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하딩, 빈 필하모닉 <말러 교향곡 10번>
“바로 이거다!” 하딩의 이 음반을 처음 들었을 때 떠오른 생각이었다. 말러 교향곡 10번에 대해 품고 있던 불편함과 의심이 말끔히 해소되었고, 거의 모든 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이 곡을 더 깊이 해석한 새로운 녹음들이 나오겠지만, 이 음반을 처음 접하며 음악과 가까워졌던 그 경험을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평생 곁에 두고 싶은 음반이다. 구스타프 말러, 다니엘 하딩, 그리고 빈 필하모닉과도 한 걸음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였다. 무엇보다 이 음악은 들으면 들을수록 그 안에 무언가 놀라운 것들이 숨겨져 있는 듯하다. 말러의 마지막 아이디어들이 살아 움직이는 보물창고다. 들을 때마다 새로운 보물을 하나씩 발견하게 된다.
“내가 쓰는 건 말러의 의도를 재구성하려는 시도일 뿐, 새로운 창작은 아니다”
-Deryck Cooke
말러의 교향곡 10번은 말 그대로 유작이다. 1910년, 오스트리아 알프스에서 작곡을 시작했지만, 인생 최악의 시기였다. 아내 알마의 외도, 악화된 심장병, 급기야 프로이트에게 상담까지 받으러 갔다. 그러니 이 곡이 고통과 죽음, 초월적인 감정으로 휘감긴 건 당연한 일. 감정의 폭포수라고 해도 될 만큼, 말러의 내면이 뭉뚱그려 녹아 있다. 이 곡은 원래 다섯 악장 구조였고, 1악장 아다지오는 거의 완성 단계였다. 2, 3악장도 꽤 진척되었지만 4, 5악장은 그냥 스케치 수준이었다. 결국 말러는 이 곡을 완성하지 못한 채 1911년에 세상을 떠난다. 이후 이 교향곡은 마치 슈베르트의 교향곡처럼 ‘미완성’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1악장만 따로 연주되곤 했다.
그런데 여기서 영국 음악학자 데리크 쿡이 등장한다. 쿡은 말러의 스케치를 바탕으로 교향곡 10번의 전체 복원 작업을 시작한다. 처음엔 여기저기서 비난을 많이 받았다. 심지어 말러의 아내 알마도 반대했지만, 1960년 그의 방송 연주를 듣고 마음을 바꾸게 된다. 이후 쿡은 1964년, 1966년, 1972년에 걸쳐 세 차례에 걸쳐 판본을 수정하면서 현재 가장 널리 연주되는 "Deryck Cooke performing version"을 완성했다. 이 판본은 말러의 스타일을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실현 가능한 형태로 만들면서 아주 성실한 작업으로 인정을 받는다. 쿡 말고도 다른 음악가들이 도전했지만, 대부분의 연주회나 음반에선 여전히 쿡 버전이 표준으로 연주된다. 특히 1악장 아다지오는 독립적인 교향곡으로도 손색이 없을 만큼 강렬하다. 번스타인이나 아바도는 언제나 말러 교향곡 10번의 1악장만을 연주했다. 1악장만을 말러의 작품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작곡가가 끝내지 못한 작품을 다른 사람이 마무리하는 게 과연 맞을까. 이건 지금도 논쟁거리다.
잠시 모차르트 이야기를 하고 싶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레퀴엠은 절반 정도만 완성된 상태였다. 나머지는 단편적인 스케치이거나 그의 머릿속에만 존재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제자였던 프란츠 쥐스마이어가 등장해, 남은 악장을 모차르트의 양식에 맞춰 완성했다. 이후 이 쥐스마이어 판본은 끊임없는 논란 속에서도 오랜 세월 동안 표준처럼 연주되어 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음악이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청중은 그것이 완벽히 진짜 모차르트의 것이 아닐지라도, 그 감정과 아름다움 안에서 모차르트의 진심을 느끼고 싶어 한다. 말러의 교향곡 10번도 이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게 아닐까. 말러가 남긴 스케치를 바탕으로 데리크 쿡은 마치 현대의 쥐스마이어처럼 조심스럽게 실마리를 이어가며, 미완의 작품에 형태를 부여했다. 관객은 그 음악 속에서 말러의 고통과 성찰, 마지막 감정과 생각을 읽어낸다. 진짜인지 아닌지는 어쩌면 부차적이다. 음악이 아름답고 진실하게 들린다면, 말러 10번의 역사는 계속될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말러 교향곡 10번의 위치는 확실히 달라졌다. 이 작품은 더 이상 ‘미완성 교향곡’이라기보다는, 말러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남긴 깊은 흔적이자 유산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이먼 래틀, 리카르도 샤이, 다니엘 하딩 같은 지휘자들은 이 곡에 깊이 매료되었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말러의 마지막 이야기를 풀어낸다. 비교해서 들어보는 재미도 크다. 나는 개인적으로 하딩의 해석에 가장 큰 매력을 느낀다. 그의 연주는 첫 악장부터 방향이 분명하다. 아다지오는 인상파 음악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섬세하고 감성적이며, 고전적인 해석을 기대한 이들에게는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불과 서른을 갓 넘긴 젊은 지휘자가 번스타인, 아바도, 샤이, 래틀과 전혀 다른 말러를 들려준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랍다. 하딩은 복잡한 구조나 철학적 깊이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순간의 감정에 집중한다. 마치 덜 다듬어진 악장들에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는 듯한 접근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말러는 낯설지만, 그래서 더 새로운 감동을 준다.
아마도 이 연주의 인상적인 분위기는 빈 필하모닉의 공이 크다. 이들의 따뜻하고 유려한 음색은 하딩의 감성적인 접근과 놀라울 정도로 잘 어울린다. 연주를 듣고 있으면 자연스레 아바도의 부드러운 해석이 떠오르기도 하고, 끊김 없이 이어지는 선율에서는 카라얀의 흔적도 느껴진다. 덕분에 말러 10번이 그리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스케르초처럼 복잡한 악장들도 유기적인 흐름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전곡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이어진다. 마지막 악장의 북소리 같은 세부 표현에서도 하딩은 자극적인 연출을 피하고, 말러가 염두에 뒀을 법한 묵직한 거리감을 세심하게 살려낸다. 특히 5악장의 결말에 다다르면, 하딩은 유독 아름다운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마무리가 이렇게 인상 깊게 들리는 건 앞 악장들에서 충분히 잘 쌓아올렸다는 증거다. 다 듣고 나면, 하딩이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와 함께 말러 10번으로 도이치그라모폰 데뷔를 치른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의 감상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9번으로 끝났다고 믿었던 말러의 보물창고는 아직 열려 있다. 이 음반으로, 다시 그 문을 두드려보자.
Essentioal Track | 1번트랙 (Mahler: Symphony No. 10 in F sharp (unfinished) - Ed. Deryck Cooke - 1. Adagio)
2011년, 말러 서거 100주년을 맞아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특별한 연주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말러 교향곡 10번의 제1악장을 들려주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악보 없이, 음악을 온전히 내면화한 채 지휘했고, 연주는 마치 오래전부터 익숙했던 곡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물론, 연주된 것은 오직 1악장뿐이었다. 아바도는 1995년에도 빈 필하모닉과 이 악장을 녹음한 바 있다. 그가 말러의 미완성 교향곡에서 선택한 부분은 늘 이 한 악장이었고,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듯한 태도였다. 반면, 그가 가장 아꼈던 제자 중 하나인 대니얼 하딩은 빈 필과 베를린 필을 이끌며 교향곡 전 악장을 완주했다. 아바도의 1악장이 전부였다면, 하딩의 1악장은 마라톤의 첫 10km쯤이다. 해석과 태도는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아바도는 여전히 내 최애 지휘자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하딩의 1악장이야말로 이 교향곡의 진짜 시작처럼 느껴진다.
https://youtu.be/KzyYeChwsk8?si=6_vLL_AlB-w-iDJp
글 안일구, 사진 김신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