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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으로 읽는 그림책

그림책 몸으로 읽다


          

<짖어봐 조지야> 쥴스 파이퍼 글그림/보림     

                                            이서               

 미국 1세대 만화가이자 작가인 줄스 파이퍼가 글과 그림을 그린 <짖어봐 조지야>를 독서 치료 수업에서 만났다. “엄마 개가 말합니다.”로 시작한 의사 선생님은 초능력자다. 어린 강아지 조지는 “멍멍” 짖지 않고 “꿀꿀, 야옹, 음매, 꽥꽥 이렇게 다른 동물들의 울음소리를 낸다. 조지가 멍멍하고 짖지 않자  참다못한 엄마는 이런 엉뚱한 짓을 하는 어린 강아지 조지를 치료하려고 의사 선생님께 데려 간다. 

 말도 안 되는 크기의 동물들이 아기 강아지 조지의 목구멍에서 강제 소환되는 <짖어봐 조지야!>는 내 인생 그림책이다. 몸으로 그림책 읽기 강좌에서 이 그림책을 만난 후 나는 더 이상 머리로 그림책을 읽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6살 때 <짖어봐 조지야!>를 읽어 주면서 그림책 속에 의사 선생님의 손이 내 목젖을 타고 내려 오는 거 같아 속이 미식거리고 불편했다. 나와 달리 아이는 내가 “야옹 야옹”, 하고 읽어 주면 고양이 흉내를 내고 “음매”하면 송아지처럼 혀로 내 손등을 핥았다. 42살에 낳은 아이는 그림책을 읽어 주면 참 좋아했다. 구연동화처럼 읽어 주면 너무 재미있어서 배꼽이 간질간질하다고도 했다. 

 아이처럼 오감으로 그림책을 읽고 싶어 그림책 강좌를 신청했다. 첫날 강의실엔 20대 초반의 대학생에서 50대 후반의 아줌마까지 12명의 수강생들이 있었다. 3층 강의실은 경희궁 뒷뜰이 화안히 내려다 보였다. 화창한 5월 밥풀처럼 흩날리는 벚꽃잎과 그림책 읽기 수업은 참 잘 어울리는 조합인 거 같아 막 설렜다. 그 첫 수업에서 난 멍멍하고 마음껏 짖지도 못하는 ‘답답이’ 나를 만났다. 


''의사 선생님은 손을 조지의 입안에 넣고 목구멍까지 깊이, 깊이, 기이피, 집어넣었어요''

그림책을 여기까지 읽다 멈춘 교수님은 맨 앞에 동동(별명)님에게 자신의 손이 동동님이 몸 어디까지 닿고 있는지 물어 보며 의사선생님의 손동작을 재현했다.

''아 목구멍이 간지러워서 재치기가 에취!!''

그러자 교수님이 ''아 목젖에 닿았나 봐요?''

다음 차례는 유치원생 딸을 둔 30대 중반의 반짝반짝님, 그분은 배꼽까지 느낌이 온다고, 흐르다님은 명치끝에 손이 걸렸다고 해맑게 말했다. 나는 집단 심령술 치료 현장에 앉아 있는 듯 당황스러웠다. 마침내, 어느새, 기어이... 내 차례가 왔다 내 별명은 '나다' 그러니까 영어로 'me'다. 오지게 멋지고 자존감 높은 별명을 적은 나의 차례.

 교수님이 손을 뻗어 내 입속으로 팔을 넣는 동작을 흉내며 다가왔다.  난 금세라도 그 손이 내 입을 강제로 벌리고 목구멍을 지나 식도로 타고 내려갈 거 같았다. 공포다. 끔찍한 공포와 절망감에 나는  입을 앙 다물고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그만, 거기 멈춰요, 나한테 왜 이래요, 제발 가까이 오지 말라고요!”     

 그렇게 첫날 몸으로 그림책을 읽는데 실패를 하고 말았다. 첫날 강의실을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그런데 나만 참혹했다. 나의 돌발행동은 화기애애한 리듬을 타고 수강생들을 춤추게 한 짖어봐 조지야 시연을 침묵의 바다 속에 수장시켰다. 평생을 강아지 조지로만 살아온 나의 정체성의 성곽이 그림책 수업 중, 가벼운 퍼포먼스에도 와르르 무너졌다.

 그날 밤 <짖어봐 조지>를 아이에게 읽어주는데 내 가슴 한켠에서 뜨겁게 일렁이는 불덩이가 느껴졌다. 평생을 개답게 멍멍 짖어본 적이 없었던 나는, 자존감 낮은 반려견이었다. 누군가 나를 인정하면 힘이 나서 의기양양해하고, 조금이라도 무시하면 비누거품처럼 공기 중에 흩어지는 열등감 덩어리. 

 그날 교수님이 의사선생님 설정을 하며 성큼 성큼 다가올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난 명색이 배운 사람인데,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저렇게 무례하게 나를 대한 적 없는데 이 분은 왜 이러지? 이런 낭패감이 밀려 와서 손사레를 치며 입을 앙다문 거같다,

 아기 강아지 조지 코스프레를 거부한 나의 오버 액션으로 첫날 수업은 뻘쭘하게 마무리됐다. 

 그날 밤 나는 <짖어봐 조지야!>를 아이에게 읽어 줬다. 그림책을 읽으며 그림을 자세히 보니 아기 강아지는 짖어봐 조지야 하는데도 “야옹”했다. 화가 나서 눈알로 으르렁거리는 엄마와 먼산 바라보듯 시선을 피하고 “음매”하는 조지가 가여워 눈물이 났다.

 아이는 배꼽이 빠져라 웃는데 나는 컥컥 소리내어 울었다.  내가 아기 강아지 조지 같았다. 내가 울자 엄마 왜 우냐고 슬프냐 고 물었다. 걱정하는 아이의 눈가가 촉촉했다. 너무 웃겨서 눈물이 난다는 나의 말에 아이는 손등으로 내 눈물을 닦아 주다 나중에는 작고 따뜻한 혀로도 눈가를 핥아 주었다. 순간 물파스를 바른 듯 화아하고 시원한 느낌이 몰려 오고, 가슴이 속에서 뭔가 펑하고 터지느 거 같았다. 그리고 마음이 편해졌다. 

 난 눈썹에 눈물을 매달고 아이와 그림책을 마저 읽었다. <짖어봐 조지야>의 나오는 고양이, 돼지, 소, 오리”가 되어 음매, 꿀꿀, 야옹하며 그림책을 읽었다. 나중에는 책 속에 있는 동물로 모자라 개구리도 데려 오고, 공룡도 불렀다.  

  이 글을 쓰면서 갑자기 온몸으로 그림책 읽기 수업을 통해서 내 안에 강아지 조지에게 자유를 선물한 교수님과 수강생들이 그리워진다. 첫 날 수업을 마친 오후에 12명의 선생님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개인 톡으로 격려 문자는 보내주셨다. 그 중 잊혀 지지 않는 문자가 있다.

 “우리들도 많이 창피했지만 만약에 내가 아이라면 이랬을 거야. 하고 용기내어 소리쳤어요. 멍멍, 야옹, 꿀꿀” 나다선생님도 할 수 있어요. 파이팅!”

 <짖어봐 조지야!>의 결말은 역대급 반전이다. 자신이 강아지라는 존재감을 확인한 조지는 이제 멍멍하고 짖는다. 훌륭한 의사 선생님의 훌룡한 치료는 조지의 고질병을 단번에 고쳤지만 조지 안에 살던 고양이, 말, 소, 돼지는 다시 돌아갈 조지라는 집을 잃게 되었으니 모두에게 해피 엔딩은 아니겠지만.

 엄마 개가 만족스러워하며 수시로 조지에게 명령한다. “짖어봐 조지야!” 그럼 조지는 명랑하게 “멍멍!”하고 짖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는 또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지야 한번 더 짖어 보라는 명령한다. 

 과연 조지는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고 개답게 짖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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