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려고 서핑을 시작했다.
처음 가본 서핑샵의 분위기는 이국적이었다. 샵 앞에는 해먹이 있고, 이국적인 장식들이 샵 안에 즐비했다. 그리고 개인 장비와 보드들이 샵 내에 있었다. 서핑샵은 대부분 성수기 장사를 빡 하고 겨울에는 발리나 하와이 등 파도가 좋고 따뜻한 곳에 가서 2달 정도 서핑을 하다 온다. 내가 본 서핑샵들은 그랬다. 그렇게 샵들의 분들은 해외에서 만나 네트워킹을 쌓는다. (물론 내가 서핑을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견해가 짧아 그리 잘 알진 못한다는 점을 고려했으면 한다.)
그곳에서 만난 지희에겐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찾은 마치 도인이 된 것 같았다. 일말의 조급함도, 불안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희는 머리를 조금 더 기르고, 나시를 입고 피부는 새카맣게 타있었다. 그 하얗던 지희가 말이다. 지희의 머릿속엔 어떻게 하면 더 서핑을 잘할 수 있을까가 가득 차있었고, 하루에 8시간 동안 바다에 들어가 있었다고 했다. 어떤 날은 사장님이 저녁은 먹고 서핑하라고 혼내셨다고 한다. 어떤 스포츠든 잘하던 지희가 서핑은 자신이 해본 스포츠 중에 가장 어려운 운동이라 말했다. '그 정도면 얼마나 어려운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매력이 있길래 저렇게 깊게 빠졌을까 생각했다.
재은이네 집에서 무기력하게 누워있다 임랑으로 향했다. 샵의 첫인상은 앞서 말했듯 이국적인 공간. 그리고 그 안에 서퍼들은 정말 자유로워 보였다. 몸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다들 몸은 좋고, 장발인 남자분들도 있었다. 10월, 서핑시즌은 끝나고 가을 무렵에 가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임랑해수욕장 자체가 초보자에게 적합한 해변이기도 해서 대게 로컬분들이 자주 왔다. 오히려 사람이 없는 게 더 좋았다. 파도가 좋다던 가을에 나는 서핑을 시작했다.
부산의 유명한 서핑스폿은 다대포해수욕장, 송정해수욕장이다. 난 그때 서핑스폿에 대해선 하나도 몰랐다. 그냥 지희가 이런 거야 하면 응응 그런 거구나 하는 느낌 었다. 처음 강습을 받을 때부터 나는 힘들게 굴려졌다. 체대생 특유의 호기와 우선 굴러야 늘 수 있는 거야! 하는 그런 것들이 내 마음속에도 있었고, 지희의 마음속에도 있었다. 지희는 나를 열심히 굴려 *서핑버디로 만들려는 그런 마음도 있었다. 우리는 열심히 운동하는 것을 좋아했고, 또 잘하게 되는 과정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발이 닿지 않는 곳에 들어가 보드에 앉아있는 것부터 시작했다. 처음 탄 서핑 보드 위, 출렁이는 파도에서 중심을 잡았다. 아니 잡으려 노력했다.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다. 매번 물에 빠지기 일쑤였다. 앞서 말했듯 발이 닿지 않은 곳에서 *라인업을 나가는 서퍼분들과 함께 나가 나는 그저 중심을 잡았다. 한 번은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발이 닿지 않았다. 당시 나는 수영을 못했다. 학부 전공수업으로 들었던, 총 합쳐서 5일간의 수영수업. 그게 내게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고, 어떻게 발버둥을 치다 보니 보드를 잡아 그위로 올라갔다. 살아냈다.
'그냥 죽어버려야지, 서핑하다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은 삶이야'라며 시작했던 건데, 생각보다 바다는 내게 다정했다. 나를 죽게 두지 않았다. 첫 번째 강습이 끝났다. 혼자 타는 시간이 내게 주어졌다. 임랑해수욕장에서는 커피콩 굽는 향이 났다. 진정제를 먹어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집에만 있어서 움직이지 않아 체력은 완전 거지였다. 몇 번의 패들질에도 금세 지쳤다. '00 그렇게 패들질해서 되겠어? 더 패들질해!'라 외치던 지희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경하다. 그 목소리는 한 번 더 힘을 내게 했고, 조금이라도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지희는 이 다정한 바다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그냥 서핑보드에 가만히 누워 풍경을 보는 게 너무 좋았다고. 나도 보드에 누워 하늘을 봤다. 붉게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러다 정신이 들었다. 난 조류에 떠밀려 해변가에서 일어났다. 조난을 당해 신대륙이나 무인도에 도달한 사람의 감정이 이런 걸까. 나는 모래에 뒤덮였고, 보드는 내 옆에 놓인 채 내게 오는 파도를 온몸으로 맞았다. 어이가 없었다. '나 조난당한 건가?'라는 생각에 혼자 웃음을 터트렸다. 근래 통 웃질 못했는데, 그렇게 웃음이 나왔다.
내게 서핑은 죽음이었는데, 한국에 파도에선 그러지 못했고 오히려 물뽕을 맞아버렸다. 서퍼들 사이에서 서핑에 중독돼 계속 물에 들어가는걸 물뽕을 맞았다고 한다. 사실 그리 치열하게 서핑을 하진 않았다. 그냥 예쁜 풍경 물이 나를 감싸안는 감각, 그리고 짭조름한 바다향과 섞인 커피콩향. 그런 것들을 느끼기만 했다.
이후 나는 일부러 파도가 거센 날만 바다에 들어갔다. 파도가 무섭지 않았고, 오히려 거센 파도가 내게 주는 통각이 나를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날엔 강습이 힘든 강사인 지희의 입장에선 달갑진 않았을 거다. 거센 파도에서 나는 통돌이를 정말 많이 당했다. 드럼세탁기에 빨래가 된 것처럼 부서지는 파도에 처맞고, 부딪히고, 고막을 정면으로 맞아 얼얼하고, 입과 코에선 바닷물이 흘러들어 가 온통 짠내가 몸에 가득했다. 짜디짠 바닷물에 눈이 매워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 파도 하나하나를 넘겨내는데 성취감을 느꼈다. 그러다 파도를 하나라도 타면 신이 났다.
파도에서 서서 정면으로 가는 연습을 하고, 그다음은 내가 탈 파도를 보는 연습을 했다. 내가 탈 좋은 파도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한다. 숏보드를 타냐, 롱보드를 타냐, 클래식이나 퍼포먼스냐, 내가 초보자냐 상급자냐. 경험에 맞춰 어떤 파도를 탈지 골라야 한다. 지희는 대화를 파도 위에 대화를 하다가도 시선은 늘 파도가 오는 쪽을 향해있었고,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맞는 파도를 보면 패들을 했다.
파도는 계속 온다. 한 파도를 놓치면 그다음 파도를 타면 된다. 그리고 그다음 파도를 놓치면 파도가 올 때까지 또 기다리면 된다. 파도는 계속 있다. 그리고 남이 탄 파도가 내 파도가 아닐 수 있고, 내 파도가 남에겐 좋지 않은 파도일 수 있다. 마치 인생과 같다. 이리 거센 파도도 타는데, 인생의 파도도 잘 탈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다른 파도, 마치 인생과 같은 파도가, 그 파도를 타려고 시도하는 자체가 나의 자기효능감을 높였다.
그래, 난 거센파도도 타는 사람이야
어떤 일이든 다 해낼 수 있어.
파도를 타듯 내 인생에서도 라이딩을 할거야.
난 서핑과 사별할거야.
이게 내가 서핑과 사별을 결심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