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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인칭 시점 Oct 28. 2021

나의 색깔은 블루

“D님. X년 X월 X일 오전 8시 50분경 사망하셨습니다.” 차디찬 사망선고. D는 찰나에 그 말을 듣고 말았다. 아득하고도 선명한 생의 마지막 목소리. 2시간 전 허겁지겁 먹고 나온 김치찌개가 생각났다. 가스불에 데운 온기가 채 식기도 전에 죽은 것이다. 적막한 어둠 속에서 시큼하게 쉬어버리겠지. D는 억울했다. 파란불에 건넜을 뿐인데. 지키라는 질서를 지켰을 뿐인데. 사거리 맞은편에서 난폭하게 달려온 덤프트럭이 별안간에 삶을 집어삼켰다.


D는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부모님 빚도 이번 달 이자만 납입하면 청산되고 승진을 위해 인사고과 평가 대비도 해야 했다. 얼마 전에 헤어진 여자 친구와 찍은 사진도 정리해야 했다. 이젠 영원히 그 5.5인치 기계 안에 각인될 추억이다. 죄책감이 들었다. 놓아주지 못하고 끝없이 집착하는 모양새가 됐다. 인생의 마지막이 이렇게 구질구질하면 안 되는데. 파우스트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젊음을 거래한 것처럼 삶을 되돌리고 싶었다. 이 모든 생각을 하고 체념하기까지 단 10초가 걸렸다.


D는 오감이 떠다니는 걸 느꼈다. 구천을 떠돈다는 말이 이거였구나. 영안실 벽을 투과하는데 마치 롤러코스터를 탈 때 오장육부가 역류하는 기분이 들었다. 생경한 느낌을 곱씹을 새도 없이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아까 사망선고를 내린 의사가 사후절차를 위한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병원복을 입은 환자들은 복도를 서성이며 고통을 호소했다. 병원 밖은 백색소음으로 가득했다. 거리 위 수많은 목소리가 한데 뭉그러져 그 누구의 삶 하나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하지만 D에겐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땅에 발을 디디면 좋을 뿐이었다.

   

갑자기 D는 버스정류장에 멈춰 섰다. 20대 중후반의 남녀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남자가 여자에게 질문을 건넨다. “만약 죽은 후에 색깔로 남을 수 있다면 S씨는 어떤 색으로 남고 싶어요?” 여자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핑크색을 말한다. 저승 문턱에 선 D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문득 그저께 본 영화가 생각났다. 무채색으로 살아가던 주인공이 운명의 파란 머리 그녀를 만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 D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늘 파란색은 차갑고 우울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D에게 영화 속 파란색은 그 무엇보다도 뜨겁고 애틋했다. 키스할 때 뺨에 엉겨 붙는 파란 머리칼이 그토록 포근할 수 있을까.


D는 얼마 전 주말에 혼자 들렀던 속초해수욕장을 떠올렸다. 발밑으로 내려다보면 한없이 투명하지만 지평선 너머로 갈수록 짙푸르게 깊어지는 파란색 바닷물. 그리곤 스스로에게 물었다. 삶이 발밑에서 바다 지평선으로 가는 일이라면 나는 어디쯤에 있을까. 확실한 건 지평선 근처도 가지 못했다는 것이겠지. D는 색깔로나마 삶을 완주하고 싶어졌다. 파란색으로 남아 바다 지평선의 색으로 무르익는 것. 마크 로스코의 작품처럼 캔버스 끝에서 끝으로 갈수록 짙어지는 색이 되어 살아가는 것. 구천 너머에 삶이 있다면 그래보고 싶었다.


서울 하늘엔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D는 생각했다. 파란색이 되면 하늘 언저리에 칠해질 수 있을까. 가끔 먹구름이 내 눈을 가려도 이 세상을 볼 수 있을까. 막연한 기대를 할 즈음 D는 정신이 흐려지는 걸 느꼈다. 이제 진짜 사라지는 건가. 신이 있다면 날 파란색으로 하늘에 흩뿌려주길. D는 생전 믿어본 적도 없는 신에게 간절히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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