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잔다고 착각하는 스스로를 조롱하며 눈을 뜨는 아침. 밤새 잠들기 위해 애쓰는 나 자신을 지켜보는 게 지겨워져서 정말 내가 두 명이 되어버릴 때쯤, 아침은 어김없이 하나로 찾아온다. 휴대폰 알람 소리가 지루한 밤의 종료를 알리면 나는 놀라는 기색 없이 왼쪽 팔을 뻗어 알람을 신속하게 끄고, 한참을 뜨고 있던 의식 속의 눈을 가져와서 억지로 감고 있던 얼굴 위에 올려놓는다. 두어 번 빙글빙글 돌려서 그것을 내 둥그런 안구에 척 끼운 다음,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간신히 두 개의 마음이 하나가 되고, 커튼 사이로 보이는 건 새벽과 아침 사이.
꽉 막힌 세면대에서 더디게 배수관으로 흘러내려가는 불투명하고 텁텁한 물 같은 하루가 되겠지. 칫솔에 치약을 묻혀 이를 문지르다가 익숙한 각도로 거울을 본다. 하루 중 맨 것의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데 어쩐지 한참을 들여다보아도 내가 보이지 않는다. 적당한 칫솔질로 입안에 거품이 차오른다 싶으면 거품을 뱉어내고 혀를 닦는다. 거울이 튕겨내는 내 얼굴은 보지 못한 채 눈이 닿지도 않는 혓바닥이 훤하게 보인다. 손을 다시 한번 씻고 세안 비누로 거품을 촘촘하게 내어 얼굴 위로 빙글빙글. 눈을 감고 손끝으로 부드럽고 미적지근한 거품 덩어리를 굴리다 보면 광대뼈, 광대뼈 위로 얄팍하게 솟은 여드름. 안쪽으로 들어와서 코, 코 옆으로 미끄덩 거리는 잠의 찌꺼기들. 돌려서 아래로 내려가면 얄팍한 인중, 인중에서 만난 두 손은 다시 헤어져 양쪽 볼 위를 몇 바퀴 돌다가 다시 턱. 혀를 아랫입술 안쪽으로 넣어 턱을 불쑥 내밀고 마지막으로 작은 원을 돌돌돌돌. 불과 몇 초 사이에 수많은 거품 테가 내 얼굴 위에서 사라졌다가 없어지고 사라졌다가 없어지고.
비누로 씻어 내린 내 얼굴과 손의 시체들이 세면대 벽에 겹겹이 테를 남긴다. 내 몸 위에서 하룻밤을 살고 아침이면 세면대에 묻히는 것들. 이미 끝난 것들 앞에서 나는 체념하고 고개를 숙인다. 두 눈은 미동 하나 없이 늘어나는 테를 세어 나간다. 하나 둘 셋 넷… 그러다가 차분한 그 눈빛을 거둬들여서 배수관으로 빠져나가는 썩 유쾌하지 않은 액체 위에 포갠다. 포개 놓고 지그시 눌러 내린다. 오늘은 정말 이 세면대를 어떻게 좀 해야겠어 라며 건조한 다짐을 할 때쯤, 마지막 끈적한 물꼬리가 꿀렁하고 수체 구멍을 넘어간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다시 조심스럽게 물을 튼다.
세면대와의 끈질긴 눈싸움을 치르고 나오면 고작 하루의 시작. 서둘러 커피를 내려서 자꾸만 주저앉으려고 하는 아침을 일으켜 세운다. 뜨겁고 검붉은 커피가 내 목을 타고 내려갈 때 세면대 벽에 붙어있던 끈적한 테들의 잔상이 내 머릿속에서 함께 쓸려 나간다. 밋밋하게 식어버린 마지막 커피 한 모금.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냉랭한 그 액체를 마저 끝낸다. 시간의 벽에 나의 잡다한 생각들이 테를 두르려고 할 때, 다 마신 컵과 간단하게 먹은 아침의 잔해들을 곧장 치운다. 그러면 불특정 다수에 엉겨 붙어 있던 무의식의 끈이 팽- 하고 끊겨 나간다. 그 순간의 탄성으로 나의 발은 신속히 옷장과 화장대를 오가고 나의 손은 다른 곳을 보고도 향수와 립스틱을 찾아낸다. 마지막으로 가방에 휴대폰과 지갑을 넣고 현관 거울 앞. 거기에는 지난밤 붙잡혀 있던 어떤 여자가 간신히 도착해 있다. 나는 익숙한 눈빛으로 그녀를 달래고 그녀의 숨이 더 이상 가파르지 않게 되면 그때, 나는 그 여자의 손을 꽉- 잡는다. 우리는 잡은 한 손으로 차가운 문을 열고 함께 집을 나선다.
부디 돌아오는 하루의 끝에 서로를 잃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