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를 위해 종이책을 안 사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주변에 리디북스 페이퍼(이북리더기)를 여러 대 팔았을 정도로 이북리더기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종이책을 완전 끊진 못했다. 어제 김영하 작가님이 비정상회담에 출연하신다 하여 보았는데 책과 작가에 관한 풍부한 대화가 오가던 중 '종이책이 사라질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마침 최근 들어 다시 종이책을 많이 구매하기 시작한 터라 나름의 그 이유에 대해 적게 되었다.
책 표지 디자인, 책 두께, 폰트, 여백 등 책마다 특징이 있다. 하지만 이북리더기로 읽으면 디바이스에 그 특성이 종속된다. 그래서인지 이북으로 접했던 책을 서점에 가서 손에 들어 보면 색다른 느낌이 있다. '이 책이 생각보다 두꺼운 책이었구나, 표지가 빨간색이었구나, 여백이 좁은 책이었구나' 등등 별 생각이 다 든다. 종이 질감, 냄새와 같이 다양한 물리적 요소들 때문에 종이책을 포기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특징과 연결되는 것인데 책에서 본 내용을 '1/3쯤 되는 부분 왼쪽 아래 어떤 이미지가 있었고 오른쪽 위 귀퉁이에 어떤 내용이 있었지' 이런 식으로 기억하곤 한다. 전자책 리더기로 책을 보면 폰트 종류나 폰트 크기에 따라 레이아웃이 최적화되기 때문에 어떤 텍스트나 이미지를 특정 위치에 고정시켜 기억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현재 사용 중인 이북 리더기인 리디북스 페이퍼는 '독서 진행률' 이란 걸 표시해준다. 페이지 넘길 때마다 독서 진행률을 백분율로 계산하여 보여주기 때문에 얼마큼 읽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책에서 읽고 있는 위치에 손가락을 끼워 넣고 위에서 눈으로 보는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비유를 하자면 백만 원짜리 지폐를 500장 뽑아서 500만 원을 손에 들고 있는 것과 통장에 500만 원이 찍혀있는 것과 차이랄까.
매일같이 휴대폰(스마트폰)과 PC 모니터(혹은 노트북)를 달고 산다. 이런 전자기기의 배경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생각보다 눈을 많이 피로하게 한다. 그런데 종이로 된 책을 보면 가장 편안하다고 느낀다.
그 와중에 종이책이 더 평화로운(?) 이유는 바로 하이퍼링크(하이퍼텍스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본거 같은데 우리가 웹사이트를 이용할 때 매 순간 이 하이퍼링크를 누를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고 그렇게 흘러 다니다 보면 집중력이 분산된다는 것이었다. 이북 리더기로 본다면 앱이나 웹처럼 클릭할 것이 많은 것은 아니나 이 책 저책 꺼내 볼 수 있고, 검색도 가능하며, 다양한 버튼 인터페이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종이책보다는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에 가까운 마음가짐을 갖게 된다. 종이책은 그 어떤 버튼이나 링크를 제공하지 않기 땜누에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고 이는 휴대폰을 달고 사는 내게 생각보다 훨씬 큰 평화로움을 제공해준다.
종이책 출간이 전자책 출간보다 빠른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기다리는 작가의 신간 소식이 들리면 하루라도 빨리 읽어보기 위해 종이책을 예약 구매하고 기다리곤 한다. 별것 아니지만 따끈따끈한 1쇄를 갖고 싶다는 소장욕이 인다. 혹시 작가님의 사인을 직접 받을 기회가 있다면 꼭 1쇄라고 적현 옆에 사인을 받고 싶다. 그러려면 종이책을 사야만 한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를 읽고 나서 최대한 종이책을 안 사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앞으로도 종이책은 계속 사봐야 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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