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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구너 Nov 22. 2021

1. 제이미 바디

초심불망 마부작침

 2016년 5월 프리미어리그에서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 펼쳐졌습니다. 쟁쟁했던 우승 후보들을 제치고 레스터 시티가 창단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거든요. 혼자의 힘으로 길고 긴 레이스 끝에 우승을 차지할 수는 없습니다. 감독을 비롯해 선수단 전원이 똘똘 뭉쳐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선보인 덕분이었죠. 중심에는 제이미 바디가 있었는데요. 36경기에 출전해 24골을 넣으며 득점 부문 공동 2위에 올라섰습니다.


 2014-15시즌을 앞두고 승격에 성공한 레스터 시티는 최종 순위를 14위로 마무리했습니다. 2부에서 힘들게 승격했다고 하더라도 1부의 벽은 만만치 않아 도로 강등되는 팀들도 수두룩한 걸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성과였죠. 2015-16시즌 레스터 시티의 순위는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부진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그러나 7월 라니에리 감독이 합류한 이후 팀은 거짓말처럼 승승장구하더니 어색하게도 가장 높은 순위표에 자리했죠.


 제이미 바디를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습니다. 바로 대기만성인데요. 큰 그릇을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뜻입니다.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짐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죠. 공격수라는 포지션에도 불구하고 바디가 빛을 보기까지는 실제로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레스터 시티에 합류하기 전까지는 하부 리그를 전전하던 평범한 선수 중 한 명이었거든요.


 바디는 16살의 나이에 스톡스브리지 파스 스틸즈라는 8부 리그에서 뛰었고, 본격적인 성인 커리어는 2007년부터였습니다. 소속팀이 하부 리그였기에 그가 받을 수 있는 돈은 많지 않았는데요. 당시 받았던 주급은 30파운드로 50,000원 남짓 하는 돈이었습니다. 아무리 축구가 좋다고 하더라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일을 병행해야 했죠. 어쩔 수 없이 일자리를 구해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훈련하는 축구선수의 삶을 이어갑니다.


 지칠 법도 한데 바디는 곧바로 자신의 기량을 한껏 발휘했습니다. 낮은 수준의 무대라고는 해도 소속팀에서 3년 동안 주전으로 활약하며 107경기에서 무려 67골을 터뜨렸거든요. 완벽하게 팀의 에이스로 거듭난 그는 7부 리그로 향했는데 여전히 절정의 결정력을 자랑했죠. 5부 리그까지 안착한 바디는 별도의 적응 기간 없이 31골을 넣고,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4부 리그로 껑충 점프했습니다.


 하부 리그라고는 해도 한결같이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바디에게 서서히 눈길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2부 리그에 있던 레스터 시티가 바디 영입에 성공했죠. 다만 선수로서 절정의 기량을 선보일 나이에 잦은 이적 탓인지 줄곧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던 바디가 부진에 빠졌습니다. 3년 계약을 맺고 첫 시즌을 통틀어 5골만 넣었으니 온갖 비난까지 받았죠. 팀을 떠날 각오까지 했지만, 감독이 만류하여 가까스로 팀에 잔류합니다.


 전화위복이 되었던 걸까요? 이듬해 바디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감독의 신뢰 속에 최전방을 책임지면서 16골과 11개의 도움을 기록했고, 팀도 우승을 차지하며 마침내 프리미어리그에 승격이라는 꿈을 이뤘죠. 고난과 역경을 헤친 바디의 앞날도 앞으로는 창창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프리미어리그의 레벨은 지금까지 경험했던 수준과는 제법 차이가 있었습니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호기롭게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성적표는 초라했죠. 8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고 해도 고작 5골에 그쳤기 때문인데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토트넘 등 객관적인 전력이 우세한 팀을 상대로 골을 넣었음에도 바디를 향한 비난의 여론이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1부 리그에서는 통하지 않는 경기력이라며 독설도 따라다녔죠.


 비슷한 실패를 겪은 바디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이미 극복한 경험이 있었거든요. EPL 2년 차에 접어든 바디와 레스터 시티에게 동화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작년까지 리그에서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던 공격수는 2015-16시즌 개막전부터 득점을 기록하며 소속팀을 승리로 이끌죠. 4라운드부터는 11경기 연속 골을 넣는 기염까지 토해내고요. 이는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다 연속 득점 기록으로 남은 대기록이었습니다.


 바디의 활약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다음 시즌도 13골을 기록하며 팀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기록했고, 2020-21시즌까지 6년 연속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하며 명실상부 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등극했거든요. 소속팀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늦은 나이지만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되어 주가를 끌어올렸습니다. 2018년 은퇴를 선언하기까지 삼사자 군단 유니폼을 입고 26경기에 나서 7골을 넣으며 11번에 어울리는 활약을 보여주었죠.


 2019-20시즌은 커리어에 있어서 정점을 찍은 시간이었습니다. 리버풀의 독주로 팀은 5위에 그쳤으나 바디는 23골을 몰아치며 득점왕에 올랐거든요. 살라나 스털링, 잉스와 오바메양 같은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사전오기 끝에 거둔 감격의 순간이었습니다. 프리미어리그 데뷔부터 다른 선수들에 비해 늦은 바디였지만, 우승에 이어 33살에 역대 최고령으로 득점왕까지 차지하며 레스터 시티의 전설로 자리 잡았죠.


 공격수로서 체격이 좋은 편도 아니고, 기술도 정상급 선수들과 비교하면 뒤처졌음에도 빠른 발로 단점을 극복했습니다.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스피드로 상대 수비를 순식간에 붕괴시키며 득점을 넣곤 했죠. 90분 동안 쉴 새 없이 상대를 압박하며 그라운드를 누비고, 오른발이나 왼발 가리지 않고 기회가 오면 정확하게 슛도 때리고요. 점점 노장의 반열에 접어들고 있지만, 부상이나 체력 저하 없이 온전하게 시즌을 소화하는 것도 바디만의 장점입니다.


 초심불망 마부작침은 초심을 잃지 않고,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처음 시작할 때의 결의를 잃지 않고, 꾸준히 지속한다면 어려운 목표라도 달성할 수 있다는 말이죠. 바디는 축구선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8부 리그에서부터 차근차근 꿈을 향해 전진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보란 듯이 이뤄냈고요. 자만하는 법도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감독이 훈련을 금지할 정도였죠. 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도 제작된다고 하는데요. 현대판 신데렐라 바디의 앞날이 더욱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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