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소한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원 Jul 06. 2016

음성메세지

아이유 - Voice mail

 삐 소리가 나면 녹음해주세요-.



 너 지금 뭐해? 아침 안 먹었다는 내 말에 꼭 먹으라며 화를 내던 네가 문득 생각나서. 솔직히 그것보다는 어제, 늦은 밤에 네게서 걸려온 전화가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혹시 네가 내 마음을 알고 있는 걸까 싶어서. 아무 이유 없어도 네 주윌 맴돌던 내 모습에 의아해하기도 했잖아. 혹시 그게 거슬렸다면, 우선 사과할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이 쉽게 제어가 되는 게 아니더라.


 나도 이런 내 마음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다. 근데 말이야. 헷갈리게 만든 네 책임도 있잖아. 그렇지?늦은 밤마다 너한테서 전화가 올 때면, 그렇게 설렐 수가 없었어. 그렇게 행동하는 네 마음이 내게 있기를 바라면서도 늘 부정했어. 그래, 어쩌면 아니길 바라기도 했나봐.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다. 아니길 바라긴 했어. 너한테 전화하기 전까지도 쿵쾅거리는 두근거림이 날 괴롭히긴 했지만.


 …아니야. 걱정은 하지 마. 네 생각만큼 그렇게 심각한 수준은 아니니까. 심심풀이 땅콩이라도 좋다느니, 그런 말은 안 해. 나도 그렇게 구질구질한 사람이 되고 싶진 않으니까.  잠깐 이러다가 어느 때에 알아서 정리할게. 그러니까, 지금 내가 이러는 거…그냥 모르는 척 해도 좋아. 녹음 시간이 벌써 2분 30초가 넘어가고 있네. 사실 더 할 말도 없어. 어차피 대책 없이 그냥 걸어본 거니까. 어쩌면 네가 안 받은 게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이 음성메세지를 못 들을 테니까.


 …참 끝까지 초라하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내가 한심하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 사실은 이러려고 한 게…그런 게 아닌데. 언젠가 네게서 답장이 올 거라고, 목 빠지게 기다릴 텐데. 그래도 아니라면, 난 아니라면……. 네가 아니라면 아닌 거지 뭐. 어쩔 수…없는 거니까.


 어쩔 수 없는 거니까. 포기하는 게 맞겠지. 그럼 적어도 이 내 짝사랑은 꽤나 아름다웠다고, 그렇게 기억할 수 있을 거니까.


 미안해. 이렇게 비겁하게 혼잣말로 고백해서. 남기지도 않을 음성메세지라서.


  

 녹음되었습니다. 메세지 전송은 1번……, 취소되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포식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