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챙긴 다음 먼 곳으로 떠나볼까
내가 부산 임랑에 가게 된 건 꽤나 충동적인 일이었다. 유튜브 뮤직 알고리즘을 통해 흘러나온 다섯의 쉼표가사에 '아님 당장 짐을 챙긴 다음 먼 곳으로 떠나볼까 그래 잠깐만 쉬다 가자'라는 가사가 갑자기 내 귀에 꽂혔다. 지금 일도 안 하는데 서울에 계속 있을 이유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짧은 여행이 아닌 긴 여행을 가기로 했다.
부산 임랑에 가기까지 정말 많은 바다를 보러 갔다.
우선, 도영이와 재영이가 힘든 나를 위로해 주겠다고 바다를 보러 가자며 인천을 데려갔다. 인천 바다는 그냥 항구 같았다. 오로지 기억에 남는 건 우연히 마주친 엔씨티 텐이었다. 처음 보는 아이돌, 거기다 평소 많이 보던 아이돌을 실제로 봤다는 것에 굉장히 흥분했다.
혜인이와 신안에 가서 바다도 보고, 그다음은 도영이랑 강릉도 갔다. 엄마랑 목포도 가고. 2022년의 여름은 온통 바다였다. 동해도, 서해도, 남해도 모두 갔으니 말이다. 마지막은 부산이었다. 당시 바다를 보면 빠져서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런 사고를 전환해야겠다 생각했다.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 어떤 죽음이 가장 합리적이고 손쉬운 죽음일까. 죽음 후에 내게 남겨진 것은 무엇인가. 죽음 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걸까. 사후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난 어떻게 죽을 수 있을까. 떨어져 죽는 것, 그리고 목을 조르는 것, 칼로 경동맥을 쑤셔 한번에 숨을 끊는 것, 손목을 긋는 것, 목숨에 위협이 되는 약물을 신체에 투입하는 것. 생각할수록 죽음의 모습은 모두 흉했다. 자살을 생각했기 때문일까.
하나, 나는 PTSD를 앓고 있는 사람으로서 타인에게 그런 감정을 남기고 싶지 않았고, 그저 손쉽고 합리적인 죽음을 찾으려 노력했다. 쉬이 찾아낼 순 없었다. 합리적인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한 지인에게 전화가 와서 받았다. 갑자기 자신은 죽는 게 너무 아깝다고 했다. 왜 그렇냐고 물어봤다. 지금까지 이뤄놓은 것들을 모두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라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의문을 가졌다. 죽음 이후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정말 내가 습득한 것들을 잃어버릴까?
기독교에선 죽음 이후 천국과 지옥이 있다 말하고, 불교에선 다시 환생한다 말한다. 베르나르베르베르의 소설 타나토 노트- 천사들의 제국- 신 시리즈에서는 어떤 사후세계에 들어간 이후 환생을 하게 되는데, 그 단계에 따라 식물로 태어날지 동물로 태어날지 아니면 사람으로 태어날지 결정된다고 한다. 좋아하는 디즈니의 영화 코코에서는 현실세계와 그다지 다를 바 없었던 거 같다. 그 당시 나는 아 사후세계든 뭐든 땅에 갇혀 가만히 있는 것이든 말든 그냥 먼지처럼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약 한 달 정도 후에야 부모님이 내게 일어난 일을 알게 됐다. 그동안 본가인 광주에 내려가지 않고 도영이 집에서 직장에 다니는척했다. 잘 지내냐는 말에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그냥 잘 지낸다고 하고 끊었다. 영상통화를 하고 괜찮은 척 눈물을 삼키는 일이 빈번했다. 동생한테 먼저 말을 했고, 그다음은 부모님께 말을 했다. 역시나 너무나 힘들어하셨다.
내가 전화로 이런 일을 당했어라 말했다. 마침 그때가 저녁을 먹고 있을 때였는데, 후일 이 일에 대해 물어보니 동생과 엄마 아빠가 동시에 수저를 놓고 밥을 그대로 버렸다고 한다. 나는 조금의 위로라도 받고 싶은 마음에 광주에 내려갔다. 부모님은 아무렇지 않게 나를 대했다. 하지만 반대로 깨지면 부서질 것 같은 유리처럼 한마디한마디를 조심하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긍정적이진 않았다.
내 사건의 국선변호사님은 성범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피해자를 사회로 돌려놓기 위해선 비용이과 시간이 많이 들기에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그저 피해자의 잘못이라 지칭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고. 물론 정말 그렇지 않기를, 따뜻한 위로 한마디를 해주길 간절히 바랐지만 우리 부모님도 사회적 인식처럼 생각하는 분들이었다.
"그러니 네가 조심해서 집에 잘 들어갔어야지"
"그러니까 술을 왜 그렇게 많이 마셨니"
이 말을 아빠에게 들어버렸다. 감정이 요동쳤다. 숨이 빨라졌다. 눈물이 나는 걸 참지 못하고 방에 들어와 위기센터에 전화해 상담을 했다. 가족에게 위로를 바라지만 그럴 수 없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종종 가족이 2차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그래서 그냥 가족에겐 위로를 바라지 않기로 했다.
나는 울부짖으면서 이럴 땐 어떻게 대할지 찾아봐야 되는 거 아니냐고, 어떻게 이렇게 나를 생각 안 해주냐고 했지만 엄마는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라며 회피하기만 했다. 물론 딸에게 이런 일이 있어 속상한 걸 안다. 어떻게 할지 모르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건 회피하고 싶은 마음에 너무 무심함만 택한 건 아닌가.
이로써 내 본가는 내게 도피처가 될 수 없었다. 재은이와 지희에게 디엠을 보냈다. 나 부산에 서핑하러 갈래라고.
두 친구 모두 얼른 오라며 반겨줬다. 그 말을 하고 이틀뒤에 짐 싸고 부산으로 떠났다. 경호원으로 근무하는 재은이는 근무시간이 불규칙적이었는데, 내가 집에 없을 거니 그냥 들어가 있으라고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아직도 그 정에 정말 감사하다. 재은이네 집은 잠이 정말 잘 왔다. 불면증을 앓으며, 잠에 무척이나 예민해져 있었는데 오랜만에 정말 정말 잘 잤다. 이곳의 기운이 나와 맞는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날엔 연산에서 1시간이 걸리는 임랑으로 갔다. 지희를 2년 만에 봤는데, 스타일도 많이 달라져있었지만 1분 전에 본 것처럼 반갑게 인사했다.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