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 메이커스>를 읽고
데릭 톰슨의 <히트 메이커스>. 평소보다 더 느긋하게 띄엄띄엄 읽어서 그런 것인지 내용이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아 다시 페이지를 맨 앞으로 돌려 펼쳤는데, 막상 처음에는 가볍게 넘어갔던 인용문이 다르게 보인다.
‘마르크 폴로의 아치형 구조 다리’ 그리고 ‘보르헤스의 지도’
저자는 왜 이 두 이야기로 책을 시작했을까? 굳이 서문 앞에 위치하면서까지! 돌이켜보면 시험에서도 문제의 가장 강력한 힌트는 글의 시작인 발제문 안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500페이지에 걸쳐 방대하게 분석한 히트작의 성공 비밀도 어쩌면 이 두 인용문에 요약되어 숨어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치형 구조의 다리
어떤 돌 하나가 다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돌이 쌓여 아치형 구조를 만들고 이 구조가 다리를 지탱합니다.
다리 형태를 궁금해하는 쿠빌라이 칸의 물음에 대한 마르코 폴로의 이 대답은 “겉으로는 그저 우연한 결과물로 보여도 히트상품은 몇 가지 핵심 요소에 따라 결정되는 과학적 결과물이다.”라는 데릭 톰슨의 글과 거의 정확하게 치환된다. MAYA 원칙을 필두로 히트상품에는 분명 사람들의 마음을 매혹하는 저마다의 핵심적인 성공 요소가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성공요소가 있다고 해서 이것이 곧 충분조건을 만족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좋은 상품'이라는 것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 이를 둘러싼 환경과 타이밍까지도 중요하다.
그래서 자칫 우연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돌아오는 법! 송가인과 임영웅이 스타가 된 건 그저 우연이라 할 수 없다. 오랜 시간 갈고닦아온 실력과 힘든 시간을 버틴 그들의 이야기가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나며 노출된 것이다. 방송법이 개정되며 TV조선이 개국했고, PD가 그 방송을 기획했다는 외부 요소는 그저 그들의 성공 신화를 이루는 부수적인 타이밍적 환경이었을 뿐. 다만 아무리 좋은 상품도 환경이 갖춰지지 않으면 히트상품이 되기 어렵다는 점에서는 히트작이 되기 위한 길이 정말 멀고도 험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보르헤스의 지도
지도 속의 지점은 현실 세계의 모든 지점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러나 그렇게 큰 지도는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고, 그 지도가 어찌 되든 신경 쓰지 않고 방치했다.
보르헤스의 지도는 정확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만 1:1 축적으로 제작된 지도는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사실상 무용지물인 지도인 셈이다. 그렇기에 결국 사막의 누더기가 되어 동물과 거지들이 지도 위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고.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이제는 방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공간은 거의 차지하지 않는 기술이 탄생했다! 그 덕분에 샤잠 어플 속에는 거의 모든 노래가 들어있어 내가 지금 듣는 노래가 어떤 노래인지 찾아주고, 스포티파이는 내 취향에 맞는 음악 리스트를 만들어 준다. 또 페이스북은 내가 관심 있을 만한 광고나 글을 알고리즘을 통해 뉴스피드에 실어준다. 정보 기술의 발달로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시대.
이는 두 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첫째는 누구나 히트메이커가 될 수 있다는 것. 물론 내가 직접 유명인을 알아 그 사람이 나를, 혹은 내 상품을 소개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누구나 기대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하지만 알고리즘 시스템 덕분에 내가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올렸을 때 초반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좋은 반응만 얻을 수 있다면 이는 비슷한 취향을 가진 다른 이에게도 충분히 전파될 수 있다. 과거에는 돈이 없으면 불가능했던 일이 이제는 가능해진 것이다. 두 번째는 방대한 데이터 활용이 충분히 가능해진 만큼 이제는 히트상품을 분석할만한 여지가 많아져서 데이터를 읽는 능력이 점점 중요해진다는 것. 그리고 분석이 가능해진 만큼 앞으로 히트상품의 비밀이 금방 탄로 나기 때문에 그걸 따라 하는 상품도 많을 것이고 반복된 노출 때문에 유행의 주기는 점점 짧아질 것이란 점이다.
히트한 상품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성공하지만
실패한 상품은 저마다의 이유로 실패한다.
인상주의 작품들도, 스타워즈도, 그리고 페이스북도 모두 다른 챕터에서 소개되었지만 가장 주목할만한 요소로 대표되어 각각의 챕터에 들어갔을 뿐. 결국, 각 요인은 서로가 거의 지닌 것처럼 보인다. 복합적인 여러 요인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히트 상품을 만드는 것은 그래서 너무나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히트작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포기할 수는 없는 법. 히트 메이커스가 되고 싶은 자들은 오늘도 내일도 실패로 떨어질 만한 저마다의 이유 하나씩을 지워가며 히트상품으로 나아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