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집어삼킨 빛
소리도 없이. 미동도 없이. 미련도 없이. 열흘이 지나도록 우재는 방에 틀어박혀 이 말들을 되뇌었다. 맑음, 20도. 핸드폰 날씨창을 끄고 우재는 오랜만에 방 천장을 올려다봤다. 새카만 어둠 사이로 뿌연 먼지가 황망하게 부유하고 있었다. 우재는 군대 훈련소 시절을 떠올렸다. 침상을 기점으로 사방이 군장이었지. 매캐한 모래먼지를 가득 머금은 군장. 밤 10시 소등만 하면 숨어있던 모래먼지는 호롱불처럼 기어 나와 생활관을 비췄다.
시뿌연 빛에 생활관의 밤은 늘 백야(白夜)처럼 일렁였다. 백야. 흰 밤. 그래서 잠들지 못하는 밤. 우재는 연병장을 가득 메우는 고함과 욕지거리보다 이 밝고 고요한 밤이 더 무서웠다. 그 밤의 공기는 마치 사지를 비틀어 남은 땀과 기운마저 쥐어짜려는 듯 맹렬하고 차가웠다. 멎지 않는 기침을 틀어막을 때마다 질끈 감은 눈 사이로 스쳐가는 섬광. 그 때 내게 밤은 없었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우재는 마른 입술을 씰룩거렸다.
쿵쿵. 드르륵. 스윽스윽. 삐리릭. 엄마가 나갔구나. 우재는 손가락을 펴 하나씩 접기 시작했다. 6시간. 오늘 오롯이 혼자인 시간. 그래도 방문은 열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우재는 햇빛을 쬐면 몸이 간지러웠다. 알레르기는 아니라는데 도통 연유를 알 길이 없었다. 열흘 전 처방받은 약은 먹다 치워버렸다. 병자도 아닌데 유난이나 떨고 싶진 않았다.
애꿎은 옷소매만 손톱으로 짓이기던 찰나에 암막커튼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 미세한 빛이 실 사이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열흘 전 엄마와 나간 마지막 외출에서 사온 커튼. 우재는 저 커튼을 사기 전 엄마가 건넨 말이 떠올랐다. 좀 얇은 거 같은데 괜찮겠어? 완전히 막는 게 낫지 않을까? 그녀는 아들의 알레르기와 불면증이 빛 때문이라 믿었다. 답답하더라도 며칠만 그렇게 지내면 낫지 않을까? 채근하듯 물어보는 그녀에게 우재는 묵묵부답이었다. 고개만 가로저으며 그냥 이 커튼을 집어 들었다. 매대로 향하는 도중 우재는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간지러움에 움찔거렸다. 날선 햇빛이 매장 통창을 비집고 들어오는 중이었다.
피하고 싶은데 완전히 외면할 수 없는 마음. 우재에게 빛은 그런 의미였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주워 얼마나 자랐는지 볼 수 있을 만큼의 빛만 있으면 됐다. 머리카락 길이로 지나간 시간을 센다니. 거기선 머리카락으로 시간을 셀 순 없었는데. 별안간 깊게 패인 관자놀이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섬광. 지겹도록 번쩍이는 그 빛이 다시 눈꺼풀 사이를 스쳤다. 우재는 책상 위에 놓인 손전등을 쥐었다. 이마와 손바닥은 땀으로 흥건했다.
딸깍. 손전등의 환한 빛 너머로 보이던 둥그스름한 머리들. 일어나세요. 밤 12시구나. 우재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서넛이 서 있는 가운데 최고참인 놈은 늘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날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시작해야지. 안 그래 우재야? 손찌검을 하는 날도, 하지 않는 날도 녀석들은 2시간은 반드시 채웠다. 그리곤 연달아 불침번을 세웠다. 얼얼하고 욱신거려 잠을 설치면 새벽 5시였다. 1시간이나 자면 다행이었다. 밤을 잃어버린 2년. 빛에 시달리던 2년. 그 고요하고도 지난한 백야의 지옥에서 벗어난 게 오늘로 딱 한 달이었다.
우재는 손전등의 버튼을 매만졌다. 그들은 어떻게 매일 이 버튼을 눌렀을까. 나는 어떻게 매일 소리도 없이 숨죽일 수 있었을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리곤 손전등을 다시 내려놨다. 도저히 버튼을 누를 용기가 나질 않았다. 맹렬한 그 빛이 다시 이 어둠을 집어삼킬까 두려웠다. 다시 우재는 손가락을 폈다. 내가 잃어버린 밤은 며칠인가. 수없이 접었다 펴도 그 시간엔 닿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멈추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잃어버린 밤들을 다 모아 깊고 기나긴 잠에 들고 싶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우재는 저린 손을 다독였다. 어느새 커튼 사이로 새어나오던 빛이 조금씩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