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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 않는 당신은 쓸모가 없다

생각편의점

by 어뉘

사랑하지 않는 당신은 쓸모가 없다



이미 자신을 알면서도

유리창이나 거울을 지나칠 때,

우리는 그 속의 자신을

모르는 척 지나가지 못합니다


우리를 지나치는 이들은,

우리 자신도 그러듯이,

타인에게 보이기 전에

오른쪽 볼에 있는 작은 점이

어떻게 보여야 매력이 될지,

자신의 눈을 납득시킨 뒤

우리 앞을 지나간 겁니다


물론, 우리는 그의 점을

기억하지 않아도 좋고,

자신의 미모를 드러내려고

앞머리 머리카락 한올을

어느 쪽으로 넘기는 것이

좋을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걸 다시 생각하면,

스쳐가는 모든 이들이

자신이 거울에서 본모습으로

우리가 그를 봐줄 거라고

낙관하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너무 매정하다 싶습니다

나아가, 누군가 하루를

아무리 엉성하게 사는 듯해도

열심히 살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은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공감 능력을

깎아내는 일이란 것을 이해할 겁니다



여하튼, 생각이라고는 전혀 없는

거울이어서 우리는 그 속의

자신을 바라보는 자신의 '생각'을

살피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안의 나를 살필 때만

힘을 발휘하는 거울은

우리의 자기 합리화까지

헤아려주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타인이 함부로 뱉어내는

합리적이지 않다는 비난이

그다지 괴롭지 않은 이유는,

그 거울 속의 '나밖에 볼 수 없는

나'를 사랑하는 게,

타인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우리 자신에게는

합리적이어서 그럴 겁니다


어쨌든, 그것이 우리를

쓸모 있는 인간으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쓸모라는 건 늘 소용에서 생기니까요


또한,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는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쓸모가 없습니다

내가 사랑하지 않는 것은

그가 나를 사랑할 때

비로소 힘이 생기고,

나의 쓸모를 키워줍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쓸모를 자랑하려면

그가 당신을 사랑하게 해야 합니다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는 세상을

탓하는 사람은 자주 보았습니다만,

자신을 쓸모없게 만드는,

사랑하지 않는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당신이 세상이 무심하다느니,

삶이 뭐 대수냐 하는 건

자가당착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랑할수록 있지 않던

우리의 쓸모가 만들어지고,

마침내 그가 나를 사랑하게 될 때

나의 쓸모는 나도 모르는 곳에

더덕더덕 달라붙게 될 겁니다


그런데, 그걸 유지하려면,

다시 말해 꾸준히 사랑하게 하려면

우리의 삶이 피곤해지지 않을까요?


그래서, 지독한 우연으로

세상에 태어난 당신이지만,

모두를 사랑하려 하지 않아야 하는 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받을

'선택받았다'는 즐거움, 말하자면,

자신의 쓸모를 확인하는 즐거움을

빼앗을 건 없겠기에, 그렇습니다


'모두'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그 말은 사랑에 관한 한

가장 형편없는 말일 겁니다

그 '모두'에 포함되고 싶은 '나'는

이 세상에 없을 테니까요

자존감이 부족한 이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만


당신이 만년필을 사랑한다면,

그냥 만년필이 아닌

'바로 그 만년필'을 사랑하고,

누군가를 사랑하면,

'바로'를 사랑하는 걸 겁니다

그래야 만년필과 당신 사이, 그리고

당신과 그 사이에 서로의 쓸모가 커집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쓸모가 있어 태어나지 않습니다

예정된 쓸모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이

이 세상에서의 쓸모를 만들지 못해

안달하며 사는 게 삶, 아닌가요?


혹시 배움이나 재주, 기술을 자랑하며,

왜 자신이 쓸모가 없냐고 따질 텐데,

그 쓸모는 그 조건에 의해서 생기는 것으로

꼭 당신이 아니어도, 은 능력 가진

누구라도 좋은 것일 테지요

바로 당신의 쓸모는 아닐 겁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만이 할 수 있는 것,

당신이 아니면 안 되는

당신의 사랑만이

값을 매길 수 없는 당신의 쓸모를

만들어 줄 게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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