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랑, 지나 앨리스, 넬손스 <Saint-Saëns>
랑랑은 늘 얘깃거리를 몰고 다닌다. 좋아하는 사람은 열광하지만, 싫어하는 사람은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랑랑이 처음 유럽에 무대에 등장했을 때를 떠올려보면 역시 인기도에 비해서 환영받지 못한 연주자였다. 쇼맨십이 과하고 깊이가 없다는 말들이 따라다녔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도, 미국과 아시아에서는 이미 스타였지만, 유럽 음악계가 그를 받아들이는 것은 힘든 일처럼 보였다. 그러나 압도적인 티켓 파워 앞에서 상황은 달라졌다. 관객이 원하는 것보다 강력한 것은 없다. 결국 유럽의 최고 오케스트라들, 빈 필, 베를린 필까지도 그를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관객의 선택은 평단을 움직였고, 이제 그는 최고의 개런티를 받으며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세계적 연주자가 되었다. 실제로 공연장에서 마주하는 랑랑은 확실히 다르다. 무대 위에서 발휘되는 집중력, 관객을 단숨에 끌어당기는 제스처와 에너지, 예측할 수 없는 순간의 긴장감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음반의 경우도 랑랑은 언제나 극찬과 혹평이 엇갈린다. 생상스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 이번 음반은 어떨까? 레퍼토리가 꽤 흥미롭다. 생상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과 <동물의 사육제> 같은 대표작은 물론이고, 포레, 라벨, 들리브 같은 동시대 프랑스 작곡가들의 곡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작곡가들의 작품까지 포함되어 있다. 랑랑이 소개하면 영향력을 갖는다. 잊고 지내던 유명한 곡도 다시 보게 되고, 듣다 보면 “이런 곡도 있었네?” 하며 새로운 발견을 하는 즐거움이 따른다. 게다가 편성도 피아노 솔로, 듀오, 협연 등으로 다양해서 음색과 분위기의 변화도 지루할 틈이 없다.
특히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이 음반의 중심축이다. 생상스 특유의 화려한 기교와 악상의 대비가 돋보이는 작품인데, 랑랑은 여기서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한다. 첫 악장의 장엄한 서주부터 빠른 패시지로 몰아붙이는 프레스토까지, 곡이 가진 드라마틱한 성격을 마치 무대 위에 있는 사람처럼 강렬하게 전달한다. 여기에 넬손스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깊고 단단한 음향이 더해지면서, 다른 음반에서 듣기 힘든 풍성한 긴장감이 만들어진다. 오케스트라는 잠깐씩 완전히 빠져있기도 하고, 푹풍처럼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피아노와 함께 강력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 피아니스트 지나 앨리스와 함께 연주하는 드뷔시의 작은 모음곡, 포레의 레퀴엠등에서도 랑랑의 섬세한 터치와 표현력이 돋보인다. 그러나 이 음반에서 랑랑이 숨겨놓은 진짜 보물은 루이즈 파렝크, 쥘리 소이, 제르메느 타이유페르르, 멜라니 보니스, 릴리 불랑제 같은 프랑스 여성 작곡가들의 짧은 소품들이다. 섬세한 선율과 독창적인 화성이 빛나는 작품들이다. 랑랑은 이 곡들을 담백하게 풀어내며, 작은 음악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이름들이 그의 연주를 통해 다시 우리에게 소개되는 것은 무척 반갑고 기쁜 일이며, 이 음반이 지닌 진짜 숨겨진 보물이라 할 만하다.
모든 연주는 역시 랑랑답다. 음반의 가장 처음에 위치한 생상스의 대표곡, 동물의 사육제에서 그는 각각 동물들의 개성을 생생히 불러낸다. ‘암탉과 수탉(Hens and Cocks)’에서는 짧고 날카로운 터치가 마치 닭들이 쫑알거리는 듯하고, ‘거북이(Tortoises)’에서는 느릿하면서도 유머러스하다. ‘아쿠아리움(Aquarium)’에서는 맑고 반짝이는 소리들이 합쳐서 마법처럼 들리고, ‘백조(The Swan)’에서는 최고의 첼로 연주와 더불어 피아노의 연주가 잔잔한 호수를 만든다. 음색의 향연이다. 유리처럼 투명하고 선율이 우아하게 빛난다. 디테일들이 살아나면서 동물과 풍경도 살아난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아무래도 녹음이라는 매체가 가진 한계 때문이다. 공연장에서의 생생한 현장감은 빠져 있다. 어떤 순간에는 피아노가 지나치게 전면으로 나서서 오케스트라가 뒤로 밀려난 듯 느껴지기도 한다. 엔지니어들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곡마다 다른 음향적 접근을 시도한 듯하다. 공간감과 마이크 배치를 달리해서, 각 작품의 개성이 녹음에서도 살아나도록 한 점은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긍정적 효과를 노린 것이겠지만, 음반 전체가 조금 정신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실제로 조용한 솔로 트랙에서는 밀도 높은 터치와 숨결이 더 가까이 다가오다가도 하고, 갑자기 소리가 쾅 하고 터지면서 공간이 넓게 열리기도 한다.
결국 이 음반은 한마디로 ‘랑랑스럽다’고 요약할 수 있다. 화려함과 쇼맨십, 동시에 예상치 못한 섬세함까지 모두 담겨 있다. 좋아하는 이들은 더 깊이 빠져들 것이고, 싫어하는 이들은 여전히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은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생상스의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랑랑 특유의 매력, 그리고 덜 알려진 프랑스 여성 작곡가들의 소품을 만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는 무대에서 청중과 만들어온 힘을 고스란히 음반으로 옮긴다. 랑랑은 도이체 그라모폰과의 프로젝트 Piano Book으로 10억 스트리밍을 기록했고, 2024년 새로 발견된 쇼팽 곡을 가장 먼저 음반에 담은 아티스트 역시 그였다. 결국 답은 청중이 내리고 있다. ‘랑랑과 청중의 콜라보’가 앞으로도 클래식 음악의 판도를 흔들 수 있을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Essential Track | 8번 트랙 (Saint-Saëns: Carnival of the Animals, R. 125: VII. Aquarium)
대부분 도이체 그라모폰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이 영상을 통해 이 음반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음악은 연주되고 나면 그 자체로 고유한 힘을 갖게 된다. 이 음악이 가진 힘은 정말 강력하다. 피아노 두 대를 제외하면, 플루트, 글로켄슈필, 현악기가 전부인 이 음악은 좋은 연주자들을 만나 마법이 된다. 갑자기 시간의 흐름이 멈추는 듯하다. 맑고 투명한 선율은 물결처럼 흘러 관객을 다른 세계로 데려가고, 잠시나마 현실을 잊게 만든다. 이 짧은 트랙 하나만으로도 앨범 전체를 듣고 싶게 만든다.
https://youtu.be/1NEdFFGjS7o?si=8PqsCTvu9i6FjIYW
글 안일구, 사진 김신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