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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쌓아 올린 마지막

얀손스, BR <브루크너 교향곡 8번>

by 안일구
BR-Klassik, 2018

독일 뮌헨에 위치한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이하 BR)은 언제나 탄탄한 내실을 갖춘 훌륭한 악단이었지만, 오랫동안 ‘최정상급’ 오케스트라로는 분류되지 않았다. 그런데 2003년, 마리스 얀손스라는 지휘자의 부임 이후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얀손스는 구조와 절제를 중시하는 지휘자였다. 그는 섬세한 리허설과 치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끈질기게 음악의 본질에 접근했고, BR은 점차 그의 철학을 고스란히 구현해 냈다. 특히 브루크너,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독일 후기 낭만주의 레퍼토리에서 이들은 놀라운 해석의 깊이를 보여주었고, 수많은 실황과 녹음에서 그 실력을 입증했다. 2010년대 들어서자 BR은 “이제는 베를린 필이나 빈 필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얻게 된다. 특히 20세기 레퍼토리에서는 “얀손스와 BR이 만들어낸 독자적인 사운드 세계”라는 표현까지 등장한다. 무려 16년에 걸친 이들의 동행은 단순한 협업을 넘어선 ‘예술 공동체’였다. 얀손스는 병세가 악화된 말년에도 BR와 무대에 올랐다. 그의 마지막 호흡과 열정은 지금도 이 오케스트라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애호가 그룹을 이야기할 때, 작곡가 이름 뒤에 '~리안'이 붙는 경우가 있다. 바그네리안, 말러리안, 브루크네리안. 이는 모두 해당 작곡가의 음악 세계를 깊이 이해하고 열광적으로 따르는 음악 애호가들이 많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만 브루크너는 바그너나 말러에 비해 대중적, 국제적 유행 시점이 상대적으로 늦은 작곡가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음악 스타일에 있다. 브루크너의 음악은 서사적 전개보다는 반복과 점진적인 고조, 장대한 건축미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래서 극적인 이야기 전개를 선호하는 청중에게는 ‘늘어지고 어려운 음악’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청중의 음악 취향이 다양해지고, 구조 중심의 음악에 대한 수용도가 높아지면서 브루크너의 교향곡들은 점차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오히려 청중에게 가장 깊이 있는 감상의 대상이고,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역량을 가늠하는 시험대로 여겨지기도 한다. 당대에 ‘이해하기 어렵고 시대착오적’이라고 비난받기도 했던 브루크너의 음악은, 시간이 흐르며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역시, 예술의 시계는 천천히, 그러나 정확하게 흐른다.



“할렐루야! 드디어 8번이 완성되었습니다. 나의 예술적 아버지께 가장 먼저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브루크너는 교향곡 8번을 완성한 뒤, 지휘자 헤르만 레비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적었다. 이 문장에는 작품 전체에 대한 브루크너 자신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흔히 브루크너 교향곡은 입문 순서가 정해져 있다. 듣는 재미가 확실한 4번(“낭만”), 바그너 애도의 선율이 등장하는 7번을 먼저 듣고, 그다음에는 상대적으로 짧고 리드미컬한 6번을 추천하는 식이다. 그런데 요즘 나는 다른 순서로 추천한다. 그냥 거꾸로 듣는 것이다. 미완성으로 남은 9번, 그리고 8번, 7번 순으로 거슬러 내려와 보자. 어차피 브루크너는 어떤 곡을 들어도 브루크너다. 이왕이면 그의 음악이 가장 깊고 진하게 농축된 후기 작품부터 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특히 8번은 브루크너가 끝까지 완성한 마지막 교향곡이다. 바그너로 치면 '파르지팔'이고, 말러로 이야기하자면 '교향곡 9번'이다. 어마어마한 길이(1시간 20분)와 구조를 토대로 한, 규모와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대성당을 닮은 듯한 작품이다.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해 나아가는 1악장에서 시작해, 거침없고 반복적인 리듬이 인상적인 2악장을 거쳐, 천상의 평화를 그리는 아다지오의 3악장에 이른다. 마지막 4악장은 앞선 모든 주제를 통합하며 찬란하고 장엄한 결말로 이어진다. 이런 거대한 곡일수록 나는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필요 이상으로 부풀려지지 않은 해석이 좋다.


얀손스는 악보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예리한 관찰력으로 작품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지휘자로 유명하다. 그다음 남는 것은 끈질기고, 집요하며, 끝도 없는 리허설뿐이다. 그는 같은 부분을 수십 번 반복해서라도 음악 속에서 결국 무언가를 찾아낸다. 그렇게 만들어낸 기적 같은 순간들은 얀손스 해석의 백미다. 이 음반에서도 그런 순간들이 음악 곳곳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며 들려온다. 또한 얀손스의 음악은 어느 한 마디도 무심히 흘러가는 법이 없다. 이 정도의 긴장감을 1시간이 넘는 곡 전체에 걸쳐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거장만이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이자 품격이다. 이 음반은 2017년의 실황 연주를 담은 기록이다. 물론 현장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공기를 가득 채운 생동감과 청중 모두가 음악을 위해 숨을 죽인 듯한 집중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숭고하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현악기와 관악기의 소리는 깊고 은은하다가도, 때로는 눈부시게 반짝인다.


브루크너와 얀손스는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평생을 음악에 바친 인물들이다. 이 음반에는 두 사람의 마지막이 겹쳐 있다. 그래서인지 브루크너가 음악을 통해 전하는 삶에 대한 통찰, 그리고 얀손스가 보여주는 음악에 대한 애정과 집중력이 그대로 담겨 있다. 얀손스는 이 연주를 남긴 뒤 2년 뒤인 2019년 세상을 떠났다. 처음 그의 부고를 들었을 땐, 그가 남긴 음악의 의미를 선명하게 실감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BR)과 함께 만든 음반들을 다시 들으며 점점 느껴지기 시작했다. 얀손스의 집요함과 깊은 이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만들어냈는지. 그중에서도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은 그의 해석이 가장 잘 드러나는 음반이다. 브루크너의 구조적인 아름다움, 얀손스의 깊은 해석, BR의 눈부신 앙상블까지. 이런 음반이 남아있어 다행이다.


Essential Track | 3번 트랙 (III. Adagio)

2분 4초경, 잠시 망설이는 듯한 흐름이 지나고, 2분 14초부터 2분 48초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절대적인 평화를 느끼게 한다. 마치 죽음을 앞둔 이가 마지막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때의 상승선율은 악장 곳곳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듣는 이의 마음을 다정하게 어루만진다. 현악기의 유려한 프레이징과 장엄함을 완성하는 금관 코랄의 선율 또한 인상 깊다. 이 악장은 무려 25분에 달하는 대곡이지만, 거대한 건축물을 쌓아 올린다고 생각하면 결코 길거나 지루한 시작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7번 교향곡에서 확인할 수 있듯, 브루크너에게 트라이앵글과 심벌즈가 울리는 순간은 음악의 정점을 뜻한다. 이후 음악이 잦아든 후 다시 한번 등장하는 상승 선율은 조금 다른 모습으로 변주되어, 또 한 번의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https://youtu.be/GBZdn8SqYr8?si=JlN8FrFmLpOh7qOG


글 안일구, 사진 김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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