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진의 <모과>
어릴 적 우리 집 차는 버건디색의 엘란트라였다. 뒷문을 열면 쿰쿰한 천 시트 냄새가 코를 찔렀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천장 손잡이에 망에 씌워진 모과 하나가 방향제마냥 걸려 있었다.
오래 묵은 천 냄새 사이로 스며드는 모과향을 맡고 있으면 금세 멀미를 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나는 수도 없이 고속도로 갓길에서 속을 게워냈고, 모과향을 맡지 않으려고 창문 핸들을 열심히도 돌려댔다.
나쁜 기억은 몸이 기억한다던가. 아직도 모과향을 맡으면 그 옛날 탁한 천 시트의 냄새가 떠오른다. 그런데 모과 꼭지에서 피어나는 미묘한 향긋함에 코끝이 달큰해지기도 한다. 몹쓸 악몽이 긴 세월에 쓸려 흐려지고 왜곡된 탓일까.
그래서 백현진의 <모과>를 들으면 인상을 한가득 찌푸리면서도 쌉싸름한 모과 껍질을 통째로 씹고 또 씹는 기분이다. 퍽 달갑진 않은 지난 날이지만 이따금씩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