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알츠하이머병을 진단받고, 얼마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폐암 말기를 진단받은 상황이었다. 서로를 돌볼 수 없는 두 사람을 우리는 집 근처로 모셨다.
할머니는 꽃을 좋아한다. 젊을 때는 꽃무늬 옷을 좋아하진 않았는데, 이제는 옷에도 꽃무늬가 있으면 좋아한다. 내 기억이 정확한지는 헷갈린다. 부산에 사실 적에 집에서는 항상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할머니 댁에 봄에 가본 적이 없어서 꽃을 본 적은 없다. 하지만 그림 그리길 좋아하셨던 할머니가 직접 그려서 발코니에 걸어둔 꽃은 언제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돈도 많이 들고 귀찮다며 이제 그림은 안 그리는 대신, 할머니는 창가에 항상 꽃병을 두었다. 때로는 선물 받은 꽃이, 때로는 어디선가 꺾어온 꽃이 담겨 있다. 함부로 꽃을 꺾으면 안 된다고 말씀드려도 소용은 없었다.
할머니는 자주 지갑이나 통장을 어디 두었는지 잊었고, 우리는 자주 할머니와 은행에 가서 통장을 새로 발급받았다. 지갑과 통장의 위치가 계속 바뀐 것처럼, 꽃병의 배치도 조금씩 달라졌다. 다행히도 지갑이나 통장과는 달리, 꽃병은 언제나 해가 잘 드는 창가 앞에 있다. 그래서 꽃병은 잃어버릴 일이 없는 몇 안 되는 물건 중 하나가 되었다.
할머니는 동네에 있는 치매안심센터를 노인정이라고 부른다. 정말 노인정으로 알고 계신지, 차마 본인 입에 ‘치매’라는 단어를 올리고 싶지는 않은지는 알 수 없다. 어머니의 입에서 ‘치매’라는 단어가 나올 때면, 할머니는 무서운 소리 하지 말라고 대답한다. ‘치매’라는 단어가 차별적이라서 그걸 대체하기 위해 나온 다른 단어들은 할머니가 들어 본 적이 없는 말이라 무의미했다. 우리 가족 안에서 그것은 ‘치매’일 수밖에 없었고, 할머니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할머니의 노인정에서는 다양한 활동을 한다. 노래를 같이 부르기도 하고, 여름에는 부채를 같이 만들기도 한다. 색칠 공부를 하기도 한다. 할머니가 만든 부채에는 꽃이 그려져 있다. 자꾸 떨어져서 제대로 쓸 수는 없지만, 할머니는 망가진 부채를 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번에는 화분이 늘어나 있었다. 할머니의 노인정에서 작은 화분을 줬고, 할머니는 그것을 받아 와서 꽃병 옆에 두었다. 그리고 화분에 심어져 있는 식물의 일부분을 원래 갖고 계시던 주석 잔에 옮겨 두었다.
적어도 결혼하신 이후로, 어머니가 본 바로는, 할아버지는 생전 할머니를 위해 한 것이 거의 없었다. 걸핏하면 화를 내고, 짜증을 냈다. 집안일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오랫동안 일도 안 했다. 그러다 노인 일자리로 택배 일을 시작하면서 점심을 마트에서 파는 몸에 안 좋은 빵으로 몇 년이나 해결했다. 할머니의 일이 조금은 줄었지만 그렇다고 둘의 사이가 가까워진 것은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 할머니의 생신에 할아버지는 꽃을 선물했다. 자발적인 것은 아니었다. 내게 용돈을 주라고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닦달했던 것처럼, 할머니께 꽃을 선물하라고 어머니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시켰다. 그 꽃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로 갔는지, 이미 시들어서 다 버려졌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 꽃들이 버려지기 전에 그것들은 분명 저 꽃병에 있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가끔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꽃병 앞에서 할머니가 어떤 생각을 할지, 나는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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