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LY 한국 스타트업의 제품 관리자들 참여 후기
웹기획자 세대는 아니다. 모바일 First로 기획을 시작했다. 그것도 대기업에서 정식으로(그런 게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시작한 게 아니라 스타트업에서 마구잡이(!)로 시작했다. 정말 새파랗게 아무것도,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던 서비스 기획.
초반에 얼마간은 직접 사업(A)해보겠다고 하룻강아지 범모르고 달려들었다. 회사를 옮겨서(B) 기획팀장(팀원 없음)이라는 직함으로 서비스 기획자 업무를 수행했지만, 하면 할수록 알면 알수록 답답하고 조바심이 났다. 그때 나를 괴롭히던 점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내가 잘 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걸까, 개발을 이렇게 몰라도 되는 걸까, 나란 존재가 필요하긴 한 건가, 기획자에게 미래란 있는 걸까' 등등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런 암흑기를 보내고 당시에 내린 결론은 공부를 더해보자는 것이었다. 일단 IT가 너무 좋고 재밌고 앞으로 내가 무슨 일을 할 진 모르겠지만 IT에서 일하고 싶고 - IT회사의 HR manager가 되더라도 - 이때 1~2년 공부해둬서 해될 건 없다고 생각했다. 거의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HCI 연구실이 있는 대학원으로 갔다. 잠시나마 호기롭게 개발자로 변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었는데 멋진 PM이 되겠다는 목표가 제일 컸다.
하지만 항상 예기치 못하는 순간에 기회가 찾아오는 것일까. 평소 좋아하던 외국계 스타트업(C)의 한국 담당자 채용 공고가 떴고, 그렇게 그 회사에서 시장 개발이라는 역할을 맡아 마케팅, 홍보, 파트너십 등을 두루 맡게 되는 일을 하며 잠시 서비스 기획과 멀어지는 듯했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한 일은 초초초초 스타트업(D)이기에 기획을 포함한 온갖 다양한 업무들이 뭉쳐진 자리였다. 기획을 안 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획만 하는 것은 아닌.
그렇게 새로이 시작했던 일은 제대로 벌여보기도 전에 큰 회사(E)로 인수가 되었고, 자연스러운 듯했지만 전혀 자연스럽지 않게 큰 회사의 직원이 됐다. 그 스타트업(D)에서 Business development specialist라는 애매한 직함을 달고 있었기에 (직함이란 게 필요 없는 게 스타트업이지만 명함이란 건 필요했기에) 현재 재직 중인 회사에 서비스 사업 직군으로 입사하게 되었고 대기업 기획일을 하고 있었다.
올해 3월에 부서를 옮기고 나서 좀 더 제대로 된(?) 기획을 하고 있다. 작년에 하던 기획은 기획은 아니었냐? 물론 내 기준에선 다 기획이다. 작년에 하던 일도 재작년에 하던 일(A, B, C , D)도 다 기획이다. 그런데 사람마다 기획에 대해 생각하는 상(像)이 다르다. 요즘 다시 기획한다는 건 기획-디자인-개발로 3 분할 때 말하는 그런 기획을 하고 있다.
처음 기획을 시작했을 때와 지금은 확실히 다르다. 나 스스로 생각하는 기획에 대한 생각이나 자세가 다르다. 여전히 '내가 하는 판단이 옳은 판단일까, 함께 잘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양한 고민들이 있지만 전처럼 조바심 나거나 불안하진 않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사람들이 내리는 '기획'에 대한 정의와 나 스스로 가지고 있는 '기획'에 대한 정의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굳이 기획이란 단어를 써서 내 업무를 표현하다면 3분법(기획/디자인/개발)에서의 기획보다 더 넓은 의미의 기획이고, 더 정확히는 기획 이란 단어에 업무를 한정 지어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한창 일을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던 찰나 마침 눈에 띄는 행사가 있었다. PUBLY (퍼블리)에서 주최한 한국의 스타트업 제품 관리자들! 주저 없이 신청했다.
콘텐츠 측면에서 이전에 참석했던 PUBLY 행사와 느낌이나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이전에 참여했던 VC 딥토크는 업계에서 20년 정도 보낸 베테랑 어르신들이 '내가 말이야 해봐서 아는데'느낌으로 그간 쌓은 온갖 내공과 통찰력을 가득 담아 쏟아내는 분위기였다면 이번에 참여했던 행사는 동종업계 종사자들이 모여 애환을 나누고 서로 토닥이며 경험을 공유하고 건설적인 발전방향에 대해 으쌰 으쌰 하는 자리였다.
회사에서 회의가 늦게 마치는 바람에 발표를 처음부터 보진 못했는데 내용들은 공감도 많이 가고 유익한 내용들이었다. 특히 강현정 님 발표 내용 중에 'PM이 어떤 걸 해줄 때 업무에 도움되는지'와 'PM이 어떤 걸 못해줄 때 업무가 어려워지는지'에 대한 내용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업계에서 유능하게 일하는 사람들, 멋지게 자기 역할을 해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좋은 자극이 된다. 발표하신 분들도 그렇지만 행사장에서 오랜만에 뵙는 업계 동료들, 전 직장 동료들, 퍼블리 직원분들 등 사람들로부터 좋은 에너지를 받았다.
행사 후기를 정리한 디지털 리포트가 발행될 텐데 기대 가득이다! 좋은 행사에 다녀왔으니 조금 더 나은 기획자가 되어야지! 빠샤~
한국 스타트업의 제품 관리자들(Product Managers) https://publy.co/project/1057
5인 5색 제품 관리자 인터뷰 https://publy.co/content/1155
한국 벤처캐피탈리즘 - VC가 말하다 https://publy.co/project/524
VC, 업의 미래를 고민하다 https://publy.co/content/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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