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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탐험가 Jul 10. 2020

치매 강아지와 수면장애의 상관관계

죽은 나의 개를 기억하는 방법 #9

  불면이 깊다. 아니, 잠을 못 이룬다기보다 유지하기 힘들다. 잠이 들기는 한다. 그렇지만 깊은 잠에 빠지기 전에 방황하다 깨어 버리곤 한다.      


  가수면인가? 와이프는 내가 잠을 잔다고 했다. 그러나 침대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다 들린다. 자면서 외부 자극에 반응한다? 그게 가능할 줄 몰랐다.   

  

  나의 불면의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작은 집으로 이사 오면서 잠을 통 이루지 못했다. 갑자기 못 잤다기보다는 몸무게가 서서히 늘어나듯이 나도 모르게 수면장애에 빠져 버린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잠을 못 자면 몸이 힘들다. 당시에 제일 싫었던 순간이, 새벽에 어둠이 서서히 밝아오는 것을 각성상태에서 느끼는 것이었다. 이런 날이 계속되니 약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의사는 나와 가족에 관해 물었고, 내 삶을 쥐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끌어내었다. 그와의 상담으로 나도 몰랐던 내 깊은 곳의 외침을 들을 수 있었다. 원인을 알고 약을 먹으니 내 잠은 서서히 돌아와 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병원에 가기에는 좀 애매한 수면 리듬이다. 아니, 약을 먹고 잠을 푹 자기 어려운 상황이다. 외부 환경에 의한 수면장애이다. 물론 나의 내부 요인도 어느 정도 간여는 하겠지만 요즘 잠을 못 자게 하는 요인은 분명 외부에 있다.     


  함께 사는 비니가 그 주인공이다. 이제 14살이 된 비니는 사람과 비교하면 상당히 오래 살아온 견생이다. 사람도 그렇지만 나이가 들면 몸이 온전치 못하다. 몇 년 전에 크게 아프고 난 후로 서서히 약해졌다. 산책을 오래 견디지 못했고 잘 듣지를 못한다.      


  한번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왔는데 비니가 안 보이는 것이었다. 보통은 마중을 나와서 어릴 때처럼은 아니지만 반겨주곤 하는 아이였기에 설마 했다. 집으로 가보니 비니가 누워있는 게 보였다. 

    

  비니야!     


  반응이 없다. 무서웠다. 다시 크게 불러 봐도 꿈쩍 안 한다. 너무 무서웠지만, 조심스레 흔들어 봤다.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자기도 놀랬는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없는지 집안에서 발버둥을 쳤다. 그 날 이후 관찰을 해보니 귀가 안 들리는 것이다. 불러도 반응이 없다.      


  못 듣게 된 지 몇 달 후에는 눈으로 봐도 반응을 안 하게 되었다. 엄마가 퇴근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마중을 하고 한동안 따라다닌 비니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엄마가 퇴근하건 간식을 주건 반응을 안 한다. 혼자만의 세계에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밤에 온 집을 배회하거나 갑자기 발작하곤 한다.     


  뇌전증 경련과 비슷한 발작은 비니가 크게 아팠을 때부터 생긴 증상이지만 치료 약을 먹으면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약도 잘 듣지 않았고 경련 주기가 잦아지면서 그 정도가 심해졌다.     


  경련하면 쓰러져서 노를 젓듯이 네 발을 거세게 휘젓는다. 심한 날은 머리를 바닥이나 벽에 찧기도 해서 피를 흘리기도 한다. 그리고 쓰러진 채로 오줌을 싸고 똥도 싸 버린다. 경련이 계속되면 그 위를 몸으로 뭉갠다.     

  왜 꼭 새벽에 발작하는지 ······.     


  깨어 일어나 다치지 않게 안전한 곳으로 옮겨서 지켜본다. 경련이 멈추면 젖은 몸을 물티슈로 닦아주고 어질러진 바닥을 청소하고 락스로 다시 닦는다. 주로 자기 집에서 자다가 경련이 시작되기 때문에 개집 바닥도 배설로 더럽혀진 경우가 많다. 어쩔 수 없이 개집과 바닥에 깔린 패드를 락스로 청소하고 잘 말린다.     


  여기까지 하고 있으면 어둠이 물러가기 시작한다. 이쯤 하면 잠이 달아나야 하는데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서 눈만 떠 있는 거 같고, 머리는 얻어맞은 거 같이 욱신거린다.     


  그래도 경련은 매일 하는 것은 아니니까 감수할만하다. 언제부턴가 밤마다, 새벽 3시 정도에, 온 집안을 배회한다. 돌아다니다 어느 한 곳을 멍하니 쳐다보며 숨을 가쁘게 몰아쉰다. 그러다 방바닥을 마구 핥는다. 


방바닥 핥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가? 


  가쁜 호흡과 거친 혓바닥으로 방바닥을 마찰시키는 소리가 아랫집에도 들릴까 봐 곤혹스럽다. 그 소리에 잠에서 깨어 불러 봐도, 흔들어 봐도 비니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반응을 안 하는 것이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치매’ 증상이란다. 개도 치매에 걸린단다. 하긴 암에도 걸리는데···. 


  게시물들을 보니 치매를 앓고 있는 반려견들이 많은 듯했다. 치료와 간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틈날 때마다 검색해 보았다. 다양한 약, 치료 약이라기보다는 영양제를 권하는 내용이 많았다. 동네병원에서도 비슷한 제품을 권하면서 주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교과서적인 답변만 해줄 뿐이었다.     


  오랜만에 집에 온 아들이 비니 때문에 슬퍼한 건 치매보다는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고 집에만 오면 꼭 붙어 있던 비니가 가족을 몰라볼 정도로 늙었다는 게 현실로 다가오지 않는다고 했다.     


  비니가 밤에 배회할 때마다 나의 뇌도 깨어나 배회를 한다. 물 핥는 소리, 사료 씹는 소리, 심지어 패드 조준에 실패해 바닥에 오줌 떨어지는 소리···. 그 모든 소리를 따라다니다 얕은 잠도 포기하는 나날이 많아졌다.      

  비니와 함께 산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짧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하루하루는 그 어떤 하루들보다 길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지금 내가 겪는 고통이 크지만, 그동안 함께 살며 받은 사랑이 훨씬 크다.     





그림은 프랑수아 부셰(Francois Boucher)의

'잠든 양치기'이다.


옆에 있는 강아지를 믿고 양치기는 깊은 잠에 빠졌다.

나도 비니를 안고 잠에 든 적이 많았다.

겨울에는 따뜻했고 여름에는 덥지 않았다.


그러다...

비니 때문에 잠을 못 자게 된 날도 많았다.


나도 못 잤지만

비니도 편하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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