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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Nov 16. 2018

거짓말 즐기기

생각편의점

거짓말 즐기기





그대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적어도 

상대를 이해했거나 

이해했다고 간주할 때 가능하며,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정직해서라기보다는, 대개

상대의 마음에 신경을 쓰지 않거나,

곧 거짓말이 들통나는 아이처럼

마음을 읽을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많이, 더 깊이 이해할수록

그대는 더욱 거짓말을 잘하게 될 텐데,

거짓말은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거짓말이다

거짓을 공유한 둘 사이에는

그 거짓이 그들만의 진실로 머문다


<나 사랑받고 싶어!>

이렇게 말해서는 그가 기꺼이 

그대를 사랑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대는 우선 거짓을 던질 수밖에 없다

<나, 너를 사랑해!>

이 말의 뜻은 말 그대로가 아니라

너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뜻이다

사랑한다는 고백에 전혀

거짓이 없다고 주장해도 좋지만,

그대의 고백의 목적은 고백을 들은

그가 그대를 사랑하게 하는 것이므로

진실과는 제법 거리가 있다


사랑은 그가 불러일으킨 것이므로 

그의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은 그대 속에 산다

그러므로, 그대가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그의 속에 사는 그대에 대한 사랑을

그가 모를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할 수도 있다


진정한 사랑이라면 사랑하면 그만이므로

사실, 고백은 쓸모가 없다

(그런 사랑은, 요즘 삶이 각박해진 탓에

훼손된 모성(母性)을 많이 보지만,

전통적인 모성애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고백은 그대의 마음을 알아주기 바라는 욕구,

다시 말해 그의 사랑을 받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읽어달라는 애원과 다름없다


대개 사랑 때문에 아프다는 게 그것인데,

그 거짓말과 진실의 거리는

그대가 고백 후 느끼는 

아픔의 크기와 비례한다


그러므로, 어느 날 

그대가 그를 사랑한다는 것이 

그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것과

서로 무관하게 될 때, 사랑으로 앓는

일이 마침내 스러질 터다


어떻튼, 그가 그대에게 거짓말을 하는 한,

적어도 그대의 마음을 읽으려 하고 있으며,

그대의 사랑을 얻고 싶다는 뜻이 된다

그 거짓말은 대체로 즐겨도 좋다

왜냐 하면, 그대에게 거짓말을 하는 그보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그가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함부로 말하면, 나잇살이나 먹고 거짓말을 못하는 

그는, 알고 보니, 소시오패스일 수도 있다

데이트 폭력이나 치정사건의 주인공들 말이다)


동시에 갑자기 그가 거짓말을 전혀 하지 않는다면

그대가 어떤 상처를 받든 도외시할 만큼

이미 그대에 대한 사랑이 스러진 것일 수 있다


<너는 거짓말을 하지 않잖아? 

그게 내가 널 싫어하는 이유야.>

이별사로는 이런 게 그럴듯하다

(그렇다고, <왜 거짓말을 해야 해?>라고

 되물을 수 있는 그에게

그래야 할 이유를 설명해주는 건 위험하다

적어도 그대가 정말 사기꾼과 다름없게 되어버린 

그와의 관계를 이어가고 싶지 않은 한)


그런 이유로, 우리는 아무리 사랑해도 

사랑으로 앓지 않게 될 때까지,

그래서, 그의 사랑을 기대하지 않고

그저 그를 사랑하는 것으로 즐겁게 될 때까지,

마침내, 거짓이  거짓이 아니도록

거짓을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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