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뉘 Sep 16. 2020

쓸데없어서 고맙지요

사랑엔 중고가 없다

쓸데없어서 고맙지요



우리는 보통,  더는

사랑이 아닌 이야기를

사랑이야기라고 합니


틈만 나면 사랑하고 있는 듯

되새김질을 하지만,

사랑했던 이야기이거나

사랑에 관한 이야기


그러니까 그대와 내가

사랑이야기를 한다면,

사랑하기 전이거나

사랑이 지나


(우리가 싸우는 건

사랑하지 않을 때라는 걸

기억 둘 필요가 있습니


사랑하기 때문에 싸운다?


역사 속의 독재자들이

흔히 했던 소리

우리는 그러다가 칼을 들

그러다가 총을 )


그래서, 밖에서는 알 수 없는

둘 사이의 역사 때문에 

상대적으로 단순한 성과 달리

사랑이 이해하기 어려운 겁니다*




말하자면,

"같은 번호를 쓰려니까

혜택이 별로 없네."

혹시, 낡은 휴대폰을

새 것으로 바꾼 내게서,

이런 따위의

전화를 받을 수 있습니

맥 없는 전화이

그러나, 사랑엔

쓸데없는 게 없습니

대개는 쓸데 있는 것보다

쓸데없는 것들로

우리는 사랑을 합니


(필요하다는 건 일종의 조건이므로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기보다

같이 있으면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낫습니

달리 말해, 사랑해야 할 사람과

사랑하지 않아도 좋은 사람 가운데,

사랑을 길게 본다면

그대는 후자가 되는 게 나을 겁니다

시작은 어렵겠지만 말이지요)


눈꽃이 만들어지듯,

가랑비에 옷 적시

그대 주위에 함부로

나를 뿌려 놓는 영리한 짓을 합니


무시로 그대 기억  

더덕더덕 붙은 게

사랑 아닌 사랑이야기라고

그대를 자꾸, 이야기지만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의미가 되고

그것이 그대와 나의

오롯한 역사를 만들어 갑니


"너, 사랑하는 거?"


어느 날 느닷없이,

어딘가 말끔해진 얼굴로,

또는 지난밤을 새운 날 선 얼굴로,

아니면, 내가 그대를 사랑한

모든 역사를 그제야 이해한 듯

그대가 그렇게 따질 수밖에 없을 때,

나는 그대를 말릴 생각은 아예

하지 않기로 하고 있습니







*사랑 9  (혹은누군가를위하여) 


제철에 나온 과일처럼

사랑도 대개

마음을 다독이며

익힌 것이 맛도 좋고

오래가는 법이다











작가의 이전글 그대가 전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