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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풍경을 소환하는 그림책

나의 구로동 이야기

   

<나의 독산동> 유은실 글, 오승민 그림  문학과 지성사   



                      

구로동, 가리봉동, 독산동은 내 성장 보고서의 배경으로 자리잡은 백 그라운드다. 나는 <나의 독산동>이란 그림책에 표지 그림을 보고 가슴이 콩당콩당 뛰었다. 유리창 안에서 작업복을 입고 스카프를 머리에 두른 아줌마들의 모습도 익숙하고, 칙칙한 회갈색 배경에 듬성듬성 자란 풀꽃도 정겨웠다. 

 나는 바탕색까지 칠한 한 폭의 명화 스타일의 그림책을 좋아한다.  특히 오승민 작가가 즐겨 쓰는 파란색이 정말 예쁘다. 은이는 어른들이 말하는 나쁜 동네에 산다. 독산동은 나쁜 동네라고 단정 짓는 사회 시험 문제에 정답을 이해할 수 없는 은이의 슬픔을 작가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컬러를 섞어 은이만 아는 자랑스러운 독산동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오승민 작가는 유은실 작가가 5살부터 대학생 때까지 살았던 독산동 풍경을 그림책 속에 담았다. 글 작가에 간결한 스토리를 풍성하게 채우는 오승민 작가의 일러스트는 사회 시험 문제 정답을 틀려 속상했을 어린 은이에게 주는 멋진 선물이다. 이 그림책은 세상의 편견에 상처받은 은이의 동심을 아름다운 그림으로 달래준다. 그림책 속, 공장의 기계소리 틈새로 숨바꼭질을 하거나, 고무줄 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들릴 것 같다. 이렇게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독산동은 은이에겐 세상에서 가장 멋진 마을이다.  

 나는 그림책 속 독산동 풍경을 보면서 어릴 적 살던 구로동을 떠올렸다.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들.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함께 사는 추억에 공간엔 사랑이 넘친다. 서로 서로 돌봐주던 행복한 마을 공동체에서 자란 나는 요즘 아이들의 언어가 낯설다. 우리집, 내꺼, 옆집 아줌마, 모르는 아저씨와 함께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은 어느 아파트, 어느 동네란 명칭이 더 익숙할 거 같다. 이 그림책에 은이는 독산동을 ‘우리’ 동네라고 부른다. 은이네 우리 동네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인심 좋고 친절하다.           

  이 그림책에 클라이막스는 뒤에 속지에 펼침 화면 가득 그린 검푸른 하늘에 샛노란 별이다. 레몬빛 별들을 점점이 이어 밤하늘에 수놓은 친구, 반짝, 엄마, 동생, 꿈, 사랑해, 가족, 동네, 공장, 비행기, 잠이라는 글자들은 환상적이다.  그림 작가는 은이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독산동의 추억의 환상적인 별빛으로 이야기를 닫는다. 매캐한 매연으로 덮인 낮보다 독산동에 밤이 더 아름답게 그려진다. 밤은 고된 노동에 시달린 엄마, 아빠과 아이들이 함께 저녁상을 마주하는 힐링에 시간이다. 

 내가 자랄 땐 형광등을 켜는 집보단 30촉, 또는 60촉 알다마를 켜는 집이 많았다. 그땐 밤에 별을 보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사는 마을엔 오렌지빛 알다마가 긴 줄을 늘이고 흔들리며 반짝 반짝 별처럼 빛났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면 골목길 입구엔 “그만 놀고 밥 먹으러 들어오라”며 친구들을 부르는 엄마들의 목소리가 도돌이표처럼 맴돌면 골목길에서 놀던 친구들은 삐꺽이는 철제문을 열고 사라졌다.

 나는 지금도 어릴 때 살던 <구로동>을 떠올리면 저녁에 엄마가 차려 주던 저녁 밥상이 그립다. 연탄불 위에서 보글보글 끓던 된장 찌개와 뽀오얀 김을 올리는 흰 쌀밥 종지, 그리고 그 옆에 각자 먹기 좋게 손바닥만한 크기로 네모랗게 오린 신문지 위에 참기름을 발라 구운 김이 생각난다. 몇 조각 안되는 김을 혀끝으로 녹이며 조금씩 조금씩 아껴 먹던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저녁 밥상이 눈물겹게 그립다.

유은실 작가가 5살 때부터 20살까지 살았던 독산동을 배경으로 한 이 그림책의 스토리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본 사회과 고사 시험 문제가 모티브다. 표지를 넘기면 속지 양쪽 펼침 화면 가득 비포장 도로와 전봇대, 그리고 매캐한 매연을 품는 공장 굴뚝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1980년대 독산동은 영세한 가내수공업 공장 건물과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동네다. 주로 가발공장, 인형공장, 기성복 공장 같은 하청업체들이 많았고, 쪽방촌이라 불리는 다가구 형태의 살림집을 공장 근처에 많았다.

 이 그림책에 은이 아빠는 다리가 불편하신지 휠체어에 앉아서 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내가 어릴 때는 <대서소>와 도장 파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가게가 흔했다. 한자어 일색에 관공서 서류를 작성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서류를 대신 써주는 대서소를 찾았다. 

 ‘ㅁ’이랑 ‘ㅂ’이 자꾸 헷가려서 받아쓰기 시험을 망치는 은이는 자기가 사는 독산동을 정말 좋아한다. 공장에 딸린 숙소나 집 가까운 데서 일을 하는 친구들의 엄마나 아빠는 공장에서 일하다 아이들 밥을 주고 숙제도 봐준다. 친구와 고무줄놀이를 하다 다치면 한달음에 달려 와 상처에 약도 발라 주고 아프지 말라고 호호 불어 준다. 공장 지대에서 성장하는 친구나 은이는 이런 독산동이 정말 살기좋은 동네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공장 앞에 빈터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고, 공장 식구들은 모두 가족 같다. 

은이가 제일 아끼는 단추 인형은 인형 공장에서 불량품이라고 버린 인형에 단추 공장에서 주

운 빨간 단추로 눈과 코를 달아 만든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은이만을 위한 인형이다.

 친구들과 놀다가 목이 마르면 아이스케키 공장 아저씨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라고 주시고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인 친척보다 더 다정하고 가족 같은 동네 독산동은 정말 좋은 동네다. 

어느 날 은이는 초등학교 들어와 첫 번째로 본 사회과 시험 2번 문제를 틀린다. 

<나의 독산동>이란 그림책을 보면서 나는 오랫동안 내 기억의 뒤 켠으로 내몰았던 공간들을 

한꺼번에 떠올렸다. 내가 태어난 미아리, 유치원 때 살던 수원 매산동, 그리고 대학교 다닐 때까지 살던 구로동.

 철길을 끼고 시뻘건 흙산을 중앙에 두고 촘촘하게 지어진 공영 주택과 무허가 판자촌이 절반을 이룬 1970년대 구로동은 산업역군인 공순이 공돌이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이 그림책에 은이처럼 구로동을 좋아했다. 얕은 동산조차 보기 힘든 진창길과 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 일색이 구로동에서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보낸 나는 대학교 가서야 내가 사는 동네를 지칭하는 세상 사람들에 편견을 직면했다. 

미팅을 가서 각자 소지품을 다방 탁자 위에 올리고 파트너를 정했다. 나의 파트너는 명문대 영문과 학생이고 잘생겼다. 귀티가 잘잘 흘렀다. 파트너끼리 짝을 지어 흩어져서 호프집게 가서 호구 조사를 하는데, 그 남학생은 자기가 압구정동에 산다고 했다. 내가 구로동에 산다고 하자 그 남학생은 그런데도 사람들이 살아요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 봤다. 그가 아는 구로동은 가리봉동 쪽방촌이나 구로 공단 같은 하층민들에 군락지였던 거 같다. 

 당시에 <구로 아리랑>이란 영화에서 보여 준 구로동은 노동 계급의 흑역사의 실제적 공간이었던 거 같다. 현재 나는 연희동에 공간을 가지고 있고, 가재울 뉴타운에 산다. 사람들은 내가 연희동에 산다고 하면 부자 동네에 산다고 호감을 보인다. 

 좋은 동네 비싼 동네, 나쁜 동네, 이런 수식어가 관용어처럼 사용되던 어제가 있다. 나의 어제는 <나의 독산동>이란 그림책의 밤 풍경처럼 환타스틱하고 정겨운 동네 구로동에 추억 속에서 행복하고 멋졌다. 

 이 그림책을 읽다 보면 누구에게나 추억 속에 자리한 <나의 독산동>이 떠 오를 것 같다. 나에겐 <나의 구로동>이란 아름다운 동네가 있는 거처럼 누구나 <나의 000>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좋은 동네나 나쁜 동네가 아닌 그리운 동네만 기억하는 나에게 이 그림책은 더 이상은 어른들이 아이들의 동심에 상처를 주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유은실 작가에 간절한 바람이 전해진다. 이 책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훈훈한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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