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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씨낙락 까먹는 소리 <황계사>

조선의 싱어송라이터-작자미상님     

그림으로 그린 닭이 운다

판소리 잡가 <황계사> 작자 미상          

 어렸을 때, 할머니는 내가 무슨 말을 하건 귀신 씨나락 까 먹는 소리하지 말라며, 핀잔을 주셨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이야기 꾸며내는 걸 좋아하는 7살 손녀에게 밥 먹듯 던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억울했다. 기집애가 재수없게 문지방을 밝았다고 ‘오살을 할 년’이라고 하시던 할머니는 낮잠을 자고 일어나신 후 멈추지 않는 딸꾹질을 반나절을 하다  돌아가셨다. 

 올해로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25년이다. 할머니가 즐겨하던 “귀신 씨나락 까는 소리하지 말라.”는 입말은 어느 틈에 나한테도 옮아, 나 역시 아이가 맥락없는 소리를 하거나, 들어 주기 싫은 요구를 하면 “귀신 씨낙락 까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 아이는 “귀신이 어떻게 씨나락을 까서 먹느냐”며 논리적으로 따진다. 그럴 때 보면 어릴 때 나보다 똑똑한 거 같다.  뭔 말인지도 모르고 구비전승되어 쓰던 이 말은 나름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 

 가뭄이 들어 먹을 것이 암만 없어도, 씨종자인 볍씨는 먹지 않고 보관해야 했던 시절. 허기를 못 견딘 바우가 아버지 몰래 볍씨를 까먹었다고 한다. 볍씨가 사라진 걸 안 아버지는 “누가 씨나락을 까 먹었냐”며 불같이 화를 냈다. 바우는 너무 겁이 자기는 안 먹었다고 박박 우겼다고 한다. 기가 막힌 아버지는 “아무도 먹은 사람이 없으면 귀신이 소리없이 씨나락을 까먹었단 말이냐?”라고 하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면서 주저 앉았다고 하는데, “귀신이 소리없이 씨나락을 까먹었단 말이냐”가 관용어가 되었다고 한다. 이 말을 직역하면 “말도 안 된 소리 하지 마라!”의 뜻일 게다.

 할머니의 장난기 썩인 지청구 중에 “말이야 똥이야!”도 있다. 첫 손녀딸이라 나를 이뻐하시면서도 나에게 던지는 애드립은 늘 동심 파괴를 깔고 있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며 요리조리 핑계를 대는 나에게 할머니는 기분이 좋을 때는 “에구, 우리 집안에 변호사 나셨어요.‘ 하셨고, 골이 나시면 “옘병을 할 년”이라고 욕을 하셨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오살을 하다”는 “잘못하여 사람을 죽이다.”는 뜻이고, “옘병을 하다”는 ‘염병'의 사투리로 급성 전염병인 열병. 즉 “장티푸스에 걸리다.”란 뜻이란 걸 알았다. 나이어린 손녀딸에게 하는 지청구치곤 엄청난 저주지만 할머니도 그 뜻을 모르고 쓰신 말인 거 같다.      

 판소리 잡가 12가사 중에 지은이와 연대를 알 수 없는 <황계사>란 노랫말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스토리가 심심찮게 나온다. 전체적으로 잔잔한 이별 노래인 발라드 형식의 곡조에 상큼 발랄한 반어적 내용의 후렴구가 이 노래의 반전이다.

     

일조(一朝) 낭군(郞君) 이별 후에 소식조차 돈절(頓絶)하야 

자네 일정 못 오던가 무삼 일로 아니 오더냐 

이 아해야 말 듣소 

황혼 저문 날에 개가 짖어 못 오는가

이 아해야 말 듣소

--중략---

한 곳을 들어가니 육관대사 성진(性眞)이는 석교상(石橋上)에서 팔선녀 다리고 희롱한다

지어자 좋을시고

병풍에 그린 황계(黃鷄) 수탉이 두 나래 둥덩 치고 짜른 목을 길게 빼어 긴 목을 에후리어

사경일점(四更一點)에 날 새라고 꼬꾀요 울거든 오랴는가

자네 어이 그리하야 아니 오던고

--중략---

어데를 가고서 네 아니 오더냐

지어자 좋을시고          

  판소리 잡가 <황계사>_작자 미상     

[출처] 수능특강      

 낭군이 소식도 없이 발길을 끊었는데 이 노래의 여자는 님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 그래서 궁색한 핑계를 만들며 오지 않을 님을 기다린다.  님의 처지는 짐작컨대, 야심한 밤에 남들 눈을 피해 그녀를 만나러 오는 거 같다. 속절없는 이별 상황을 부정하고 싶은 그녀는 죄없는 반려견 탓을 한다. 애기인 즉은 날 저문 깊은 밤, 눈치없이 짖어대는 개 때문에 님이 담장을 못 넘고 오던 길을 돌아갔다는 것이다. 

 님의 변심이 두려운 그녀는 님을 못 보는 정황을 다양하게 추론한다. 세책방에서 제일 잘 나가는 김만중에 <구운몽>의 스토리에 실어 혹시 님이, 구운몽의 성진처럼 8선녀와 희롱하느라 안 오는가라고 노래하는데, 자길 버린 님을 원망하는 노랫말의 후렴구가 아이러니하게도 “지화자 좋을시고”다. 이 판국에 얼씨구나 좋다는 얼척없다. 

 “기다리는 님은 왜 안 올까? 기다리면 꼭 올 거야.”하는 그녀의 미련이 덧없음을 짐작케 하는하는 노랫말이 있다. 어찌 “병풍에 그린 황계(黃鷄) 수탉이 두 나래 둥덩 치면서 짧은 목을 길게 빼고 꼬끼오 새벽 잠을 깨울까.”마는 그녀는 목을 짜른 닭이 목을 길게 빼어 “꼬끼오. 꼬기오” 목청을 돋아 에후리어 사경일점(四更一點)에 날 새라고 울거든 올 거냐“고 하며 기다리겠단다.

 사경 일점은 새벽 1시부터 3시를 말한다. 그 시간이라도 님이 온다고 믿고 싶은 그녀는 살아 있는 닭이 아닌 병풍에 그린 누런 수탉이 날개를 푸덕이며 꼬끼오 하고 우는 기적처럼 님이 왔으면 싶다. 이게 바로 생전에 할머니가 자주 하시던 “귀신이 씨나락 까는 소리”다. 

 어쩌면 그녀의 님과의 이별은 살아서 이별이 아니고 죽어서 이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살아서 이별이라면 님의 마음은 오래 전에 떠났음을 그녀도 확실히 알고 있는 거 같다. 

 그녀의 님이 혹시 오기만 한다면 죽은 닭이 우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나는 “내 손에 장을 지질 거라고 나는 장담한다.  여기서 장을 지진다는 내 손에 혹은 손톱에 불을 붙여 뜸을 붙여도 참겠다는 말이다. 

 작자 미상의 가사 작품 <황계사>는 절대로 만날 수 없는 사람을 기다리는 실연가다.  

 작자 미상의 <황계사>는 ‘황계타령(黃鷄打令)’이라고도 한다. “청구영언(靑丘永言)”, “악부(樂府)” 등의 책에 실려 전하는데, 수록본마다 가사가 조금씩 다르다. 이별한 임이 돌아오지 않는 상황을 원망하며 속히 돌아와 주기를 바라는 여인의 비루한 짝사랑은 상황의 모순을 노래한 

역설의 미학이 두두러진 풍류재담류에 가사다.                               

잠수 이별     

 코로나 펜더믹으로 남녀간의 연애나 만남이 어려워지고, 연인들의 대면 만남이 힘들어졌다. 눈에서 멀어지면 맘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처럼 헤어지는 연인도 많고, 연락 두절 혹은 일방적 손절로 관계를 끝내는 이별도 늘었다고 한다. 이런 류의 이별은 요즘 트렌드인 <동굴 이별>과 <잠수 이별>과 같은 신종어를 생산한다. 

 <동굴의 이별>은 상대방을 배려해서 관계를 유지한 상태에서 서로 생각할 시간을 버는 일종의 잠정적 별거로 연인 사이가 회복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잠수 이별>은 다르다. 이미 이별을 확정하고 도망가서 잠적하는 상황이라 버려진 여자의 상실감은 엄청날 것이다.  

 고전시가 속의 피해자인 여성들은 이별의 상황을 항상 이별의 상황을 부정한다. 그리고 자신을 버린 님을 원망하면서도 기다린다. 위에 소개한 <황계사>는 요즘식으로 보면 <잠수 이별>이다. 핸드폰도 문자 메시지도 보낼 수 없는 그녀에게 경우의 수는 오직 하나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기다린다는.

 잠적한 원인은 중요하지 않다. 돌아올 거라는 억지를 부리니 님이 왜 자신을 버렸는지에 대한 자기 성찰도 없다. 자기 안에 문제를 찾지 않으니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 역시 의미가 없을 것이다. 선천적인 카사노바가 아닐 바에야 잠적하는 남자도 나름 사연이 있을 텐데.

 현대에 대중 가요에도 최악의 이별 방식인 <잠수 이별>을 소재로 노래한 가수가 있다. 2019년 솔로 가수로 데뷔한 뒤에 지금은  <노르웨이숲>의 보컬로 활동하고 있는 미유(Mew)의 자작곡 ‘잠수이별’이란 노래다.             

안녕이라는 말은 해주고 가요

왜 나만 이렇게 힘든가요

하루하루를 그대만 기다리다

잠 못 드는 이 밤을 그댄 알고 있나요

---중략---

잠 못 드는 이 밤을 그댄 알고 있나요

지우지 못한 미련만 남아서

오늘 밤도 이렇게 너를 기다려     

-미유 <잠수 이별>-     

 하루 하루 기다리다 잠 못 드는 밤은 님이 알 바가 아니겠지만, 사귀는 동안 해준 따뜻한 말과 아껴준다는 약속을 믿고 미련만 남은 그녀는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닐 것 같다. 카톡 메시지에 사라지지 않는 1자 표시는 그녀의 순정이 씹히는 고통이다. 

 어느 날 떠나간 남자의 트위터에 새로 사귄 여자 친구와 찍은 달달한 셀카 사진을 우연찮게 본다 해도 그녀는 인정하지 않을 거 같다. 남녀 최악의 이별 1순위인 <잠수 이별>은 일주일 전까지 잘 자라고 사랑한다고 말한 남자 친구가 아침이 되니 자신과 찍은 프로필이 모두 지워지고 전화도 안 받고 생사여부를 알 수가 없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어디가 아픈 걸까? 안달복달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전화는 스펨 처리되고 카톡은 차단한 상태라는 걸 알고도, 그럴 리가 없다고 믿으려는 현대의 <황계사> 노래 속에 비련의 여주인공은 무작정 떠난 님의 소식을 기다린다. 세상이 바뀌어도 나쁜 남자는 항상 있는 거 같다.

 “귀신 씨나락 까 먹는 소리”하지 말고 이제는 그 놈을 잊는 게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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