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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바람 Aug 07. 2023

서핑샵 일을 그만뒀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대, 그래도 평생 서퍼로 살 거야.

 양양에서 일하던 서핑샵을 그만뒀다. 3주 만의 일이다. 6월에서 7월로 넘어갈 무렵, 나는 서핑강사인 지희가 있는 양양서핑하러 갔다. 지희한테 강습을 받을 수 있다면 어떤 샵이든 상관없었기에 그냥 '나 갈게 예약 어떻게 해'라고 물어보고 또 훌쩍 양양으로 갔다.


 들어선 샵의 분위기는 임랑과 비슷하게 이국적인 동남아나 하와이의 물건들이 가득 있었지만, 분위기는 전혀 상반됐다. 부산 임랑의 샵은 쉬어가는 곳, 조용한 동네 이런 느낌이라면 이번에 지희가 일하게 된 샵은 노래부터 EDM이 나오는 굉장히 힙한 곳이었다. 당황했다. 조용한 곳을 생각하고 갔기에. 추후 알고 보니 샵마다 분위기는 전혀 다르고, 오는 분들도 엄청 달랐다. 지희가 일하는 샵에는 인스타에서 볼 수 있는 분들도 많았고, 서핑이 주목적이 아닌 밤에 일정이 있으신 분들도 많았다. 그 해변은 프로 서퍼들의 샵이 줄줄이 있어, 해당 해변에서 프로 서퍼들의 라이딩도 볼 수 있었다. 시합을 준비하고 치열하게 파도를 타기에 서로 견제하는 시선도 느낄 수 있었다.


라인업에 쭉 들어선 사람들은 많았다. 나는 그 옆에 스펀지 보드(그냥 초보라고 광고하는 거다)를 타고 둥둥 떠있다가 패들을 했다. 자신의 파도에 치열한 것도 있고, 아직 파도에서의 룰을 정확히 모르는 나는 욕도 몇 번 먹었다. 옆으로 나와달라거나, 앞에서 타지 말라는 그런 것들 말이다. 기가 죽었다.

지희가 라이딩하는 걸 봤다. 작년겨울 2달간 발리에서 전지훈련을 갔다 오더니 상당히 늘었다. 3년 차 여성 서퍼 중에는 상당히 잘 타는 수준에 드는 것이라고 한다. 이야기하는 것도 전문적인 서퍼의 느낌이 풍겼고, 역시나 지희는 작년보다 훨씬 성장해 있었다.


나도 잘 타고 싶다. 나도 파도를 잘 잡고 싶다. 그런 욕심이 또 넘쳐났다. 보드도 제대로 못 돌리는 주제에. 양양여행을 이틀 남기고, 지안이가 6년간 다니던 양양 서핑샵에 왔다. 지희는 먼저 퇴근을 하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묵던 나는 얼떨결에 손님분들과 사장님과 식사를 같이 하게 됐다. 술자리가 무르익고 남자분들은 헌팅을 하러 떠난다고 말했다. 사장님은 나도 같이 가라며 등을 떠밀었다. 그때 지안이가 양양에서 6년간 다닌 샵에 도착했고, 난 그 샵으로 놀러 가겠다 말했다.


 헌팅을 위해 서피비치에 가는 남성 두 분과 다른 서핑샵으로 놀러 가는 내가 같은 택시에 탔다. 오묘했다. 헌팅 가는 남성분과 서핑샵에서 다른 서핑샵으로 놀러 가는 상황이 언밸런스했다. 지안이가 다니던 서핑샵에 도착하자마자 지안이가 보였다. 너무 반가워서 창문을 내리고 지안 아라 외치며 뛰어내려 갔다. 술을 몇 잔 한터라 나의 엠비티아이는 소문자 e로 바뀌었고, 재롱을 떨며 자리를 이끌었다. 지안이 샵의 사장님은 본지 얼마 안돼 나를 마음에 들어 하셨다. '너 여기서 일해볼래? 시즌동안' 그 말에 매일 서핑을 할 수 있어 혹했지만 걱정이 됐다. 양양은 주민보다 주말에, 특히 여름시즌에 피서객들이 더 많은 그런 도시였다. 최근에는 풀파티나 해변디제잉파티 같은 것들도 발달해 밤마다 술과 노래가 가득한 그런 곳이다. (니중에 알고보니 해변에는 마약이 퍼져있고, 음주운전 등 불법적 요소가 가득했다. 마치 무법지대와 같았다.) 평소 그런 곳들을 즐기지 않고 그것은 나의 청춘이 아니었다. 나의 청춘은 글에 있으며, 지혜를 쌓는 것에 있고, 세상을 알아가는 것에 있었다. 그저 책을 읽고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 내가 이 도시에서 잘 버틸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들었다.

거기에, 2월까지 회사를 다니고 그만둔 뒤 정신적인 건강을 추스르고 있는 상태고 아직까지 좋은 상태는 아닌 데다가. 3주 전 놀러 간 계곡에서 방방 뛰어다니다 손가락도 금이가 골절된 상황이었다. 그래도 끝까지 같이 일해보고 싶다고 말씀하는 정이 많아 보이는 사장님 탓에, 그리고 양양에 다른 해변들과 다른 조용한 분위기 탓에 결국 다음날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때 '우리 같이 시즌 때 일하면서 재밌게 놀자'라고 했던 말의 의미를 이해했어야 했다.


 서울에서의 짐을 정리했다. 같이 살던 도영이한테 나 양양으로 갈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양이란 도시의 풍조 때문에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도영이는 주변의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나를 말렸다. 하지만 그때 내가 혹했던 건, 사장님이 하고 싶은걸 다 하게 해 주겠다는 말. 운전을 알려주겠다는 말. 책을 읽는 걸 자신도 좋아한다는 말. 매일 서핑을 할 수 있는 환경. 그 모든 것들이 미련 없이 서울 생활을 털고, 양양으로 향하게 했다.

 

 내가 일하기로 한 해변은 조용하고 한적했다. 물도 맑았고, 태풍 탓에 모래가 뒤집어져 지형도 얕게 바뀌었다. 오히려 뭍 쪽의 지형이 얕아야 파도가 더 좋게 온다고 한다. 거기에 방파제나, 다른 방해물 없이 펼쳐진 바다가 마음을 편하게 했다. 설레는 마음에 독서해야지하고 알라딘에서 읽을 책을 3권을 사갔고, 매일 전자책을 읽었다. 그러다가 미뤄왔던 주역, 사주공부도 꽂혀 공부를 시작해 보고, 설문해자의 언급이 있어 19만 원짜리 설문해자 시리즈책을 구매하기도 했다.샵의 사람들에게 그게 아니꼽게 보인 것도 있었다. 


 나는 아빠의 성실함을 배웠다. 늘 받는 것 이상으로 일하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했다. 회사를 다닐 때도, 사업을 할 때도 아빠는 늘 그랬다. 난 그런 것을 보고 자랐고, 자연스레 그런 태도가 기회를 하나라도 더 만든다는 걸 알았다. 실제로 이런 성격덕에 전공, 복수전공 교수님들의 예쁨을 한 몸에 받기도 했고, 일을 해보자는 소리도 몇 번 들었으니 말이다.


 나는 선뜻 함께 일해보자고 말해준 사장님의 말이 고마웠다. 그 고마움에 보답을 하기 위해, 그리고 내 삶의 태도를 이어가기 위해 서울에서의 삶보다 더 부지런 떨기로 했다. 매일 5시에 일어나 매장 청소를 하고, 바다에 들어갔다. 보드와 친해지는 연습도 하고, 입영연습, 수영연습도 하고, 패들연습도 했다. 그리고 8시 30분쯤 퇴수해 9시에 출근을 했다. 손님이 없으면 독서를 하고, 하루에 3권을 읽었다. 거의 책을 먹어치웠다는 표현이 맞겠다.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저녁엔 요리를 하고, 늦은 술자리를 정리하고. 일하다 보니 이상한 것을 느꼈다. 쉴 수 있다고 했는데, 주 7일 근무를 하고 있었고, 4시간만 근무를 한다고 했는데, 숙식 일이다 보니 출퇴근 시간이 명확하게 없었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 안돼 다시 임금이야기를 꺼냈다. 처음에 들었던 금액과 달랐다. 찾아보니 2023년 최저시급보다 더 적은 금액이었고, 그 부분에 대해 사장님께 말을 하니 동업자가 있어서 그 부분은 그 사장님이 관리하니 그 사람에게 말하라고 자꾸 회피했다. 저녁 술자리에서 그 사장님이 서울에 있으니 불러서 얘기해 보라고 말했다. 중간에 다른 스탭은 나랑 동갑이었는데, 작년에 1년 더 일했다고 그 친구에게 연락을 맡겼다. 나는 급여에 대한, 그리고 근무 시간에 대한 의견을  말하며 어서 연락해서 오시라고 하라고 말했다. 그 친구는 부담을 느꼈는지 2주 만에 동업자 사장님께 연락을 드렸다. 동업자 사장님이 현장사장님께 연락을 했나 보다. 현장 사장님이 화가 나 친구에게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해'라고 말했다. 임금 협상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었냐고, 이미 확정된 거 아니냐고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얘길 왜 이제 서야 하냐고 말했다.

 동업자 사장님이 양양에 오셨다. 현장 사장님은 그 사장님을 굉장히 달가워하지 않았다. 나는 동업자 사장님께 임금이야기를 했다. 감정을 배제한 채 논리적으로 이야기가 잘 통했다. '내가 임금에 대해 불만을 느낀 건 최저시급보다 적은 것도 있지만, 내가 맡고 있는 일이 많은 것도 있다.'라 말했다. 그랬더니 동업자 사장님이 그 부분은 현장 사장님과 얘기해 정확한 역할분배를 하도록 하겠다고 말하며, 상황이 종료됐다. 그전에 같이 일하는 분들이 내게 너무 감정적으로 굴어 여러 말다툼이 있었던 건 생략하도록 하겠다. 내가 마치 투견이 된 느낌이었다. 당시의 감정은 너무나도 스트레스를 받아 '먼저 한 대만 때려라 그냥 싸우자'이런 마인드였다. 감정적인 학대를 너무 많이 받았다.


다음날 이런 상황을 혼자 해결한다는 것에 부담을 너무 많이 받아 필요시약을 3알 정도 먹었다. 당연히 잠이 왔고, 20분만 자고 온다는 걸 저녁시간에야 일어났다. 아무도 나를 깨우지 않았다. 동업자 사장님은 집에 가고 난 뒤였다. 저녁을 먹을 때 다들 말이 없었다. 용기를 내서 사장님께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동업자 사장님과 이야기를 잘 마쳤냐고 하니까, 상당히 불쾌했다 말했다.

동업자이긴 한데 동생이고, 현장을 오지 않은지 꽤 된 분이 현장의 일에 관여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장님이 아닌 동업자 사장님에게 힘든점을 토로한것도 좋아하지않았다. 내게 한 번이라도 무엇이 힘드냐고 물어본 적도 없었는데 말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내 상황에 이해를 바랐으나, 모두들 내 상태와 의견을 방관하고 외면했다. 이런 태도는 텃세로 느껴졌다. 아무리 대화로 해결하려 애써도 내 말을 듣지 않고 자꾸만 뒤에서 이야기가 새 나왔다.

 그러나 난 그곳에서 쉬이 발을 뗄 수 없었다. 사람을 너무 좋아하고, 정을 많이 줬고, 이해하려 노력했기에. 아무리 미워도 정이 있다고, 정을 넘칠 만큼 줘버렸다. 너무 배려하고 희생했다. 너무 열심히 했다. 그러지 않아도 되고, 오히려 그게 부담스러울지 몰랐다.

결국 그게 쌓이고 쌓여 공황발작을 일으켰다. 30분가량을 소방차를 타고 갔는데, 진정제 수액을 맞을 수 없었다. 아픈데 제대로 된 처방을 받지 못한 채 다시 돌아왔다.


다음날 서울로 향했다. 서울에 가는 김에 바다의 짠물이 아닌 다니던 올림픽수영장의 물에서 헤엄치고 싶었다. 수영 모임분들과 수영을 갔다. 자유수영 인원제한으로 인해 수영을 하진 못했지만, 내가 일하는 곳의 상황을 얘기하고 정상적인 판당을 할 수 있었다.

그날 강습이 있던 소영언니는 그냥 바다를 가고 싶다며, 다음 날 나와 함께 양양으로 나섰다.

가는 길에 차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했다. 업무 역할분담의 문제,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동료와의 관계, 사장님과의 갈등까지. 10살 연상이던 언니는 상황을 보더니 '너는 여기에 맞지 않는 사람이야'라고 말했다. 네가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언니의 의견은 이러했다. 10년이 된 서핑샵은 숙박이 주상품이었고, 시즌에 2달 정도 반짝 장사를 하는 곳이다. 강습이 주류가 아니고, 그냥 적당히 숙박 주류로 2달 운영하면 적당히 벌 수 있는 곳이다. 근데 같이 술마시며 재밌게 놀려 했던 알바가 이것저것 문제를 제기하며, 일을 자꾸 만드는데 사장님 입장에선 피곤할 수밖에 없다는 것. 거기에 직원들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며 날 피곤해했다. 나중엔 말도 걸지 않았으니 말이다. 양양의 환경과 유흥을 즐기며 일하는데 내게 그건 절대 메리트가 아니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랬다. 갈수록 강습 손님이 줄어든다는 말에 마케팅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이벤트를 할지, 브랜드 스폰서쉽을 받을지, 사이트는 어떻게 수정할지, 디지털 광고는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식재료 관리 및 금액적인 부분도 엑셀에 수식을 넣어 파일을 만들었다.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 애정을 가지고 한 일인데 사장님은 그 모든 걸 다 달가워하지 않았다. 직원들도 날 아니곱게 봤다. 네 업장이 아니고 알바일 뿐인데 왜 그런걸 고민하냐고.

나는 문제를 해결하고, 개선하는 사람이었고, 그곳은 그냥 2달간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곳이었다. 소영언니는 '넌 이곳과 맞지 않아, 그냥 다른 이유는 없어 넌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인 거야. 너무 속상해하지 마' 라며 현실적인 조언을 했다.


결국 그만두기로 했다. 이곳은 나와 맞지 않았다. 학부생 시절 선배의 권유로 패트롤(스키장안전요원)일 했었다. 그 일을 하면서 스키를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위계질서와 군기들이 나와 맞지 않아 한 달가량 일하다 그만 다. 그땐 스키자체가 싫어져, 스키는 쳐다도 안 봤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계속 서퍼로 남고 싶다. 나는 서핑이 너무 좋다. 서핑이 나를 살린다. 자연과 함께하는 게, 물에 들어가 있는 게, 그 물이 나를 안는 게. 물을 잡아 갈라지는 감각이 느껴지는게, 그리고 보드를 멈출 때 나를 가로지르는 물의 촉감이 발끝에 물이 스치는 말랑한 느낌이 좋다. 바다향기, 매일 다른 파도, 매일 다른 풍경. 나는 서핑과 사랑에 빠졌다. 

이런 감정은 반드시 사랑이다. 보고 싶고, 그립고, 더 잘하고 싶은 그런 마음. 바다를 사랑하고, 서핑을 사랑한다. 그 마음으로 버텨왔던 거겠지. 난 결국 바다로 향할 거고 파도를 잘 타게 될 거다. 내 마음은 늘 그 방향에 있으니까.

서핑샵일은 금방 그만두게 됐고, 건강상태가 좀 악화되긴 했지만 그곳에서 내가 목표가 생겼다. 알게된 것 또한 많았다.

우선, 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즐기고 군대스타일(상명하복)은 절대 아니라는 것

두 번째론. 올해 안에 라이프가드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

라이프가드 강사인 손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니 라이프가드 취득해서 잠깐이라도 관련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세 번째, 브런치에 글을 써 언젠가 내 책을 내는 것.

 줄 곧 바다에 앉아 글을 쓰는 게 나의 꿈이었다. 그걸 잊고 살았는데 샵에 혼자 온 한 남자 손님이 글을 쓰고 있었다. 추후 물어보니 눈을 반짝이며 브런치 작가이며, 책을 내는 게 목표라 말했다. 무기력에 잊고 있던 내 꿈이 다시 생각났다. 마치 창고에서 자주 가지고 놀던 먼지 쌓인 장난감을 찾은 느낌. 나도 그의 목표를 슬쩍 따라보기로 했다.

네 번째, 발리 서핑트립을 위해 돈을 모을 것.

일을 그만둬도 매일 파도가 어떨지, 이제 어디 가서 서핑을 할지, 서핑실력을 어떻게 늘릴 수 있는지 그런 생각뿐이다. 그러니 그냥 서핑을 할 수 있는 도시로 가서 돈을 모아 서핑으로 유명한 발리에 단기로 떠나야지. 그곳에서 실력을 늘릴 거다.


이렇듯 힘든 일도 많았지만, 내 인생의 방향에 대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배우 박정민의 쓸만한 인간에서는 '고구마를 은 곳에 민들레가 피어도 웃자'라 말한다. 이 문구는 나의 삶의 태도가 됐다.

비록 힘들고, 건강도 조금 안 좋아졌지만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을 해봤기에 미련이 없다. 일을 하기 전과 후를 비교했을 때 단기간 내에 확실히 성장했기에 그냥 그런 일도 있었지 하며 웃으며 넘기려 한다. 또 시간이 지나면 감정은 퇴색하고 그리운 추억으로만 남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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