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베리를 먹는 새들
요즘 원룸 옥상, 남편의 놀이터엔 블루베리 열매가 한창이다. 매일 따야 한다. 하루라도 거르면 잘 익은 열매가 스스로 떨어지기도 하고, 새들이 찾아와 허락도 없이 따먹어 버리기 때문이다. 남편이 매일 올라가려 노력은 하지만 어쩌다 하루 못 갈 때가 있다. 그런 다음날엔 작은 소쿠리에 블루베리가 가득 담겨 내려온다. 매일 올라가도 나무에 물을 주고 떨어진 열매들을 청소하고 나면 시간이 부족하기에 듬성듬성 대충 따서 내려오기도 한다.
비가 여러 날 내렸다. 비가 많이 온날 열매가 다 떨어져 버렸으면 어쩌나, 떨어진 것들이 바닥을 까맣게 물들이면 어쩌나 염려가 늘었다. 그렇게 걱정이 더해지던 날 점심일이 끝나고 정리를 하는 동안 해가 잠깐 들었다. "남은 정리는 내가 할 테니 어서 올라가 보시라"라고 남편을 부추겼다. 이보다 더 좋은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소쿠리를 하나 들고 옥상으로 올라간 남편이 기대와는 다르게 소쿠리 바닥에만 깔린 빈약한 수확량을 내어 놓았다. "에고 다 떨어진 거야, 아까워라." 속상한 표시를 하는데 아니란다. 밖에서 이웃 사장님을 만나 나누어 드리고 온 것이란다.
"잘하셨다, 블루베리 딸 것 많냐"라고 물으니 새들한테 소문이 났나 많이 따먹고 바닥에 떨어트려 놓고 다닌단다, 사람이 있어도 도망을 가지 않고 잘도 따먹는단다. "헐, 간이 크구먼. 그물을 씌워야 하지 않을까" 말로만 걱정이고 정작 그물을 사 오는 일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며칠 전에 드디어 나도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 옥상을 올라갔다. 새들이 용감해져서 친구들을 데려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 녀석들 구경도 할 겸 수확량을 늘려 학생들에게도 주고 싶은 욕심에 달콤한 휴식 시간을 옥상에서 소비하기로 한 것이다.
열매가 더 크고 맛있어 보이는 나무 옆에서 자리를 잡고 큰 것으로 골라 한주먹 따서는 내가 먼저 먹었다. 맛있는 것은 언제나 내가 먼저다. "음! 맛있다." 아주 약간 신맛이 나는 것도 있지만 입안 가득히 열매들이 터지며 흐르는 과즙은 휴식보다 더 달콤하고 싱그럽게 맛있다. 잘 익은 열매가 손으로 닿기만 해도 손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마에서 송골송골 땀이 났지만 간간히 불어주는 바람 덕에 즐겁게 수확을 하고 있는데,
"저기 봐, 새가 왔어." 남편이 말했다. "난 안 보이는데." "두 번째 나무에서 먹고 있잖아, " 살금살금 사진을 찍기 위해 휴대폰 카메라를 집어 드는 순간 바람에 나뭇가지 스치는 소리만 남기고 새가 떠나버렸다. 낯선 내가 있어서 도망가 버린 것이다.
"그물을 사야 하나 봐요." "그렇지 그물 사 와야지" 그날도 우리는 그물을 사야 한다는 말만 하였다.
오늘. 휴일이라 집에서 빈둥빈둥거리다, 책을 읽다가, 청소도 하다가, 침대와 한 몸이 되어 한가함도 즐기고 있는데 옥상 놀이터에 다녀오겠다고 나갔던 남편이 블루베리 한 봉지를 안고 들어왔다. "와 아직도 많이 있네요." 감탄을 하며 봉지 속 블루베리를 이쁜 그릇에 옮겨 담았다. "근데 새들이 이제 떼거지로 몰려다녀, 그물을 사야겠어, 사진을 찍는데 도망도 안가"
남편이 그물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픽하는 바람 소리를 내며 함께 웃어버렸다. 아마도 올해는 그물을 못 살 것 같다. 블루베리도 이제 막바지 수확기이고 사진을 찍어 올만큼 새들과도 친해진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바람에 떨어져 바닥에서 뒹구는 것보다야 새들이 먹는 것이 나은 것 아닐까"라고 말했더니, "그 녀석들이 먹고 똥도 싸놓고 가서 그게 좀 그렇다"는 답변을 한다.
여하튼 올해는 그물을 걸쳐 놓기는 틀린듯하다.
남편의 카메라에 찍힌 이 녀석들, 별로 밉지가 않다. 그래 올해는 같이 나누어 먹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