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등 굽은 어미는 간신히 발을 옮긴다
딸은 어미의 한쪽 팔을 부축하고 간다
그 딸의 옆, 키만 멀거니 큰 딸의 아들은
끊임없이 어미의 귀에 투정을 하며 간다
아들이 끊임없이 내뱉는
투정소리가 마뜩잖지만
한 귀로 흘려들어야 한다는 걸
아들의 어미는 안다
나란히 가고 있는 그 꼴에 울컥해서
어쩌다 눈시울을 적실 때가 있다
그래도 사람으로 사는 모습인 데서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다
딸의 어미는 딸의 아들의
투정을 잠재울 수 없다
딸의 아들은 딸의 어미가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안다
딸의 아들은 할미를 부축하는 것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래서 등이 굽은 할미는
손자의 투정에 관심이 없다
키만 멀거니 큰, 딸의 아들은
할미에게 관심이 없다
아무리 살펴도 이런 그림에는
딸만이 죄인이다
버릴 수 있는 게 딸에게만 없다
버릴 수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어미나 아들을 버리는 딸은,
늙은 할미와 제 어미를 버리는
아들이 얻어들을 비난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혹할 게 틀림없다
피할 수 없으니 버틴다
당대를 사는 당신이 한쪽에 선대를,
다른 한쪽에 후대를 매달고 가는,
그리 살 수밖에 없는 당신의 현재를
늘 응원하는 이유이다
당대가, 선·후대와 달리
삶을 가장 격렬하게 즐길 수 있는
세대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인생 고해는 원래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고해를 사는 듯하다면
살아야 할 이유에 비해
사는 이유가 마땅찮기 때문이다
살아야 할 이유는 딱히 없어도 좋다
하지만, 사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사는 이유로서는
사랑이 가장 그럴듯하다
그렇긴 해도 그것이 살고 싶은
욕구를 주는 건 틀림없지만,
사랑이 없어도 사는 데 지장 없다면서
그것으로 한정하는 건 '나'를
너무 단순화하나 싶기는 하다
그런데, 시키지 않아도
하고 싶은 게 달리, 뭐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