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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Apr 24. 2019

내가 그걸 아껴요

생각편의점


내가 그걸 아껴요




관능과 마찬가지로 사랑은 아직 진화를 한 적이 없다. 인간의 역사를 훑어봐도 우리 자신이 사랑으로 위로를 받을 뿐, 사랑이 우리의 삶을 위로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사랑은 머물고, 우리는 간다. 



사랑은, 누군가가 사랑하는 이유를 밝히라면, 과연 그럴 수 있는 사랑이 있는지, 아니면 그런 사랑이 뭔지를 먼저 밝혀야 하는 감정의 과학이다. 사랑에는 '그냥, 그렇게 되는' 이유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행복한 사랑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사랑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로 바꿔 읽을 정도로 사랑하지 않게 되는 이유는 늘어난다. 톨스토이가 본 가정의 모습처럼 사랑을 목적으로 두는 이들이 많기 때문으로 본다.  


사랑은 삶을 즐기기 위한 도구로 쓰면 안성맞춤이다. 도구는 항상 사용하는 이들의 손에 그 효용성을 맡기고 있다. 사랑할 줄 아는 그는 사랑을 따지지 않는다. 따지는 것이 쓸데없다는 걸 안다. 물론, 그 도구를 쓰는 그 자신이 중고일 수는 있지만, 사랑엔 중고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므로, 따지느니 쓰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것도 아는 이다.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정도가 어떻든 그것에 대한 집착이 생기기 마련이다. 사랑으로 착각하지만 않으면 그 집착을 나무랄 수는 없겠다.



흔히 솔직해야 한다고 하는데, 물론 그대를 위한 건 아니다. 솔직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 자신을 위한 것이다. 솔직함은 '그대가 가졌지만, 함부로 쓸 수 없는' 그대만의 무기에 불과하다. 


삶의 어떤 상황에서도 그렇지만, 그대의 소용은 그대가 솔직하지 않을 때까지이다. 솔직함은 그대의 관심을 끌 이유나, 그대를 보호해야 할 이유를 잃게 만든다. 내보이면 곤란하다. 쓴다면, 그대를 위해 써야 한다.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솔직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때를 포함해서, 그대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아도 전부를 가진 얼굴로 살아야 할 이유가 거기 있다. 


그대가 만나는 그는 어떤 인간이든 될 수 있는 만무방 인간이다. 그 앞에서 그대의 솔직함을 자랑하는 건 자폭행위와 다르지 않다. 행여 솔직하지 않다는 비난을 듣는다면, 더 이상 사랑하지 않거나, 그대에게 관심을 갖고 싶지 않다는 고백으로 새겨둔다. 


그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는 그대의 솔직함이 아니라 그 자신의 솔직하지 않음에 더욱 마음을 쓰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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