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벼룩 Jun 11. 2023

식물의 고향은 안녕한가요

사철나무 한 그루를 들였다. 집에서 함께 지내는 다른 나무들과 비교하면 꽤 크다. 줄기는 내 엄지손가락만큼, 뻗어 나온 가지들은 내 새끼손가락만큼 굵다. 목질화(木質化)가 이루어진 완연한 나무의 모습이다. 물이 묻으면 밝게 빛나는 긴 무광의 황토색 화분에서 운치 있게 허리를 굽힌 사철에 돋아난 새싹들을 보면 벌써 봄이 왔나 싶다. 


얼마 전, 아버지께 전화가 한 통 왔다. 우리가 자주 가는 서오릉 원예단지 단골 분재원의 사장님이었다. 도로 공사 때문에 2월 말쯤에는 가게를 일단 정리하고 나중에 근처에 새로 열 것이라 지금 분재들을 모두 반값에 내놓았으니 와서 분재를 보라는 것이었다. 반값 할인은 반가웠지만, 가게를 정리한다는 소식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 원예단지는 주거지역에서 조금 떨어져 있고, 대중교통도 별로 없다. 출퇴근 시간 외에는 오가는 차도 많지 않은데, 도로를 새로 낸다고 한다. 이 넓은 도로에, 근처에는 문화재까지도 있는데 새로 도로를 뚫는 이유를 정확히 밝히는 문서를 찾기는 어려웠다. 다만, 이것이 곧 건설될 창릉 지구의 교통과 관련 있다는 것만큼은 예상 가능한 범위다. 지도로 볼 때 창릉 지구는 서오릉 원예단지에서 매우 가까우니까. 


며칠 지나지 않아 나와 아버지는 분재원으로 향했다. 사장님은 여느 때와 같이 웃으며 우리를 맞아주었다. 안쪽에는 아마 우리처럼 반값이라는 이야기에 식물을 구경하러 왔을 다른 단골들이 앉아 있었다. 이미 진열대는 듬성듬성 비어 있었다. 방문할 때마다 내가 구경하던 멋진 마삭과 짜보도 사라져 있었다. 괜찮은 녀석들은 이미 새로운 주인을 찾아 나갔다고. 


반값의 유혹도 강했지만, 팔리지 않은 아이들은 어딘가에 아주 싸게 처분할 예정이라는 사장님의 말은 분명 우리가 한 그루라도 더 데려오게 만들었다. 한 분재원에는 사실 정말 많은 나무가 항상 지내고 있어서, 휴가도 없다고 한다. 반려동물이 있는 집을 오랫동안 비워두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언젠가 분재원을 차릴까 한다는 아버지의 지나가는 말에 사장님이 ‘이거 할 짓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게다가 비닐하우스의 형태로 된 분재원은 습도, 온도, 햇빛을 모두 적당한 수준으로 잘 맞추어 둔 것인데, 한 번에 이를 모두 집으로 옮기기에는 자리도 부족할뿐더러, 수많은 식물이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살아가도록 적응시키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식물의 반려인간들은 화분을 바꾸어 주면 식물이 ‘몸살’에 걸린다고 말하곤 하는데, 한 사람을 돌보는 일보다 여러 사람을 돌보는 일이 훨씬 힘들 듯 식물도 마찬가지다. 


그날 데려온 사철나무를 볼 때마다, 빌라 화단에서 뽑은 한 나무가 떠오른다. 내가 원하는 다른 식물을 심어 보겠다고 뽑은 그 나무의 굵은 뿌리는 땅속 깊이 박혀 전부 뽑을 수도 없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나보다, 나의 욕망보다 먼저 존재하던 그 나무와 그의 뿌리와 그곳을 집과 길 삼아 살던 개미들은 어디로 갈까. 도로가 생겨 교통 정체가 해소되는 동안 분재원의 나무들과 사장님, 근처에서 짖던 개와 벌과 나비와 내가 모르는 벌레들과 씨앗들은 어디로 갈까. 


식물이 어떻게 자라는지는 살피면서, 식물이 어디서 왔는지, 그곳은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생각해본 적이 있었나. 식물을 통해 우리는 어디까지 연결될 수 있을까.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922&page=3&total=67


매거진의 이전글 안과 밖의 계절은 다르게 흐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