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이를 점등하자
운전을 하다 보면, 내가 아무리 방어 운전을 하더라도 위험한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다. 난 지금까지 내 과실로 인한 사고는 한 번, 그리고 반대의 경우 한 번, 총 두 번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 외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사고가 날 뻔한 위험한 상황이 많았으며, 그때마다 심장 졸이는 경험을 했다. 돌이켜 보건대, 내 과실은 5% 미만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들 입장은 다르겠지만.
도로 위엔 기가 막힌 사람들이 많다. 사거리 우회전 차선에 비상등을 켜고 볼일 보러 가는 사람들이나, 심지어 주차를 하고 훌쩍 떠난 사람들 말이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경멸과 분노의 감정이 생기곤 하지만, 한편으로 저렇게 이기적이면 세상 살기 얼마나 편할까 하는 부러움도 조금은 있다. 그러나 언제나 내 삶의 모토 중 하나는 '반면교사'이므로, 그런 사람들을 통해 나의 내적 성장을 더 이룬다고 생각하며, 그저 감사키로 한다.
애니웨이, 오늘 이야기는 이게 아니라, '깜빡이'. '비상등'에 관한 이야기다. 비상등은 말 그대로 위급한 상황에 점등하는 것이지만, 일반적으로 도로에서는 '미안해요' 내지 '고마워요'라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이곤 한다. 나도 배려를 받을 때 심심찮게 썼고, 반대의 경우 많이 받아보기도 했다. 특히 차선을 잘못 들어 어쩔 수 없이 끼어드는 차들이 많이 쓰곤 하는데, 그 깜빡이 하나로 얄미운 마음이 잘 사그러든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얕다는 걸 느낀다.
그런데 이마저도 하지 않는 운전자들이 도로에 즐비한다. 난 그들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데 인색하다거나, 혹은 그 의미를 모른다면 충분히 이해한다. 모를 수 있고, 사람의 감정 폭이 다 다르니 말이다. 그런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부류는 고맙고 미안해야 할 상황이란 것을 인지조차 못하는 사람들이다. 가령 제한 속도를 넘어 도로를 종횡무진하며 칼치기하는 운전자들, 순간적으로 풀엑셀을 밟고 위협적으로 끼어드는 운전자들. 이들은 본인의 운전 센스와 실력이 대단한 줄 착각하지만, 단언컨대 도착지까지 가는 그 일련의 과정에서 수많은 배려를 받은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문득 다른 생각으로 이어졌다. 우리들은 각자의 인생에서 깜빡이를 잘 켜고 있을까? 수없이 배려 받는 상황에서 우리는 그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관계 속에서 그 마음을 오롯이 전달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누군가의 도움과 배려가 없었다면 다다르지 못했을 곳에 도착해서는, 오로지 내 역량만으로 해냈다고 우쭐하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도 로 위에선 그렇지 않았지만, 어쩌면 관계에선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목표를 이뤄 성취를 느꼈을 때, 그 과정에서 직간접적인 도움과 배려를 해준 사람들을 더 생각해보기로 했다. 몇 초 걸리지 않는 깜빡이. 아끼지 않을 이유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