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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Mar 06. 2019

역설이랄 것까지는 없지만

생각편의점

역설이랄 것까지는 없지만




언젠가 우리의 인식이 서구를 따라갈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인식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응석과 애교를 많이 간직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죽여 버릴 거야!>다. 서구에서는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되지만, 우리의 정서로 보면, 우리가 그에게 죽이겠다고 외치는 것은 사실 죽이지 않겠다는 소리와 같다. 그가 스스로 서둘러 죽어서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긴 정도다. 


그 말을 듣는 그도 <죽이려면 죽이지, 쓸데없는 소리를 왜 하나?>라는 의문은 거의 품지 않고, 죽음의 공포 역시 거의 느끼지 않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그도 <오늘은 죽지 않겠군!> 하고는 마음 놓고 <어디 죽여봐!>라고 대거리를 하는 게 보통이다. 


물론, 어쭙잖은 상황에 처해 정말 그가 죽기도 한다. 그가 제풀에 넘어지거나 어딘가에 부딪힌다든지 해서, 또는 며칠 뒤, 어디에선가 그가 불상의 원인으로 죽을 수도 있다. 그러면, 혹시 자신의 그 말이 저주가 되어 그리 된 건가 하는 죄책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작정하고 죽일 생각은 없었으므로 깊은 조의까지는 아니어도 <가는 길>까지 따라가며 미안해할 건 없다는 걸 우리 자신이 안다. 


우리처럼 평범한 이들은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고 배운 사람들로, 그가 어서 죽기를 바랄 수는 있지만, 찾아다니며 어떻게 죽일까를 연구하거나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은 아닌 거다.


죽이겠다고 외치는 것이 죽이지 않겠다는 것에서, 샛길로 빠져보면, 쓸만한 생각을 몇 가지 얻을 수가 있다. 


잠을 자지 않으려면 잠을 자야 한다. 실컷 자고 난 다음에야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을 터다. 먹지 않으려면 먹어야 한다. 아무리 텅 비었던 위라도 마구 채워놓은 뒤에야 먹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뛰지 않으려면 열심히 뛰고, 걷지 않으려면 걸어야 한다. 거리에 나가고 싶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나가야 한다. 나가지 않으면서 나가고 싶지 않다는 건 당착이다.   


사랑하지 않으려면 우선 사랑해야 하며, 그리워하지 않으려면 우선 그리워해야 한다. 미워하지 않으려면 우선 미워해야 하며, 헤어지지 않으려면 우선 헤어져야 한다. 우선 사랑해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 터이고, 그리워해야 그리움이 가신다. 그리워해도 그리움이 가시지 않는 것은 좀 더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미워하면 미워하지 않아도 괜찮게 되는 법이다. 잠을 자지 않으려면 우선 잠을 자고 나면 된다. 마찬가지로, 죽지 않으려면 우선 죽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죽을 일이 없게 된다.


그가 아니면 안 된다고 여기니까 그와 헤어지지 않으려는 것이며, 헤어지지 않으려니까 마침내 헤어지고 마는 게 아닐까? 헤어져야 만나지 않겠는가? 


한편, 그대가 그렇게 사랑을 앓는 가장 큰 원인은 사랑할 만큼 사랑하지 않아서다. 사랑을 앓지 않으려면 사랑하는 동안, 사랑을 앓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랑할 만큼 죽어라고 사랑해야 한다. 그와 그대가 사랑한 건지는 들여다봐야 하겠지만, 그냥 봐도, 대개 그대 자신 탓이다. 왜냐고? 아니, 그대가 겪고 있잖은가? 설마 그와 그대의 사랑을 지켜보던 사랑을 위한 장식들 탓일 수는 없잖은가. 뭔가, 사랑은 자신이 해놓고 아프니까 남(혹은 그) 탓이라는 건가? (어디서 많이 본 '심뽀'이다. 아무래도 그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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