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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탐험가 Jul 03. 2020

꼬마가 집을 나갔다

죽은 나의 개를 기억하는 방법 #8

  크게 아프고 나니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아빠와의 산책도 얌전하게 해야 하고 꼬마랑 놀아주는 것도 점점 힘들어진다. 아닌 게 아니라 꼬마가 쑥쑥 크더니 이제 엄마는 물론 아빠보다도 크다. 얼굴에 털이 나더니 목소리도 예전 같지 않아서 제법 우렁차게 나를 불러 움찔할 때도 있다. 솔직히 가끔 그 목소리에 몸이 움직이곤 했다. 그래도 꼬마는 꼬마. 내가 너를 챙긴다.     

 

  온 가족들이 집에 함께 있는 시간도 좋지만, 나만 남아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자유가 좋아진 것이다. 내가 내킬 때 먹고, 마시고, 싼다. 그리고 눈여겨 두었던 화분이나 물건들에 입을 댄다. 너무 재미있다. 그리고 이것저것 하다 심심해지면 잠을 청한다. 잠에서 깰 무렵이면, 띠 띠 띠 띠, 띠로익! 가족들이 들어온다. 내 엉덩이가 자동으로 반응하며 현관으로 뛰어간다. 역시 가족은 함께 있을 때가 제일 좋다. 그 순간 내 궁둥이와 함께 뱅뱅 도는 꼬리의 움직임이 너무 신난다.     


  언제부턴가 가족들 목소리가 무거워졌다. 보통 엄마 아빠 둘이서 얘기하는 것을 자주 봤지만, 그즈음은 꼬마도 함께했다.     


  “기숙사에 가면···.” 

  “학교 친구들과는···.”     


  무슨 말인지 꽤나 진지하게들 얘기하곤 했고, 그 얼굴들이 심각하다가도 웃음을 짓곤 했다.

     

  며칠 후, 세 식구가 함께 외출했다. 밥과 물을 평소보다 많이 주기에 좀 오래 걸리려나? 했다. 그래도 다시 돌아오니깐 뭐···. 평소처럼 먹고, 마시고, 싸고 저질렀다. 심심해지면 잤다. 잠에서 깰 때면 돌아올 테니까. 그래서 눈을 떴는데 아직이다. 좀 오래 걸리네? 몇 번을 반복하니 그제야 문소리가 들렸다. 그래, 왔구나. 

    

  엉덩이를 마구 흔들며 현관으로 뛰어갔는데 좀 이상하다. 꼬마가 없다. 밖에서 더 놀다 오나보다 했는데 엄마 아빠가 그냥 잠자리에 들어가려 했다. 이상해서 한참을 쳐다봤지만, 방 불이 꺼졌다.     


  현관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안 들어왔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대체 꼬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오래전 아빠가 한참을 안 들어왔던 게 기억났다. 엄마 아빠 얼굴도 밝지는 않았다.    

 

  며칠 후 꼬마가 왔다. 커다란 짐을 들고 왔다. 눈물이 났다. 아니 오줌을 지렸다. 얼마나 기다렸는데···.      

  그 후로 꼬마는 집을 나갔다가 오랜만에 들어오곤 했다. 나도 그러려니 했다.     


  어느 날 집을 옮겼다. 살던 집보다 한참이나 좁아진 집이었다. 사람들의 공간도 좁아지고, 내 영역도 좁아졌다. 그러나 좁아진 만큼 몸들이 가까워진 것 같아 좋았다. 이제는 엄마 아빠가 자는 얼굴도 볼 수 있고, 밥 준비하는 엄마 곁에 갈 수도 있다. 집이 좁다는 건 식구들이 가까워진다는 것이었다. 더 좋은 것은 아빠가 밤에 들어오면 산책을 시켜주는 것이었다. 집이 좁아서 답답했지만, 산책이 있어서 견딜 만했다. 비록 힘들어서 오래 걷지는 못하지만 매일 나갈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꼬마는 한참을 안 왔다. 그래도 오기는 왔다.


  “이제 병원 실습도 돌아야 하고 자주 못 와. 아마 명절 때 정도나?”     


  진짜 오랜만에 온 꼬마는 나를 위해 달콤한 걸 갖고 와선 어릴 때나 하던 개인기를 시키곤 했다. 기다려. 빵. 먹어. 이 나이에 그걸 했다. 열심히 했더니 점프도 시킨다. 저항할 수 없는 그 냄새에 나도 모르게 무릎이 먼저 반응을 하였다. 그런데 그 무릎이 내게 화를 내었다. 아, 예전 같지 않네! 꼬마를 본 반가움과 달콤함의 유혹에 내 상태를 깜빡 잊은 것이다. 그래도 내가 이렇게 놀아주면 꼬마는 행복해했고 그 얼굴을 보면 나도 모르게 무리가 할 수밖에 없었다.     


  꼬마가 커가고, 엄마 아빠 얼굴이 변해 가듯 나도 늙어 갔다. 개의 1년은 사람의 7년이라 했던가? 진짜 그렇다면 나는 노인, 아니 노견이다. 그래도 내 할 일은 해야지. 나는 이 집의 둘째니까.  

         

  꼬마는 집에 오면 내가 챙겨 주곤 하는 게 좋은지 항상 안아 주며 자기 방에 데려가곤 했다. 그의 몸에서는 약 냄새가 났지만 싫지 않았다. 집에서는 잠만 잤고, 깨어나면 나를 배 위에 올려놓거나 이런저런 장난을 걸어왔다. 이 나이에 이걸 하리?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랜만에 오기도 했고 내 꼬마니까 열심히 놀아주었다. 몸이 컸어도 나의 케어를 받아야 하는 내 꼬마니까.     


  그러다 며칠 머물다 떠나면 나는 한참을 앓곤 했다. 집에 한 사람 더 있는 게 이리 피곤한 건지 몰랐다. 내가 앓을 때쯤이면 엄마는 밥 외에 국물에 고기를 잘게 찢어서 주곤 했다. 그래 난 먹을 자격 있어.  

   

  “아들만 왔다 가면 비니가 몸살을 앓네. 아직도 강아지인 줄 아나······.”   

  

  그래도 꼬마가 또 보고 싶다. 내 꼬마니까.     


찰스 버튼 바버. 하굣길(off to school0




그림은 찰스 버튼 바버(Charles Burton Barber)의 

하굣길(Off to School)이다.


비니도 그림처럼 아들이 학교 갈 때 배웅하고

집에 올 때 마중했다.


비니는 대입을 앞두고 새벽에 들어오던 아들을 현관 앞에서 기다렸다.

아빠는 잠을 이기지 못했는데.


아들은 대학 시절 내내 기숙사 생활을 했다. 

비니는 엄마 아빠가 잠들어도 현관 앞을 지키곤 했다.


나이가 들어가도 비니는 강아지 역할에 충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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