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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인칭 시점 Nov 16. 2021

소리도 없이

어둠을 집어삼킨 빛

소리도 없이. 미동도 없이. 미련도 없이. 열흘이 지나도록 우재는 방에 틀어박혀  말들을 되뇌었다. 맑음, 20. 핸드폰 날씨창을 끄고 우재는 오랜만에  천장을 올려다봤다. 새카만 어둠 사이로 뿌연 먼지가 황망하게 부유하고 있었다. 우재는 군대 훈련소 시절을 떠올렸다. 침상을 기점으로 사방이 군장이었지. 매캐한 모래먼지를 가득 머금은 군장.  10 소등만 하면 숨어있던 모래먼지는 호롱불처럼 기어 나와 생활관을 비췄다.      


시뿌연 빛에 생활관의 밤은 늘 백야(白夜)처럼 일렁였다. 백야. 흰 밤. 그래서 잠들지 못하는 밤. 우재는 연병장을 가득 메우는 고함과 욕지거리보다 이 밝고 고요한 밤이 더 무서웠다. 그 밤의 공기는 마치 사지를 비틀어 남은 땀과 기운마저 쥐어짜려는 듯 맹렬하고 차가웠다. 멎지 않는 기침을 틀어막을 때마다 질끈 감은 눈 사이로 스쳐가는 섬광. 그 때 내게 밤은 없었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우재는 마른 입술을 씰룩거렸다.

     

쿵쿵. 드르륵. 스윽스윽. 삐리릭. 엄마가 나갔구나. 우재는 손가락을 펴 하나씩 접기 시작했다. 6시간. 오늘 오롯이 혼자인 시간. 그래도 방문은 열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우재는 햇빛을 쬐면 몸이 간지러웠다. 알레르기는 아니라는데 도통 연유를 알 길이 없었다. 열흘 전 처방받은 약은 먹다 치워버렸다. 병자도 아닌데 유난이나 떨고 싶진 않았다.      


애꿎은 옷소매만 손톱으로 짓이기던 찰나에 암막커튼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 미세한 빛이 실 사이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열흘 전 엄마와 나간 마지막 외출에서 사온 커튼. 우재는 저 커튼을 사기 전 엄마가 건넨 말이 떠올랐다. 좀 얇은 거 같은데 괜찮겠어? 완전히 막는 게 낫지 않을까? 그녀는 아들의 알레르기와 불면증이 빛 때문이라 믿었다. 답답하더라도 며칠만 그렇게 지내면 낫지 않을까? 채근하듯 물어보는 그녀에게 우재는 묵묵부답이었다. 고개만 가로저으며 그냥 이 커튼을 집어 들었다. 매대로 향하는 도중 우재는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간지러움에 움찔거렸다. 날선 햇빛이 매장 통창을 비집고 들어오는 중이었다.  

   

피하고 싶은데 완전히 외면할  없는 마음. 우재에게 빛은 그런 의미였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주워 얼마나 자랐는지   있을 만큼의 빛만 있으면 됐다. 머리카락 길이로 지나간 시간을 센다니. 거기선 머리카락으로 시간을   없었는데. 별안간 깊게 패인 관자놀이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섬광. 지겹도록 번쩍이는  빛이 다시 눈꺼풀 사이를 스쳤다. 우재는 책상 위에 놓인 손전등을 쥐었다. 이마와 손바닥은 땀으로 흥건했다.      


딸깍. 손전등의 환한 빛 너머로 보이던 둥그스름한 머리들. 일어나세요. 밤 12시구나. 우재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서넛이 서 있는 가운데 최고참인 놈은 늘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날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시작해야지. 안 그래 우재야? 손찌검을 하는 날도, 하지 않는 날도 녀석들은 2시간은 반드시 채웠다. 그리곤 연달아 불침번을 세웠다. 얼얼하고 욱신거려 잠을 설치면 새벽 5시였다. 1시간이나 자면 다행이었다. 밤을 잃어버린 2년. 빛에 시달리던 2년. 그 고요하고도 지난한 백야의 지옥에서 벗어난 게 오늘로 딱 한 달이었다.

    

우재는 손전등의 버튼을 매만졌다. 그들은 어떻게 매일 이 버튼을 눌렀을까. 나는 어떻게 매일 소리도 없이 숨죽일 수 있었을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리곤 손전등을 다시 내려놨다. 도저히 버튼을 누를 용기가 나질 않았다. 맹렬한 그 빛이 다시 이 어둠을 집어삼킬까 두려웠다. 다시 우재는 손가락을 폈다. 내가 잃어버린 밤은 며칠인가. 수없이 접었다 펴도 그 시간엔 닿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멈추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잃어버린 밤들을 다 모아 깊고 기나긴 잠에 들고 싶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우재는 저린 손을 다독였다. 어느새 커튼 사이로 새어나오던 빛이 조금씩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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