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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키오스크

올가의 <키오스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행복 공간이다

         


<키오스크> 글/그림 아네테 멜레세 /미래아이     

                                                                  이서               

 아네테 멜레세에 <키오스크>는 한번 보면 화려한 원색의 그림 톤에 반하고, 두 번 보면, 스펙타클한 올가의 여행에 빠져든다. 그리고 표지에 그려진 올가의 매점 <키오스크>의 창문에  네모랗게 오려놓아서 그 빈공간에 어떤 풍경이든 독자 마음 가는 대로 채워 놓을 수 있어 다양한 스토리를 첨가할 수 있다. 

 이 책은 돌발적인 사고로 자신의 달팽이 껍질같은 공간 키오스트와 함께 평소 상상으로만 채우던 환타스틱한 꿈의 여행을 떠나는 올가의 인생 역전 드라마를 그리고 있다. 나는 이 그림책을 읽으며 주인공 올가의 키오스트와 함께 하는 환상여행에 동행을 했다. 그림책을 읽으며 

 나는 여고 시절의 아픈 손가락도 깨물어 보고, 중년의 그림책 덕후란 사치스런 취미 생활에 탐닉한 나 자신에게 갈채를 보내기도 했다. 

 이 그림책의 제목인  ‘키오스크’는 요즘 식당이나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터치스크린의 무인 단말기를 가리키는 용어로 우리 식으론 원형 정자처럼 생긴  길거리의 간이 판매대나 소형 매점을 키오스크라 부르는 거 같다.  이 책의 주인공 올가는 키오스크 안에서 하루 종일 앉아 즐겁게 물건을 팔며 그 안에서 산다. 올가는 복숭아빛 볼이 사랑스럽고 통통한 아가씨다. 한 평도 안되는 키오스크 안에서 그녀는 갑갑해하지도 않고  친절하고 유쾌하게 고객들을 맞으며 행복한 일상을 보낸다.

 이렇게 ‘키오스크’는 올가에게는 일터이자 쉼터고 나아가 자기 인생이다. 그녀는 손님이 없을 때, 좁디 좁은 키오스크에서 여행 잡지를 읽으며 석양이 황홀한 바다를 꿈꾼다. 언젠가는 두 눈으로 직접 아름다운 노을이 지는 바다를 볼 수 있기를 맘속으로 바라면서 지친 일상의 고단함을 달랜다.  그러던 어느 날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져서 키오스크가 옆으로 쓰러지고, 갑자기 올가의 세상이 뒤집어진다. 

 처음에 이 그림책을 보고 불편했다. 지난 2년 코로나 이후 재택 근무를 하느라 체중이 불어 심각한 상태에 이른 나에게 좁디좁은 ‘키오스크’에서 숙식을 하는 과체중에 올가가 나 같아서 화가 났다. 간이 침대에 작은 양변기까지 갖춰진 키오스크 안에 올가는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먹으며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행복하다.  언젠가는  가 보고 싶은 일몰의 해변 풍경 사진을 키오스크 벽에 붙이면서 하루 하루를 견디는 그녀는 언제고 살을 빼야지 하고 결심하고 각오하고, 되새기며 걷기 운동조차 안 하는 나와 닮아 있었다. 

 살을 빼려면 적게 먹고 운동을 해야 한다는데, 언제가는 빠지겠지라고 꿈꾸기는 나는 고도 비만이다. 그림책을 보면서 나는 올가가 자신만의 키오스크 세상에 갇혀 사랑도 못하고, 성인병으로 죽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 그래서 그녀 머리맡에 놓은 알약 케이스의 약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다행히도 진통 해열제라는 걸 확인하고 지병은 없는 거 같아 안심했다. 

 나는 격하게 올가와 나를 동일시를 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았고 비겁하지만 끝까지 안 읽기로 마음을 먹고 책을 덮었다. 

 그날 밤 나는 아주 오랜만에 꿈을 꿨다. 꿈 속 나는 고1 때 살던 단독 주택 부엌 위 다락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중3 때 엄마가 일수놀이를 하다. 사기를 당해  아주 쫄딱 망해서 단칸 셋방으로 둥지를 옮겼다. 남동생 둘과 나름 내외를 한다고 벽 쪽에 붙은 다락방이 내 차지가 되었다. 허리를 펴고 서면 닿는 천장엔 쥐오줌 얼룩이 드문 드문 보이고, 밤에 가끔 천장 위에 쥐들이 운동회를 하면 시끄러워 잠을 설치긴 해도 다락방은 나에겐 올가의 <키오스크>였다. 

 엄마가 혼수로 해온 새빨간 동백꽃이 수놓인 광목 이불을 펴면 꽉 차는 좁은 공간에 60촉 알다마가 주홍빛으로 흔들리는 깊은 밤, 그 곳에서 톨스토이의 <죄와 벌>을 읽었고, <헤밍웨이>에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을 읽으며 격한 감동에 눈물을 훌쩍이기도 했다. 비가 오는 날에 창문을 열고 즐기는 빗방울, 다락 아래 부엌에서 엄마가 연탄불로 굽는 비게 두툼한 돼지 불고기 냄새가 지금도 코끝을 맴돈다. 

 나는 이 그림책 한 권으로 여고 시절로 리턴했다. 여고 시절 뼈저린 가난을 업은 추억 여행을 꿈에서 경험한 다음 날 머리맡에 놓인 이 그림책을 다시 읽었다. 그런데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처음 읽던 그림책의 내용과 다른 감동은 받았다.  뚱보 올가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아가씨로 보이고 그녀의 키오스크가 그녀를 행복하게 만드는 공간처럼 보였다. 키오스크는 벗어 버려야 할 금고의 공간이 아닌 그녀 자신의 자존감이고 삶이었다. 

 여고 시절 나의 키오스크인 다락방을 벗어나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가면 난 항상 외롭고 불편했다. 저녁 무렵 도서관에서 폐기 처분한다고 체육실 창고에 버린 소설책을 가방이 미어 터져라 이고 지고 가져온 날, 내 다락방 키오스크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부럽지 않은 서가였다. 그리고  푸른 곰팡이를 탁탁 털어 눅진한 소설책 페이지늘 넘기면, 그 안에 내 청춘의 편린과 설렘이 진득하게 묻어 내게로 다가 왔다. 

 올가가 <키오스크>를 벗어나지 못하는 핑계가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현실이건 아님, 대인 기피증이 심해 혼자만의 공간에서 칩거를 하는 것 같아서, 처음 나는 이 그림책의 올가에게 충고를 하고 싶어졌었다. “올가야 제발 답답한  그 곳을 나와 운동도 하고 친구도 사귀고,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야 해, 너 그러다 고도 비만으로 죽을 수도 있어!”라고.

 그날 밤 꿈으로 만난 내 여고 시절 키오스크 다락방은 지금 내가 글을 쓰는 집필실인 거 같다. 처음엔 학원으로 얻은 공간인데 코로나 때문에 학생들이 모이지 않았다. 난 그 공간에 엔틱 등을 서너 개 켜 놓고 오르골도 가져다 놓았다. 스페인 풍의 타일 탁자를 맞춰 가져다 놓아서  겉에서 보기엔 파티룸이나 공방처럼 보인다고 한다. 나는 그 공간을 즐긴다. 

 난 이 그림책의 올가의 <키오스크> 세상이 어쩜 내가 지금 꾸미는 나의 집필실이 아닌가 싶다. 큰딸은 나의 학원 인테리어를 살짝 비웃는다. “엄마 학원 아니고 세컨하우스나 별장 꾸미는 거지요?” 이렇게 물으면 난 그냥 웃는다.


  이 그림책 <키오스크>는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먼저 선보였다고 한다. 거침없는 선과 강렬한 색채의 아테네 멜레세의 일러스트는 고갱의 그림 <타히티 여인들>의 원화처럼 따뜻하고 화려하다. 기상천외한 상상력으로 올가의 환상 여행을 유쾌하게 읽은 어린이 독자나, 꿈을 잃어 가는 어른들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주는 그림책이다. 

ㅍ<키오스크>가 옆으로 쓰러졌을 때, 당황하지 않고 벌떡 일어나 키오스트를 살짝 들고성큼 성큼 걸어 산책을 나선 올가의 대범한 행동과 회복 탄력성이 뛰어난 그녀의 성격은 이 그림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놀라운 감동을 준다. 

 <키오스크>는 불행과 행운이 한끝 차이라는 걸 알게 해주는 그림책이고, 여행 잡지의 아름다운 여행지 풍경을 눈 안 가득 담고, 키오스크 안에서 꿈꾸는 올가의 환상 여행을 동행하고 싶어지게 하는 멋진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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