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를 뒤집은 열쇠
2003년 첼시에 신입생이 합류합니다. 그는 뛰어난 활동량과 탄탄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중원을 든든하게 받쳐주며 맹활약했죠. 선수의 이름은 클로드 마케렐레. 수비형 미드필더의 교과서라고도 불리는 선수입니다. 10년도 훌쩍 지나서 다시 마케렐레의 재림을 보는 듯한 선수가 스탬포드 브릿지에 등장했는데요. 레스터 시티 우승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캉테가 활약을 인정받아 첼시로 이적한 것이죠.
마케렐레와 캉테는 닮은 점이 많습니다. 둘 다 프랑스 출신에 포지션도 비슷했고, 플레이 스타일까지 똑 닮았죠. 수비형 미드필더 임무를 수행하기엔 신장이 왜소했지만, 다른 장점을 극대화하여 단점까지 보완했습니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없으면 공백이 바로 느껴지는 언성히어로 같은 존재들이었죠. 첼시에 합류하고 우승까지 차지하며 제2의 전성기와 함께 팬들의 사랑도 독차지했고요. 지금은 첼시에서 코치와 선수로 한솥밥을 먹고 있습니다.
엘리트 코스를 밟았을 것 같지만, 캉테가 빛을 보기까지는 의외로 시간이 걸렸습니다. 캉테는 8살에 지역의 아마추어 클럽인 슈헨에 입단하는데요. 무려 10년을 슈헨에서 보낸 그는 프로 데뷔를 위해 수차례 입단 테스트에 도전했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셨습니다. 주변에서는 피지컬이 부족해서 떨어졌다고 말했지만, 캉테는 동의하지 않았고요. 신체적인 열세는 얼마든지 극복 가능한 부분이며 단지 자신의 실력 때문이라고 여겼죠. 그렇게 생각했기에 탈락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두드리면 열린다고 했던가요. 계속된 도전 끝에 2부 리그에 있는 볼로뉴에 입단합니다. 바로 1군 무대에서 활약하는 것은 아니고, 2군 소속으로 경기에 출전하며 서서히 기량을 끌어올렸죠. 2년 동안 2군에서 뛰다가 2012-13시즌 막판에 교체로 투입되며 본격적인 프로 데뷔까지 성공했고요. 비록 소속팀은 3부 리그로 강등되었으나 캉테에게는 기회였습니다. 주전으로 활약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셈이었거든요. 뛰어난 모습을 보인 캉테에게 다시 2부 리그에서 관심을 보입니다.
캉의 유니폼을 입은 캉테는 입단 직후부터 팀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캉테의 활약에 힘입어 소속팀은 메스와 랑스에 이어 3위를 차지했죠. 지금이라면 승강 플레이오프가 남았지만, 당시에는 3위까지 1부 리그로 승격할 수 있었습니다. 한 시즌 만에 메스와 랑스는 강등을 피할 수 없었는데 캉은 13위로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는데요. 주포 마티유 뒤아멜을 비롯하여 캉테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었죠. 유럽 5대 리그에서 가장 높은 태클 성공률을 자랑하며 잔류에 공헌했습니다.
세간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던 활약이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에 열을 올리는 클럽들 대부분이 캉테를 노렸죠. 무성했던 소문 끝에 이적한 팀은 프리미어리그 잔류에 가까스로 성공한 레스터 시티였습니다. 당시 이적료로 800만 유로를 지출했는데 이는 아직도 캉의 역대 이적료 방출 부문 1위에 해당하는 금액이죠. 레스터 시티가 프리미어리그 경험도 없는 캉테에게 거는 기대가 남달랐던 것도 알 수 있고요.
당시 레스터 시티에 미드필더 자원이 많아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었으나 의외로 교통정리는 손쉽게 이루어졌습니다. 캉테의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선수들이 부진하거나 부상에 빠지면서 비교적 빠르게 기회가 찾아왔거든요. 라니에리 감독이 4라운드에서 캉테를 출전시켰는데 무려 10개의 태클을 성공시키며 기대 이상의 활약으로 보답했습니다. 무대는 달랐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죠.
이후의 이야기는 바디와 동일합니다. 같은 팀이었으니까요. 다만 바디는 공격수로서 팀의 득점을 책임졌다면 캉테는 드링크워터와 함께 중원을 책임졌습니다. 오죽하면 당시 레스터 시티의 득점에는 공식이 있다고 할 정도였는데요. 캉테가 역습을 차단한 후에 마레즈에게 공을 전달하면 측면을 돌파해서 바디에게 연결하는 패턴이었죠. 시즌 종료 후에 파리 생제르망, 아스날과 접촉하는 듯 보였으나 최종 목적지는 첼시였습니다. 등번호 7번과 함께 말이죠.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레스터 시티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첼시는 객관적인 전력에서 확실히 앞선 클럽이었습니다. 프리미어리그는 물론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팀이었죠. 재정적인 지원도 뛰어나 대우도 훨씬 좋아졌고요. 대신 그에 맞는 활약은 필수였습니다. 잔류했더라면 주전은 떼어 놓은 당상이었으나 첼시에서는 넘어야 할 산이 있었는데요. 마티치와 파브레가스까지 치열한 경쟁이 예상됐습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우였는데요. 1라운드부터 선발로 출장한 캉테는 시즌 내내 대체 불가능한 자원으로 거듭나며 연일 최고의 활약을 펼쳤죠. 자연스럽게 그의 파트너 자리를 놓고 마티치와 파브레가스가 경쟁하는 구도였습니다. 시즌이 끝나고 EPL 내에서도 손에 꼽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자리매김한 캉테는 올해의 선수상까지 휩쓸었고요.
레스터 시티와 첼시에서의 활약으로 레블뢰 군단까지 승선한 캉테는 포그바와 함께 허리에서 좋은 활약을 선보였고, 월드컵 엔트리까지 포함됩니다. 직전 메이저 대회였던 유로에서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기에 우승에 대한 갈증이 컸던 프랑스였죠. 캉테는 비록 결승전에서 부진했지만, 대회 내내 시종일관 그라운드를 누비며 우승에 크게 일조했습니다. 결국, 프랑스는 크로아티아를 누르고 20년 만에 정상에 올라섰죠.
2013년 프랑스 2부 리그에서 활약하던 캉테가 2021년까지 이룬 업적은 가히 놀랍습니다. 1부 승격과 프리미어리그 이적 및 우승, 유로파리그와 FA컵 우승에 이어 월드컵 트로피까지. 더불어 소속팀 첼시는 캉테의 활약 덕분에 맨체스터 시티를 격파하고 9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올랐습니다. 중국에서 막대한 자본으로 유혹하기도 했으나 돈보다는 꿈을 좇아 묵묵히 달려왔기에 가능한 결과 아니었을까요. 도전한다고 무조건 성공하지는 않지만, 성공하는 사람은 도전했음을 보여준 캉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