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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Jan 24. 2019

거리에서

생각편의점


거리에서




데스마스크(Death Mask)와 다르지 않은 무표정한 얼굴을 하는 것은 죽은 것으로 치부해달라는 애원이거나, 무엇이든 관련되고 싶지 않다는 거부와 다를 바 없다. 전혀 다른 것 같지만, 표정 근육을 중력에 맡긴 우리의 무표정은 오만상을 찌푸린 채 접근하는 것이 우리를 다루는 데에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동네 건달의 표정과 그 성질이 같다. 건달이 우리에게 왜곡된 경외를 기대할 때, 우리는 타인에게 자기애적 경외를 기대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더 세련된 건 건달이다. 길 위에 선 그는 확실한 태도를 갖고 있다. 어떤 순간이든 광장에 나선 자신이 건달로 보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살아있어서, 자신의 삶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표정도 표정이고 거기 삶의 흔적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거리에 나섰을 때의 그대의 표정은, 그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대가 누군가에게 맨 처음 주는 보시(布施)가 된다.



갇혀있다는 것은

할 것이 없다는 것과 같다

한편, 그대가 할 것이 없다면

그대 자신에게 갇힌 것이다



보인 대로 말하지 못하는 건 수줍음 탓인 듯하지만, 비겁함을 감춘 채 그대 자신을 보호하려는 이기심의 또 다른 표출이다. 그대의 기호와 호오와 애증을 어쩔 건가. 삶이 시간으로 엮이는 한, 결국 억울해지는 건 그대 자신이다.



살아야 한다는 것과 죽어야 한다는 것,

삶의 조건은 그 두 가지다

그 이외에 조건에 그대가 묶인 듯하다면

괜한 자학이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고독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을 느끼는, 또는

말하는 그대가 문제다

고독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그대가 만들지 않으면

삶에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당착이다



배우가 가장 같잖게 여겨질 때는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때이다. 제대로 된 배우라면 연기하지 않는다. 삶을 보여준다. 그런 걸 보면, 그대가 사랑하는 것을 그가 느끼지 못할 때 비로소 사랑이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떻게 그가 모르게 사랑할 수 있을 텐가? 기망할 관객이 있어야 하는 배우와 달리 그대 자신을 토해내야 할 테니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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