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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Jun 14. 2024

멍석을 펴지 않아도, 사랑은

생각편의점

멍석을 펴지 않아도, 사랑은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폭력과

친절한 미소 속에 감춘

섹스만 남은 듯한 요즘이고

사랑이 섹스를 위한 구실로서

같잖게 쓰인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을 꾸준히 쓰는 이유는,

그래도 우리를 찾아온 사랑만큼

사람의 맛과 사는 맛을 느끼게 해주는

사정(事情)이 달리 없기 때문입니다


다들 아는 것이지만, 사랑과 달리

결혼은 사랑 여부를 묻지 않습니다

결혼의 필수조건이 아닌 겁니다

사랑해서 결혼하고 싶다고들 하지만,

사랑을 빙자한 이기심과

배타적 점유욕의 실현이기도 할 겁니다


결혼이 나의 행복을 위해

너를 묶어두려는 것이라면

사랑은 너의 행복으로

내가 행복하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이

'연애의 무덤'이라는 데에

동의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결혼한 후에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게 되는 건,

뭐, 우리가 어쩌겠습니까


(신자유주의 경제 체재 아래

없는 경쟁과 사회와의 반목으로

점점 더 삶이 팍팍해지면서

비혼과 독신을 자주 입에 담지만,

이 편의점에 입점하대개의 이야기는

결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소소한 비용으로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다시 강조해야겠습니다)


사랑은 조건으로 쓸 수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만,

한마디로, 삶 안에서 조건이 달린

모든 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겁니다

흔한 예를 들면, 예쁘니까

사랑하는 건 기호이기 쉽지만

사랑해 예쁜 건 사랑입니다

곧 흔적만 남긴 채 스러질 예쁨이,

사랑해서 예쁘게 보이면

여든둘이 되어서도

그의 예쁨을 볼 수 있을 테니까요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만,

어떻게든 때가 되면

죽어 잊힐 당신 자신이

사람으로 태어난 즐거움을

잠깐이라도 누리고

스러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늘 '사랑'을 쓰고 있습니다




인간은, 신과 달리, 사랑을 두고

감탄고토(甘呑苦吐)는 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사랑에 관한 한은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이걸, 신이

사랑에 빠진 적이 없다는

증거로 쓰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관능을 갖고 있지 않은 신은

원래 사랑을 잘 모를 겁니다)

제대로 된 사랑은 사람이 합니다


사랑에 빠진 우리는,

사랑으로 일상을 덮게 되면서

그가 밟았던 먼지마저도

사랑하지 못해

안타까워질 수도 있습니다


상대의 모든 것에 의미를 두게 되며

극히 사사로워집니다

이미 해본 당신은 알겠지만,

그가 가진 어떤 것은 좋지만,

다른 것은 안 된다고 쉽게

구분할 수 없게 되는 게 사랑입니다


아무런 추임새 없이

서로의 삶이 서로에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얼핏 생각해도 사랑이라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재를 부정하고 있는

사랑에는 맥이 없습니다

사랑한다면서 자신의 현재를

무시하려는 건, 상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독백일 수 있으며,

그런 당신에게 왜 과거와 싸우냐고,

비난하지 않는 것 역시

그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무의식적인 독백일 수 있습니다

 

"왜 당신의 삶을 부정하려는가?

내게도, 내 삶에게도 그럴 건가?"


오히려 핀잔을 날려야 할 터입니다

현재를 있게 한 과거 역시

사랑할 수밖에 없어야 합니다


현재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

사랑이랄 수 있는 건지

자신에게, 그리고 그에게도

물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그를 말리지 않으며,

힐난조차 하지 않는 당신은

과거와 현재를 부정하며,

현재가 아닌 미래를

사랑한다고 우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오지 않은 미래의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와 내'가 만드는 모든 현재를

사랑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서로를

받아들인 이들을 들여다보면,

의외로 상대의 과거를 무시하며

상대와의 미래를

사랑하겠다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미래의 그를 미워할 수도 있다는

다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관계에 조건이 붙으면,

많은 것이 지저분해집니다

그 조건이 아무리 사랑이라 우겨도

사랑이 아니라 동정으로 묶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아무리 사소한 무엇이든 포기하도록 한다면,

그대의 사랑은 제대로 된 것이 아닐 겁니다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자신이 이뤄온 삶을 포기하도록

강요하지 않은 로버트와 프란체스카가

서로 사랑한 것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영화감독 홍상수와 배우 김민희의 사정이

과연 사랑인가 싶은 이유는

우리 사회의 윤리 도덕백안시하고라도

사랑에 감동할 준비가 된

순수한 관객의 시선으로는 

흔한 자기애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즉물적으로 말해,

프란체스카가 가정을 떠났다면,

그리고 그의 선택을 기다리기보다

로버트가 그렇기를 강요했다면

한심한 남녀에 그쳤을 터입니다


한편, 홍상수가, 말하자면, 

가족 앞에 무릎이라도 꿇고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해 준

당신과 우리 아이,

우리의 삶이 소중하지만, 나를

내가 어쩔 수 없다" 사정하고 있다거나,

김민희가 "당신이 나를 위한다면

당신의 가정을 지켜야 할 거다

모두에게 상처를 입히고

내가 팔랑팔랑 뛰며 즐거워해야 하나

하물며, 나 아닌 또 다른 사람이

너의 마음에 들어갈 때, 나도 미리

준비를 해야 하나" 다독였다면

서로는 사랑이랄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도 사회의 비난은 여전하겠지만

그 비난의 색깔은 좀 다를 겁니다)


사랑의 속성이 바뀌어서,

상대의 삶에 대한 배려 없이

적나라한 비난 속에 던져 넣는 것을

사랑이라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과거의 삶을 서로 보호하지 않는 사랑은

배려가 없는 이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사랑은 그저 '하게 되는 것'으로,

그의 유쾌한 삶을 바라는 것 외에

바라는 것이 무엇이라도 있다면

사랑이라기엔 모자랍니다

 



모든 이들이 갖고 있는 관능이

당신에게만 없다면, 당신은 지금

죽어있는 겁니다


신이 자신에게 사랑을

달라고 끊임없이 조를 때

우리 인간은 달라고 하지 않아도

기꺼이 사랑을 줄 수 있는

능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사랑도

할 수 있는 준비가 다 된 겁니다


혹시, 나이, 성, 빈부를

사랑의 걸림돌로 여기는 당신은

사랑을 즐기기엔 모자를 겁니다

자신의 틀에 자신을 가두고

너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겁니다


그 걸림돌을 들여다보면,

늙은 당신은 외면당해야 하고

성은 당신을 가두거나 구속할 것이며,

가난한 당신은 버림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혹시 당신의 내적 책임감을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는 내 곁에 있어야 하고

내가 돌봐야 하고

내게 만족해야 한다"


당신은 당신의 '나'에게

모든 것을 맞추려 하지만,

그건 신도 못하는 겁니다

그는, 당신이 없었어도

지금까지 잘 살아왔던 사람이고,

그러지 못할 이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사랑하는 겁니다


사랑은 조건을 무시하게 되는

관능의 다른 표현입니다

당신이 내건 조건이

현실적으로 타당해 보인다면

자신이 하려는 사랑이 혹시

다른 무엇을 위한 '구실인가, '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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