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편의점
어쩌다 짬이 난 덕에
잠깐 할 일 없는 때가 있습니다
"이래도 되나, 혹시
할 일을 잊은 건 아닌가"
잠깐의 여유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하거나
서먹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삶이
'해야 할 일'에 맞춰
학습된 덕분일 겁니다
맨 푸른 하늘보다는
구름 한 점 걸려 흐르거나,
아니면 바람 한 올이라도
머리카락 사이에 머물러야
맥쩍잖게 느끼는 것도
같은 심리적 맥락입니다
누군가의 소개로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들썽이는 마음을
어쩔 줄 모르겠는, 그 순간조차
우리가 열심히 산다는 방증입니다
못 지킨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럴듯하게 그린 시간표를
벽에 붙이며
흐뭇해하던 그때도
우리는 열심히 살았던 겁니다
사실, 그게 일상이어서
열심히 산다기보다는
그렇게 살아내는 게 삶이지요
그 버거움을 잊게 하는
열정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더구나 요즘처럼
찐 밤고구마 두어 개
목에 쑤셔 넣고 사는 듯한 때를
열정으로 채우는 건 어렵습니다
굳이 우리 삶에서
열정적이라고 할만할 때는
먹을 때, 배설할 때,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잠잘 때 정도로, 대체로
생리현상과 맞닥뜨렸을 때일 겁니다
죽지 않으려고 살면서
여지없이 가야 할 길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이
열정적으로 끝을 향해 간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삶이 고달픈 걸 겁니다
다행인 것은
불행, 또는 행복할
개연성이 충분하다 해도,
그것을 다루는 사람의
나름에 따라 다르다는 겁니다
요즘, 상상이 파고들 여지가 없이
엄연한 삶밖에 없는 시기에,
그 고달픔에서 벗어나는 데는
사랑에 빠지는 것보다
나은 것이 있겠나 싶습니다
왕가위의 영화와는 관계없이
말 그대로 '내' 삶의 사적인
화양연화(花樣年華), 아니면
의미는 조금 다를지라도
벨 에포크(La Belle Epoque)라고
할 수 있을 때는
사랑에 빠져 있는 동안일 겁니다
많은, 영리한 이들이 그러듯이
그저 삶을 앓느니, 지금
사랑에 빠지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저 막말로, 죽지 못해서
버티는 때와는 달리,
흐드러진 그 '봄'을 건너면
서너 해가 마치
한 해처럼 지나간
뒤일 수도 있으니까요
누구를 사랑하나, 아니면
무엇을 사랑하느냐는
전혀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 혹은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한 사랑이
고달픈 나를 위로합니다
그가 아니라, 그를 사랑하는
나 자신이 나를 위로합니다
하기야, 애착인형이 스스로
나의 사랑을 받는 덕분에
물불 가리지 않을 일은 없겠지요
나의 애착담요,
혹은 반려견, 반려묘가,
그리고 나를
사랑에 빠지게 한 '그'가
나를 위로합니다
"사랑하게 되지 않아, "
그가 나를 부담스러워한다면,
사랑하지 않는 것도 역시 사랑이어서,
그를 사랑하지 않으려는
감정의 성숙함이 나를 위로합니다
세상을 사랑해서 세상 탓인가 싶고,
그를 사랑해서 그의 탓인가 싶지만
기실, 나를 망가뜨리는 건 나 자신입니다
창피하게 사랑을 구걸하지 않고,
나를 사랑할 이유가 없으며
사랑하지 않을 자유를 가진 그일지라도,
그가 사랑스럽다면
나를 위해 사랑에 빠지는 겁니다
장담하는데, 그 사랑이
울증(鬱症)에 빠질까 두려운
이 몇 년을
훌쩍 지나가게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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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out love, You are not in living, but in maintaining not to be dead.
- A Romantic Excuse by d-G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