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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놀아 주세요!!

<딸국> 글그림 김고은/북극곰                    

                                               이서          

 나는 그림책 속에 숨은 그림과 글자 찾아 읽기를 좋아한다. 그림책을 가까이 한 지 5년 이제는 그림책을 읽어 줄 땐 눈 여겨 보지 않은 그림같은 글자가 보인다. 신기하게도 그림 책 속에 숨은 그림이 나에게 말을 걸고, 그림같은 글자 덩어리가 신호를 보낸다.

 김고은 작가에 <딸꾹>은 표지부터 내 취향을 저격한다. 뒤 표지에 “아빠는 바빴습니다. 엄마도 바빴습니다. 온종일 바빠서 양양이 말을 들어 주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엄마랑 아빠가 말싸움을 했고, ”조용히 좀 해!“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순간 양양이는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딸꾹, 딸꾹, 딸꾹!”

 아기 고양이가 부부싸움을 하는 엄마, 아빠를 향해 목이 터져라 외친 “조용히 좀 해!”라는 버릇없는 땡깡질을 <딸꾹>이란 그림책을 읽으며 아기 고양이 양양이의 울분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단 한순간도 아기 고양이 양양이와 눈을 맞추려 하지 않고 딴짓을 하는 엄마와 아빠는 양양이를 혼자 놀게 한다. 그런데다  면지 그림에  엉덩이를 입구 쪽에 두고 양양이를 외면한 강아지 이쁘니도 양양이를 귀찮아한다. 강아지 집에 등을 기대고 앉은 양양이는 “아, 심심해 엄마 아빠랑 같이 놀고 싶은데... 이쁜아, 이쁜아, 너도 외롭니?”하며 속사포 랩을 쏜다. 

  엄마, 심심해요. 아빠 놀아 주세요. 이렇게 “요”자를 붙이던 양양이가 혼자 놀기에 지쳐 골을 내며 “요”라는 높임 조사를 떼고 엄마 아빠에게 화를 내며 외친다. 이 장면은 펼침 화면 가득 검정색 배경인 밤이다. 양양이가 너무 화가 나서 방방 뛰며 공중 부양 중이다. 2쪽에 걸쳐 쓴 “조용히 좀 해!”란 양양이의 외침은 소리의 증폭을 느낄 수 있게 글자 크기가 점점 더 커진다.  이게 그림책만이 가진 멀티 사운드다.  

가족 관계에 있어 하극상인 양양이의 거친 저항에 휴우증은 멈추지 않는 양양이의 딸꾹질을 보면서 딸국질 포함 3종 틱을 하던 5살의 딸이 떠오른다.

43살에 낳은 막내가 5살 때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다. 낮에는 입시학원 국어 선생님으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밤에는 석사 졸업 논문을 쓰느라 밤을 새웠다. 영어 전공 시험은 교육학 관련 원서 1권을 통째로 번역해서 주관식으로 보기 때문에 1학기 시작할 때부터 원서를 틈틈이 번역해서 핸드폰에 저장한 뒤 자면서도 영어 문장을 들으며 잤다. 그때 5살인 아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서투른 손글씨로 쓴 그림 편지를 보여 주었다. .

“엄마 공부하면 피곤한데 왜 밤까지 세야 해? 엄마 일 안하고 나하고 놀아 주면 좋을 텐데. 힘내십시다.” 엄마더러 일 안하고 자기하고 놀아 주면 안 되냐고 떼를 쓰지도 못하고, 착한 아이는 금방 마음을 바꿔  “힘내십시다” 이렇게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그 편지를 받고 아이의 속마음이 궁금해서 엄마한테 지루하거나 우울했던 거를 글로 써 보라고 했다. 아이는 불만의 물꼬를 트고 속마음을 드러내는 글을 썼다.

“하나. 맨날 나하고 안 자 준다. 둘. 공부 땜에 만나자마자 다시 공부한다. 셋. 마루에서 계속 컴퓨터 하고 안 잔다. 넷, 피곤하다고 잔다. 다섯. 안 웃는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목이 메어 왔다. 나이 든 엄마의 자궁에  깃들어 열 달을 채우고, 우리 가정에 선물처럼 온 늦둥이딸을 외롭게 했다는 사실에 미안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공부를 마무리할 때까지, 조금 더 심심하고 외롭게 둬야 한다는 게 가슴 아팠다. 

아이는 쓴 글 뒤에 그림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글로 전하지 못한 아이의 슬픔이 오롯이 전해졌다.  “조금만 잘게 10분만”이라는 나의 말을 아이는 인심 

써서  10분을 더 준 듯. 1을 고친  2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 20분만 잔다던 나는 4시간을 잤나 보다. 아이가 옆에 서서 “네 시간이야. 놀아줘..”하고 말하고 머리맡에 시계에도 화살표를 그려서 네 시간이라 적어 놨다. 그 위에 “1. 좀금 잔다고 하는데 계속 잠을 잔다. 2. 맨날 우울해 보인다.”라고 쓴 글씨가 눈에 아리게 훅 다가 왔다. 

 아이의 애원는 시정되지 않고, 난 어렵게 논문을 통과하고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럼에도 난 아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아이와 잘 못 놀아준 거 같다.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 초부터 딸꾹질을 하는 틱 증세를 보였다. 딸꾹질만 하는 게 아니라 어깨도 으쓱 거리고 눈도 깜빡이는 틱 3종세트가 아이에게 보였다. 목젖이 기도와 달라 붙었다 떨어지는 거 같은 엄청난 소리와 몸짓의 딸꾹질을 하며 아이는 힘들어 했다. 내가 딸꾹질을 진정시키려고 아이를 꼭 안으면, 아이의 딸꾹질이 내 심장을 때리는 거처럼 힘찼다. 자다가도 “딸국” 웃다가도 “딸국”했다.  아이의 고통스런 딸꾹질 치료은 미술치료와 운동 치료를 병행하는 한의원에서 진행했다. 

집에서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소아전문 틱치료 병원을 일주일에 두 번 3년을 다니고 난 뒤 3종 틱을 완전 사라졌다. 

김고은 작가의 <딸꾹>을 읽고 오래 존 카카오스토리에 올린 그 당시 아이의 손편지를 다시 읽어 보았다.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그리고 미안하고 고맙다고 입 안으로 뇌이어 본다. 이제 중2인 아이는 드라마 덕후가 되어 특정 연예인에 홀릭 중이다. 다행이다. 여전히 공부한다고 바쁜 엄마한테 조금은 덜 서운할 수 있어서....

3중 틱 증세가 아이에게 나타나고 심리 상담을 함께 받은 나는 그 뒤로 일년에 최소 10차례 아이와 여행을 간다. 2년 전에 프랑스 파리 에펠탑에서 크리스 마스 이브를 함께  맞이했다. 

 상호명도 유머러스한 <고쳐봐 병원>과 <디디봐 병원> 냅둬봐 병원> 중에 양양이 부모는 <속을여다 보기 전문> 병원인 <디다봐 병원>에 도파리 선생님의 맞춤 처방전으로 양양이의 딸꾹질 증상을 고친다. 도파리 선생님이 보여 준 양양이 몸속에 있는 엄마 아빠에게 보내지 못하고 삼켜 버린 손편지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돈다. 김고은 작가는 착한 사람인 거 같다. 이 책을 만든 편집자는 울고 싶은데 웃게 해주는 뛰어난 작명가다. 

가정 불화로 상처 받은 양양이의 딸꾹질이 독자에게 부담스럽게 읽히는 걸 걱정한 듯. 유머러스하고 과장된 캐릭터의 일러스트와 양양에 딸꾹병을 치료하는 처방 방법의 네이밍이 재미지다. “말방구 폭포법”, 주저리주저리 퉤퉤법“이런 용어로 우울한 양양이네 가족의 불행을 해피 앤딩으로 이끈다. 그림도 재밌고 그림과 어울어진 글자를 찾아 읽는 재미도 탁월한 김고은 작가의 <딸꾹>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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