미쳐서 결혼하고, 마침내 미쳐서 죽는 것이 덜 억울하고, 조금 덜 슬픈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죽음에 관해서는 대개 남의 죽음을 슬퍼할 뿐, 기실 자신의 죽음을 슬퍼할 여유를 가질 수 없는 것이 인간이긴 하지만.


혹시, 결혼을 한다면 그대를 

비이성적이게 하는 그와 해야 할 이유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생전, 그의 시

<가지 않은 길>이 가진 함의과 달리

항상 <가지 않았던 길>에 대해 

주위 사람들에게 

회한과 같은 아쉬움을 토로했었다고 한다


그에게는 두 갈래 길의 차이가

거의 없었고, 따라서 시의 내용처럼

선구자적 길이 아니라, 그저 두 갈래 길 가운데

어느 한 길을 가보기로 선택했던 모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른이 사랑을 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