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마당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다. 나는 열 살 무렵까지, 아내는 결혼 전까지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았다. 이후로 난 40년 넘게, 아내는 30년 가까이 아파트에서 지낸 거다.
분당 아파트는 살기 편했다. 학교는 가까이에, 학원은 다양하게 있어서 아이 키우기 무척 좋은 환경이었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도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서울로 나가는 대중교통도 불편함 없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아파트가 불편해졌다. 살기에 답답하게 느껴진 거다. 옆집은 물론 위아래 집들이 모두 우리 집을 포위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창문을 열면 화단의 나무들보다는 하늘을 가린 다른 아파트부터 보였고.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선택한 주거 공간인 아파트는 아무런 잘못이 없을 거다. 오래도록 아파트에서 살았으면서도 그 환경에, 이웃에 적응하지 못한 나와 내 가족이 문제였을 거다. 아무튼, 우리 가족은 생활만을 위한 공간으로는 나무랄 데 없던 아파트가 싫어졌고 그렇게 떠났다.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다는 꿈에 불을 지핀 계기가 있었다. 언젠가 용인의 전원주택에 사는 지인의 초대를 받았다. 소설가인 그는 마당에 텃밭을 일구고 야생화를 키웠다. 마침 해당화가 멋들어지게 피었었는데 보기에 참으로 좋았다.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고는 꽃망울이 올라오길 기다립니다. 마침내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면 내 마음도 활짝 펴진 걸 느끼게 된답니다."
소설가는 야생화로 물든 마당을 자랑스러워했다. 함께 간 일행들도 글 쓰는 사람들이라 감수성이 폭발했다. 난 아름다운 마당에도 감동을 받았지만 소설가가 들려준 생명들이 자라는 이야기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아파트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난 뒤 분당에서 멀지 않은 전원주택을 알아보았다. 아무리 가까워도 우리 가족의 생활권인 서울과는 멀었다. 전원주택을 알아볼수록 집에서 오랜 시간 생활하는 사람들을 위한 주거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뿐이었다. 밖에 있는 시간이 많은 우리 가족과는 맞지 않았던 거다.
그래서 마당을 대신할 수 있는, 옥상이 딸린 다세대 주택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옥상을 꾸미기 시작했다.
야생화부터 시작했다. 우선 모종을 구해서 예쁘게 놓아 보기로 했다. 화원 주인에게 겨울을 나는 야생화를 추천받아서 종류별로 한 개씩 들여놓았다. 더 많이 들여올까도 했지만 우선 이번 겨울을 보내며 경험을 쌓아보기로 했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먼저 시작한 거다.
목공에 취미가 있는 아내는 목공소에서 나무를 잘라오더니 테이블을 뚝딱 만들었다. 처음에는 가족이 사용할 테이블인가 했는데, 나중에 보니 꽃들을 올려놓았다. 예쁜 조명도 더해 낮에는 물론 밤에도 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쑥갓 씨앗도 심었다. 사흘쯤 지나니까 싹이 올라왔는데 너무나 신기했다. 그런데 싹은 너무나 천천히 자라는 거다. 쑥갓을 따 먹으려면 아주 멀었다. 어쩌면 그냥 망친 건지도 모른다. 다음에는 모종을 사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퇴근하니 옥상에 이상한 화분이 있었다. 대파였다. 아내가 냉장고에서 여러 날 보관하던 대파를 뿌리째 심은 거다.
"사놓고 먹질 않아서 냉장고에서 시들어가니까 그냥 한 번 심어본 거야. 뿌리는 싱싱해 보이니까."
저렇게 심는다고 다시 자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보니까 전날보다 더 기울어 보이기도 했고. 점점 더 기울어졌다. 아내는 쓰러져 가던 대파를 싹둑 자르곤 송송 썰더니 냉장고에 넣어 버렸다. 화분에는 대파 뿌리만 남았고.
그런데 그다음 날 보니 대파 자른 부분이 좀 하얗게 변한 거다. 우린 설마 했다. 또 다음날 보니 잘린 부분에서 뭔가가 살짝 올라왔다. 우린 놀랐다. 대파가 뿌리를 내리고 새롭게 자라고 있었던 거다.
대파는 그렇게 무럭무럭 자랐다. 잘렸던 부분이 길게 올라오며 좁아지더니 시장에서 파는 대파처럼 끝이 뾰족해졌다. 아내는 또 싹둑 잘라서 송송 썰었다. 이제 대파 살 일은 없겠다면서.
옥상집에 산 지 이제 겨우 한 달 지났지만 아파트에서 겪지 못한 경험을 하며 산다. 가을이 깊어가며 잎이 조금씩 떨어지지만 야생화는 꽃의 품위를 놓지 않고 있다. 쑥갓은 언제 다 자랄지 모르지만 하루하루 자라며 기쁨을 주고 있다. 나비와 산새도 날아와 눈이 심심치 않다.
아파트를 떠나면 다들 불편할 거라고 했지만, 나는 옥상집에서 매일 감동하며 산다. 예전에 미처 몰랐던 생명의 기운을 느끼며 그 힘찬 모습에 위로를 받는 날이 계속되는 거다.
어쩌면 사소한 변화일 수 있는데 우리 가족에게는 큰 기쁨이 된다. 그러고 보면 감동이나 기쁨은 먼 곳에 있지 않고 우리 옆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거 같다. 예전엔 이것을 왜 몰랐을까. 하지만 지금이라도 알았으니까 다행이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
야생화들이 겨울을 어떻게 날지 벌써 궁금해진다. 무사히 넘기겠지? 내년 봄이 더더욱 기다려진다. 야생화를 더 많이 들여다 놓을 예정이니까. 이런 설렘이 봄을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 아닐까 싶다.
생명을 키우는 마음이 이렇게 설레는 줄 몰랐다. 아이를 키우며 느꼈던, 그러나 살면서 잊었을 그런 마음이 되살아 난다. 옥상집이 나와 우리 가족을 변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