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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den track. 길을 찾는 일에 대하여

혹은 길을 버리는 일에 대하여

by 다운


어떤 길은 너무 험난하고, 또 불빛 한 점조차 없이 어두워서 그 길이 내가 가도록 예정되어 있지 않은 길이었음을 깨닫기가 어렵다. 많은 눈물과 많은 땀, 그리고 많은 시간, 어쩌면 많은 피까지도 쏟아내고 더 이상 갈 수 없어진 이후에야 그 길이 나의 길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많이 다치고 또 지쳐서 그저 영영 그곳에 멈춰 있고 싶어 질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꼭 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다친 곳이 어디인지, 얼마나 다쳤는지 다친 이를 살피듯 나 자신을 세심히 살피고 상처를 충분히 치료하다 보면 그 길을 빠져나가는 작은 샛길이 그제야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


혹여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 길을 더 이상 걷지 않겠다고 말하기까지의 과정 그 자체가 가치 있고 용기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히는 믿는다. 그 길이 스스로를 종내 절망으로 이르게 하는 길임을,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어쩌면 목숨까지도)과 깊디깊은 절망을 교환하면서까지 그 길에 매달릴 필요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은 기적에 가까운 일일지 모른다.


신은 한쪽 창을 닫으면 다른 쪽 창을 열어둔다고 했던가, 한 걸음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아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햇살을 마음껏 만끽하기를. 따스하고 밝은 그 햇살 아래 바람을 타고 불어오는 풀내음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눈치채지 못했지만 언제나 곁에 있었던 그 모든 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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