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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레에게 일어난 슬픈 일들

                          

<마레에게 일어난 일>글/티너 모르티어르/ 그림/카쳐 퍼메이르/보림           

                                                  이서          

 <마레에게 일어난 일>은 치매 가정에 아픔을 그린 그림책이다. “마레가 벚나무 아래 등나무 의자에서 태어났어요.”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의 결말은 영안실에 안치된 할아버지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할머니 할아버지에 볼을 부비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에게 하는 “안녕”이란 말을 하며 아주 잠시 치매에 걸리기 전에 모습을 되찾는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이별을 한 후에, 사랑하는 손녀 딸 마레에게 “과자”라는 단어를 또렷하게 뱉으며, 방긋 웃는다. 

<마레에게 일어난 일>이란 그림책에서 <과자>라는 말은 마레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뱉은 단어다. 치매에 걸리기 전 건강한 할머니는 마레와 함께  벚나무에 매달린 그네를 타며 과자를 먹는 걸 좋아했다. 마레는 할머니와 과자 부스러기와 설탕으로 손이 온통 끈쩍해질 때까지 과자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쓰러지고 과자를 먹는 법도, 신나게 노는 법도, 그리고 이야기하는 법도 모두 잊어버리고 오래 동안 잠을 잔다. 잠에서 깨어난 할머니는 바퀴가 달리고 울타리가 둘러진 하얀 침대 위에 멍하니 앉아서 마레가 즐겁게 춤을 추며 재잘거려도 예전처럼 웃지 않는다. 그리고 초점 잃은 눈동자로 하루 종일 텔레비전만 바라 본다. 

 <마레에게 일어난 일>은 2010년 론세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 그랑프르 수상작이다. 판화와 콜라주 기법을 활용한 그림은 독자들의 심미적 감각을 자극해서 이야기에 몰입감을 높여준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양탄자 위에 깨어진 찻잔 조각이 흩어져 있고 의자에 걸쳐 앉은 할아버지의 손이 힘없이 걸쳐진 그림이다. 그림은 자주빛이 도는 갈색톤으로 침울한 분위기를 강조하는데, 마레의 내레이션은 “할아버지는 찻잔 하나를 깨뜨리고 슬며시 이 세상과 작별을 했지요,”다.

 <카처 퍼메이르>의 일러스트는 다른 그림책에 비해 그림이 적은 편이다. 표지를 포함해 16장의 그림이 펼침 화면 가득 그려진 이 그림은 한 장 한 장이 완성된 명화다. 벚꽃이 핀 벚나무 가지에 먹음직스런 체리가 열려 있다. 커다란 벚나무에 매달린 그네를 타는 할머니와 손녀 마레의 모습은 행복 그 자체다. 

  그림 한 장 한 장에는 글로 담아내지 못하는 세세한 감정의 변화, 현실에서 벌어진 상황에 직면한 인간의 내면의 세계들이 드라마틱하면서 환상적으로 담겨져 있다. 마레의 탄생과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잔잔한 이야기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그림은 시종일관 가슴을 적셔 오는 먹먹한 슬픔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나의 시어머니는 20년 동안 치매를 앓고 계신다. 모태 신앙인 어머니는 주일 날 대표 기도를 정말 잘하셨다. 래퍼처럼 숨도 안 쉬고 “주여!”와 “아멘”을 적절하게 섞어 열정적으로 하는 어머님의 대표 기도에 신도들은 늘 은혜 받았다. 치매 초기에도 신기하게 대표기도만은 실수 하지 않고 잘 하셨는데, 2년 전부터 목사님을 못 알아 보고 자꾸 누구냐고 묻는 바람에 교회를 그만 다니시게 되었다. 

 건강하실 때 어머니는 찬송가를 부르며 성경책을 늘 보셨다. 그런데 요즘은 tv 트로트 프로그램을 보시며, 행복해하신다. 금방 들은 노래를 처음 듣는 거처럼 듣고 손뼉을 치시는 어머니를 보면 트로트 가수들에게 감사패라도 보내고 싶다. 24시간 트로트 방송을 들어도 처음 듣는 거처럼 박장대소하면서 행복해하신다. 막내딸은 이렇게 잘 웃는 시어머니에게 <호호할머니>라는 별명을 붙여 부른다. 건강하실 때도 잘 웃으셨고 치매에 걸리시고도 언제나 웃으신다. 호호 하하, 잘 드시고 잘 주무시고 행복해하신다. 우리는 이렇게 가족들을 힘들게 하지 않는 <착한 치매환자>를 앓고 계신다. 

 이런 어머님에게도 아픈 손가락이 하나 있다.  7년 전에 돌아가신 시아버님의 죽음이다. 어머님은 이상하게도 아버님 이야기만 하면 우신다. 어머니의 기억은 엊그제 아버님을 떠난 보낸 것처럼 7년 전 그 시간에 멈춰 있는 거 같다. 어머니가 아버님 이야기를 하시면 우리들은 어머니가 좋아하는 트로트 가수나 노래로 화제를 돌려 어머니의 눈물을 웃음으로 지운다. 

  시어머님과 달리 나의 친할머니는 고약한 치매를 앓다 돌아가셨다. 욕도 잘하셨고 맨발로 집을 나가 파출소에서 모셔 온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가족 중에 할머니와 제일 친한 사람은 나다. 첫 손녀라 유독 이뻐하셨는데, 치매가 심해지고는 나도 알아 보지 못하셨다. 치매를 앓기 전에도 편두통이 심해서 늘 진통제인 <개버린>을 서너 알씩 씹어 드셨는데, 돌아가시던 날은 개버린을 20알이나 드시고 돌아가셨다.

 옛날이야기도 맛깔나게 잘해주시고 갈래머리도 잘 땋아 주시던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난 뒤, 거칠게 변하셨다. 그렇게 외롭고 힘든 치매 투병 10년 동안 가족들의 정을 떼고 기억도 지우고 그렇게 내 곁에서 사라지셨다. 안타깝게도 아침이면 독설을 퍼붓고, 해가 지면 미안하다고 울던 할머니는 추억이 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마레에게 일어난 일>을 읽으며 시어머니와 할머니를 동시에 떠올렸다. 가족이면서 너무나 먼 가족이 있다. 바로 오래된 기억을 끌어 않고 현재의 시간을 잃어버리는 치매 노인들이다. 오래 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를 보고 가슴이 먹먹해서 소리 죽여 울적이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이 아닌 “요람에서 다시 요람”으로 한 생애를 살다 간 <벤자민 버튼>의 생애가 너무 안타까웠다. 

 마레의 할머니가 다시 웃음을 찾고 어린 아이 같은 모습으로 마레와 눈을 맞추며 다시 과자를 먹을 장면을 떠올리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그런데 설탕 가루를 찐득하게 손에 묻히고 과자 부스러기를 묻힌 입술로 마레를 보며 방긋 웃는 할머니를 바라보는 마레의 마음 속 풍경을 더올리면 가슴이 아프다. 또 한번의 이별을 준비해야 할 어린 마레의 상처가 짐작되기 때문이다.  

 벚나무 아래서 태어난 마레는 점점 자라고 그네를 함께 타던 할머니는 다시 아기가 되는 아름다운 이야기인 <마레에게 일어난 일>을 막내가 5살 때 함께 읽었다. 그 때 아이가 “마레 할머니는 어디가 아파? 왜 마레를 못 알아보고 이야기도 못해?”하고 물어 본 일이 있다. 그래서 치매에 대해 조금스럽게 이야기해줬다. 나이가 들면 기억이 흐려지고 아이가 된다고, 처음 세상에 태어날 때처럼 아이가 되어 슬픈 기억은 다 잊고 행복한 시간만 마음에 품고 이별할 준비를 한다고, 말해줬다. 아이는 그날 엄마가 자기를 두고 아기가 되어 떠날까 봐 목이 쉬도록 울면서 이 그림책의 표지 그림 속 마레 얼굴에 닭똥 같은 눈물로 얼룩을 만들어 놨다.

 지금 시어머니는 손녀딸의 이름을 자주 잊어버리시고 되묻는다. “아가야 너 이름이 뭐지?” 그러면 아이는 천연덕스럽게 “이 채영 나 할머니 이쁜 토깽이 손녀 이채영”하고 열 번이고 열 다섯 번이고 알려 준다. 아마도 <마레에게 일어난 일>을 함께 읽었던 시간이 아이가 할머니의 변화를 이해하고 배려하는데 도움이 된 거 같다. 

 생명의 탄생인 봄에서 치매라는 안타까운 병과 늙음 뒤에 맞이할 얼음 같은 죽음의 시간을 아름다운 일러스트로 보여주는 이 그림책은 백 번을 읽어도 가슴이 짜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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