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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Mar 24. 2023

내 탓이 아니오

생각편의점


내 탓이 아니오



모든 게 내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내 탓이 아니라고

말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아니면, 착하게 사는 내가 

미칠 수도 있으니까요


사랑은 하면 됩니다

사랑이 맞다면 말이지요

그걸 들볶는 내가 문제입니다

고독도 문제 될 게 없습니다

그것을 곰삭히고, 

괴롭히는 내가 문제입니다


그런 류의 '마음 동냥'은

나를 의식하면 십중팔구 

나 자신을 갉아먹습니다


그래서 영리한 사람은

아예 마음을 주어 버립니다

'사랑해서 기뻤노라'

돌려받을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미친다는 게 내 문제인 듯하지만

어쩌다 거리에서, 아니면 누리집에서

미친 나와 맞닥뜨린 당신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또는 불행을 

안겨 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미치지 않으려는 이유와

미치면 안 된다고 하는 이유는

특정할 수 없는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한 겁니다



"내 탓이오”


천주교평신도협의회에서 시작한

몇십 년 전의 이 사회 운동은 

당시,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졌지만,

요즘은 죽으려면 혼자 죽으라는 

악담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 살면서도

각자도생이라는 것을 

일깨워준 일들을 기억합니다

세월호 참사가 그렇고

10.29 참사가 그렇습니다


'내 탓이오'


이 생각은 달력의 붉은 숫자가

너무 적다고 느끼는 우리가 

입에 달고 다닐 말은 아닐 겁니다



정신 병리를 다루는 

정신과의사와 달리

점차 그 역할이 

커지고 있는 심리상담사가

자신의 환자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덕담이라면,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숀 맥과이어가 윌 헌팅에게 

하는 말과 비슷해야 합니다


“네 탓이 아니다,

네 잘못이 아니다”


논리도 없고, 밑도 끝도 없는,

흔해서 싱거운 말인 듯하지만,

이 말이 사람을 살릴 겁니다


우리는 아랫도리를 까내리고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았을 때나

내 주위의 것들과 

사적인 관계를 맺을 뿐,

대개는 사회적 존재로서

'너'를 인식하고 삽니다


나로 비롯되는 것들에 대해

그 근거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내 탓이 아니라는 확언이

착한 '나'를 살린다는 건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닙니다


"네가 공부를 잘못하는 건

네 탓이 아니다

너를 잘못 가르친 탓이다

그러나 네가 

공부를 잘하는 것은

네 덕분일 테다

스스로 하지 않고서야

공부를 잘하겠나?"


내가 잘 못되어도, 언제든

그게 내 탓이 아니라는 핑계를

갖고 사는 게 좋을 겁니다


내가 죽을둥살둥 살다가 

기어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는 것까지 즐겁지는 않겠지만

그게 내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건

꽤 즐겁지 않을까 싶습니다




"부족하지 않은 나의 환경이

누군가에게는 특권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깨닫게 된 것 같다

또래에게 미안함을 가지는 게

자연스러운 과정인 것 같다"


한 청년의 이 소회에는 

불특정 된 '너'로부터 

심리적 압력을 받은 청년이

자신을 반추해야 했던

서늘한 마음이 보입니다


사르트르의 말처럼, 

여타의 사물과 다르게

우리 인간의 본질이

규정되지 않았는지, 

그 여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철학자의 말대로

'던져진 존재'라면, 우리는

'내 탓'으로 돌릴 만큼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합니다


이 사회에 던져진 그 순간부터

사회가 내게 요구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내 생존의 조건입니다

수용하지 않으면, 도태될 겁니다


주어진 조건을 무시해도 좋을 만큼

녹록하지 않은 삶에, 그것이

비난받을 '거리'는 아닙니다

타인을, 자기 위주로 해석하며

충분히 알고 있다는 

착각과 함께 살면서, 우리는

저마다 주어진 것을 쓰며

저마다 독특한 삶을 이어갑니다


우리에게 특권이 있다면,

내가 '나'일 수 있는 것뿐입니다

그밖에 우리에게 

불가침 한 특권은 없고,

그것을 바꿀 재주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던져진' 후

마침내 삶을 거둘 때도 나를

내려놓는 주체가 나인지, 

내 몸일지 알 수 없습니다 

적어도 나 자신이 아닌

무엇인가가 이 세상에서

나를 없앱니다


종교의 유무를 막론하고

우리가 태어나는 것과 죽는 것도

'내' 탓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에 던져졌다가 사라지는

거기에, 내 탓은 없습니다


이쯤에서 새겨야 할 것이,

길을 걷다 넘어졌다면

그 길을 간 내가 문제인지,

발에 걸린 돌이 문제인지,

내 발에 눈이 없는 게 문제인지, 

얼굴에만 눈이 달려서 문제인지

따져봐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탓이 아니라'는 것이

곧, '네 탓이라'라고 우기거나 

말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게 당신 탓이지, 

내 탓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과는 다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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