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하며 기여하는 자들에게
1. 땀 흘리는 철수
철수는 분명 뭔가 일을 더 하는 것 같다. 이는 공식적인 업무를 말하는 것이 아닌 여러 가지 잡무를 고려했을 때의 결론이다. 행사 준비를 위해 무거운 사물들을 옮기거나, 눈이나 배수로 등을 치우기 위해 모여 달라는 메신저 쪽지의 수신자가 철수를 비롯한 일부 교사들로 설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딱히 비밀도 아니다. 그럼에도 흔쾌히 나가는 철수는 정상이다. 약간이라도 불만을 표현한다면 철수는 옹졸한 MZ세대다. 여전히 많은 선배 선생님들은 어떤 잡무들에 대해서는 철수들과 함께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깊게 박여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들에 귀 기울여 보자면 우선 완력이 필요하거나 수고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한 사람이 할 수 있다면 그 한 사람이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이러한 이유를 들은 철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이유를 들어보니 이 일들이 일회적이며 소규모의 인원만 필요한 것이라고 한다. 교사에게 무거운 물건을 옮기거나 눈을 치우는 등의 일들이 얼마나 자주 있겠느냐? 더군다나 절대적으로 양이 많아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는 결코 아니고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도 않은 것이니까... 그러니까 예측하지 못한 사태에 대해 소수의 인원으로 잠깐 해결하면 끝나는 일이기에 철수들만 도와주면 매우 쉽게 해결되는 일인 것이다. 열띤 설명에도 철수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딱히 일이 힘들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이 과정 자체를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그래서 모두가 함께 하면 안 되는 이유가 뭔데?
2. 불편한 영희
철수와 몇몇 선생님들이 육체적인 잡무를 더 하는 것은 영희도 알고 있다. 무슨 일을 하고 오는 건지는 모르지만 간혹 목장갑을 벗으며 계단을 오르는 선생님들을 볼 때마다 마음속에서 죄책감이 올라온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아… 그런데 애초에 그분들이 모두가 함께 했어야 하는 일들을 대신해서 하고 온 상황이 맞긴 한 건가?
영희는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온 건지 알지도 못한다. 쪽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 속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죄책감만 피어오른다. 한 번은 영희도 밖에서 풀을 뽑는 철수들을 발견하고는 용기 내어 달려간 적이 있었다. 마음만으로도 고맙다는 부장님의 말씀을 뿌리치고서 영희는 힘껏 도왔다. 요즘 친구들 답지 않게 싹싹하다며 거듭 칭찬하는 교무부장님의 말씀은 멋쩍으면서도 흐뭇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여전히 영희는 우연히 창 밖에서 일하는 철수들을 발견하곤 한다. 영희는 더 이상 용기 낼 수 없았다. 두 번째의 용기는 오히려 영희를 별난 사람으로 만들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