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4개월. 마지막 남은 레몬과 내가 함께한 시간이다. 그때만 해도 나는 레몬이 기르기 쉬운 식물인 줄 알았고, 레몬이 기르기 쉬운 식물이라는 건 한편으로 분명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남은 레몬나무는 한 그루뿐이다.
식물과의 일상에 대해 쓴 <식물의 시간>을 쓴 이후, 나는 식물을 길러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레몬나무부터 시작해보자고 제안하곤 했다. 신맛을 좋아하는 나와 어머니가 먹기 위해 우리는 이따금씩 마트에서 레몬을 잔뜩 사오곤 한다. 껍질은 베이킹 소다와 소금으로 박박 씻어서 요리에 썼다. 일부는 퓨어 올리브오일에 넣어 레몬오일을 만들기도 했고, 일부는 그대로 갈아서 샐러드에 올리기도 했다. 파스타에 조금씩 넣어 먹어도 별미였다.
껍질을 요리에 전부 쓰진 않았다. 껍질의 일부를 구연산에 잠시 절여두었다가 물과 레몬즙을 적정량 섞어 갈아 쓰면 레몬즙의 맛은 그대로이면서 즙의 양은 몇 배가 되는 레시피를 인터넷에서 보고 따라했다. 쓰레기를 조금이라도 덜 만들고, 같은 재료도 오랫동안 쓸 방법을 한창 궁리하던 시기였다. 레몬에서 나오는 씨앗을 심겠다는 생각도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등장했다. 껍질이 아까웠던 만큼, 씨앗도 아까웠다. 그렇다고 난데없이 씨앗에서 기름을 뽑아보겠다며 설칠 수는 없으니 씨앗은 무작정 심어본 것이었다.
레몬씨앗의 싹을 틔우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었다. 나와 아버지가 주로 활용한 건 키친타월 방법이었다. 레몬씨앗의 겉껍질을 벗겨두고, 물에 살짝 적신 키친타월을 작은 접시에 올려둔다. 그 중앙에 레몬씨앗을 올리고, 키친타월이 마르지 않도록 종종 물을 조금씩 더 뿌려준다. 그렇게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싹이 가득 올라왔다. 우리는 그 싹들을 다른 식물들을 사올 때 생긴 플라스틱 포트에 옮겨 심었다.
시작이 몇 그루였는지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레몬씨앗의 싹을 틔우는 건 쉬운 일이었고, 옮겨 심은 포트도 너무 많아서 자라나는 레몬이 몇인지 세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 레몬은 많았다. 아주 튼튼하게 자라는 녀석도 여럿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보니 레몬은 네 그루 남아 있었다. 그때도 특별히 이 레몬나무들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은 안 했다. 신기한 일이다. 셀 필요도 없이 많았던 레몬이 넷밖에 안 남았는데도 사라짐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았다는 게.
그리고 넷 중 둘은 그저 어느 날 이유도 모르게 죽어 있었다. 식물과 함께 살다 보면 그런 일들이 생긴다. 여느 때처럼 관리해주었는데 어느 날 보면 잎이 바삭하게 말라 있는 일들. 한 그루는 겨울에 집안에서 안전히 관리하고 있었음에도 잎이 감자 칩처럼 말라 있었다.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이미 눈앞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버지는 죽은 나무를 흙에 묻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레몬나무를 기르기 시작한 친구도 비슷했다. 그는 처음에 씨앗을 40개는 뿌렸는데 이제 남은 건 2개라며, 레몬나무가 잘 자랄 확률은 5%라고 얘기했다.
이쯤 되면 마지막 남은 레몬이에게 이름을 붙여주어야 할까. 어차피 하나뿐이니 굳이 이름까지는 필요가 없을까. 아주 듬직하게 목질화된 줄기와 파릇파릇한 이파리들, 그리고 영양제와 물조리개를 보며 믿어본다. 너만큼은 여기에 남아 있으리라고. 열매도 맺어 줄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으니까. 잘해 보자, 다음 3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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