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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의 세계관

게르하어, 나가노 <말러: 오케스트라 가곡들>

by 안일구
Sony Classical, 2013

말러 하면 교향곡이다. 그런데 그에겐 또 하나의 중심축이 있다. 바로 가곡이다. 말러의 오케스트라 가곡은 그의 교향곡과 함께 그의 음악 세계를 이루는 양대 축이다. 교향곡이 장대한 구조 안에서 마구 흔들리는 인간의 영혼을 탐구한다면, 가곡은 훨씬 내밀한 목소리로 삶과 죽음, 자연과 사랑, 고독과 위안 등을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는 말러의 가곡을 늦게 듣기 시작한 것이 조금 아쉽다. 독일 유학 시절, 낯설다는 이유로 수많은 보석 같은 공연들을 놓쳐버렸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 음악에 깊이 빠져들 수 있어 다행이다. 크리스티안 게르하어, 켄트 나가노,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함께한 2013년 음반은 구스타프 말러의 오케스트라 가곡 세계를 깊고 섬세하게 비춘다.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그리고 <뤼케르트 가곡집>으로 구성된 이 음반은, 말러 가곡에 입문하기 위한 최고의 길잡이다. 지나치게 감정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언어와 음악의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말러의 세계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점이 이 음반의 특별함이다.


크리스티안 게르하어는 말러 가곡의 복잡한 정서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바리톤이다. 그의 목소리는 과장이나 인위적 표현 없이 감정의 본질을 맑고도 깊이 있게 보여준다. 강한 드라마를 만들기보다, 순간의 떨림과 침묵 사이에서도 의미를 전달하는 데 탁월하다. 독일 가곡 전통에 깊이 뿌리내린 해석을 바탕으로, 게르하어는 말러가 의도한 인간의 연약함, 그리고 좌절과 희망이 함께 깃든 미세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짚어낸다. 켄트 나가노와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 역시 매우 세심한 연주를 들려준다. 나가노는 말러 음악의 극적 흐름을 억지로 부풀리지 않고, 얽혀 있는 선율과 화성을 깔끔하게 정리하며 자연스럽게 이끌어간다. 몬트리올 심포니는 이 음반에서 매우 인상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 밀도 있고 유연하며, 각 악기군이 선명하게 살아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부드럽게 어우러진다. 특히 나가노는 오페라 분야에서 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지휘자다. 그의 지휘는 게르하어의 목소리를 덮거나 밀어내지 않고, 긴장과 이완을 통해 밸런스를 절묘하게 조율한다. 오케스트라는 때로는 깊은 침묵을 만들고, 때로는 한없이 밝은 빛을 비추며, 게르하어의 목소리와 긴밀히 호흡한다.



음반에 수록된 주요 작품들은 말러의 다양한 정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는 사랑에 상처 입은 젊은이의 방랑과, 자연 속에서의 위안을 담고 있다. 게르하어는 담담하지만 결코 부족하지 않게, 다채로운 감정을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해낸다.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에서는 오케스트라가 굳이 무거운 슬픔을 연출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전체적으로 멍하고 공허한 여백이 깃든 해석을 들려준다. 그 빈 공간이 오히려 이 작품을 관통하는 상실감을 더욱 선명하게 느끼게 한다. 게르하어는 절제된 슬픔과 체념을 담담하게 그려내며, 한없이 고요하지만 마음 깊은 곳을 파고드는 절망을 전한다.


<뤼케르트 가곡집>은 이 음반의 백미이다. 구스타프 말러는 1901년에서 1902년 사이, 프리드리히 뤼케르트의 시를 바탕으로 다섯 편의 가곡을 작곡했다. 이 시기 말러는 몸과 마음이 지칠 정도로 바쁜 빈 궁정 오페라 지휘자 생활을 했다. 머지 않아 심장병 진단을 받으며 인생의 무상함과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알마 쉰들러와 사랑에 빠지며 삶의 새로운 기쁨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 격렬한 내면의 변화를 겪는 과정에서, 말러는 기존의 민요적이고 외향적인 시가 아니라, 보다 내면적이고 정제된 언어를 가진 시를 필요로 하게 된다. 그래서 선택한 시인이 바로 프리드리히 뤼케르트였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잊혀졌다'에서 게르하어는 거의 속삭이듯, 숨결에 가까운 소리로 노래한다. 이는 존재 자체가 희미해지는 듯한 감각을 소리로 표현한 듯하다. 말러의 고독과 모든 것을 초월한 평화를 느끼게 한다.


말러의 가곡들은 그의 가장 사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음악이다. 언어로는 다 담을 수 없던 말러의 생각과 감정이 보인다. 이 작품들은 말러의 교향곡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서적으로 거의 모든 교향곡이 가곡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몇몇 교향곡에서는 가곡의 주제가 완전히 동일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말러가 남긴 가장 내밀한 음악을, 게르하어는 어떠한 과장도 없이 조용히 꺼내어 보여준다. 이는 듣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말러의 심오한 질문을 누구나 새롭게 마주할 수 있게 해주는, 귀한 기록이다.


Essential Track | 8번트랙 (Kindertotenlieder: Oft denk' ich, sie sind nur ausgegangen!)

나는 자주 생각한다, 아이들은 단지 밖에 나갔을 뿐이라고,
곧 다시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 두려워하지 말자고,
그저 먼 길을 잠시 떠났을 뿐이라고.

가사를 읽고 음악을 들어보자. 밝은 화성으로 많이 채운 곡이지만, 그래서 더 슬픈 곡이다.

https://youtu.be/DtaYoXkXMIA?si=qdHyKEZRiIQv5lDT


글 안일구, 사진 김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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