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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바람 Aug 09. 2023

태풍 전 파도타기

거센 파도에서 라인업, 그리고 내가 서핑샵을 그만둔 이유

 양양에서의 짐을 정리하고, 서핑샵을 떠나 서울에 갔다. 서울에 방문한 까닭은 모임의 언니가 나와 내 짐을 가지고 서울에 데려다줬던 것도 있지만, 1년간 열심히 참여했던 수영모임 분들이 그리운 마음도 있었다. (어쩌다 보니 열심히 참석해서 운영진을 맡기도 했었다. 지금은 일반회원이지만.)

양양을 떠난 바로 다음날 올림픽 수영장에 갔다. 짠 바닷물이 아닌 수영장의 물에서 수영을 했다. 확실히 바닷물보다 부력이 덜했다. 물을 잡을 때 저항도 조금 더 있고, 더 단단했다. 입영을 할 때도, 바다보다 몸이 덜 떴다. 바다의 조류가, 그리고 파도 없는 곳에서 영법을 연습할 수 있는 건 너무 좋았지만, 레일 속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그 순서에 맞춰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답답함을 느꼈다.

 1시간 30분가량의 수영을 끝나곤 저녁을 함께했다. 모임사람들은 모임장님이 엄격하게 관리해서인지, 모두 좋은 분이고 다 편하다. 다음날엔 친구와 밥도 먹었다. 양양에서 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앞으로 에 목표들에 대해, 그동안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했다. 3주 만에 보는 거였는데. 역시 어제 본 것처럼 편했다.


 화요일, 내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포항이다.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 중 포항에서 선박 사업을 하는 삼촌이 있다. 그 삼촌이 기분 전환할 겸 울릉도에 놀러 오는 것이 어떠냐 물었다.

 "그래" 하고 또 대책 없이 포항으로 향했다. 월요일 저녁 포항으로 가는 버스를 예약하고, 당일 숙소를 예약했다. 작년에 갔던 포항의 서핑샵에서 실컷 서핑하고 울릉도로 넘어갈 심산이었으나, 수요일, 목요일이 태풍영향권이기에 내가 서핑을 할 수 있는 날은 포항으로 넘어가는 당일인 화요일밖에 없었다.

 6시에 일어나 서울역으로 향했다. 10시 30분경 포항에 도착했고, 포항으로 가는 KTX안에서 보드렌탈 예약했다. 하지만, 오늘의 파도는 정말 크고 *챠피해서 안전상의 문제 탓에 렌탈은 어렵다고 했다. 그럼 마침 사이드라이딩 강습이 있길래, 강습을 신청했다.

 태풍 전의 파도, 오히려 가슴이 두근거렸다. 태풍 전의 파도는 얼마나 매섭고, 나를 힘들게 할까.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 파도마저 이겨내겠지. 그런 용기가 있었다. 서핑을 잘하기 위해선 많이 물에 들어가 보고, 많은 파도를 경험해 보는 게 제일이라고 한다. 나는 태풍 전의 파도 또 하나의 바다 데이터를 쌓고 싶었다. 난 어떤 파도든 그 파도와 함께하며 친해질 자신이 있었다.

 오후 1시, 강습이 시작됐다. 작년에도 느낀 건데  포항파도는 정말 힘이 좋다. 패들링을 하지 않아도 테이크오프가 됐고, 거센 파도에 가만히 있어도 몸이 휘청거렸다. 거품파도에서 사이드라이딩을 시도했으나 뭍이 너무 얕아 핀이 바닥에 박혔다.

 나중에 숏보드를 들고 온 코치님과 라인업을 들어가기로 했다. 조류가 너무 심해 순식간에 휩쓸려갔고, *라인업도 힘들었다. 또 눈앞에 오는 큰 구름과 같은 파도를 오기로 뚫어보겠다고, 밀려나고 또 밀려나고 밀려나도 앞으로 향했다. 오기를 부렸다. 이 파도를 뚫어보겠노라고. 먼저 라인업을 하신 숏보더 분이 내게 신호를 보냈다. 정신을 차리니 조류에 휩쓸려 한참 떠내려갔다. 육지 쪽으로 빠져서 처음 입수를 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원래 강습을 해주던 강사님이 조류에 떠밀려가면 꼭 확인하고, 육지로 나와 무조건 돌아가야 한다고 빨리 새끼손가락 걸라고 했다.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그리곤 당차게 말했다.


"저 오늘 라인업 성공할 때까지 집 안 갈 거예요."


옆에 계신 다른 직원분이 또 다른 팁을 알려줬다. 큰 파도가 오면 그냥 보드를 들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그런 사소한 팁들 하나가 할 수 있다고 응원해 주는 환경 이게 내가 진정 바랬던 서핑 환경이었다.


다시 숏보드를 든 코치님과 라인업을 들어가기로 했다. 온몸에 엔도르핀이 돌았다. 흥분됐다. 온몸의 근육하나하나가 파도를 버티기 위해 쓰였다. 물에 맞아 뒤로 밀려나는 통각도, 거센 파도에 지쳐 떨리는 근육도 그냥 파도와 함께하고 자연과 함께하는 그 순간이 너무 좋다. 자연이 온전히 나를 받아줬다.


 이번엔 조류에 휩쓸릴 것까지 계산해 저 위쪽에서부터 라인업을 시도했다. 처음 라인업을 시도했을 때보다 비교적 파도가 잔잔해졌고, 이번엔 파도의 *피크 쪽이 아닌 나중에 부서지는 비교적 작은 파도 쪽으로 계속 이동하며 라인업으로 이동했다. 마지막엔 광배근이 뻐근할 정도로 *패들질해 라인업으로 들어갔다. 세찬 바람에 바다는 폭풍우를 만난 것처럼 거세게 울렁거렸다. 이런 파도는 또 처음이었다. 그래도 난 그곳에 앉아 파도를 기다렸다.

몇 번 라이딩을 시도했으나, *노즈가 잠겼고, *와이프 아웃이 됐다. 사이드 라이딩 강습이었지만 사이드 라이딩을 시도하진 못했다. 하지만 난 이런 파도에 라이딩을 시도한 사실에 너무 만족한다.

 2시간 30분 정도의 강습을 마치고, 샵에 돌아왔다. 작년에 뵀던 샵의 사장님이 계셨다. "저희 작년에 뵀었죠"라며 말을 이어갔다. 양양의 서핑샵에서 있던 일들을 말했다. 주 7일 업무, 그리고 최저시급보다 낮은 임금, 마지막으로 웻슈트를 입고 있던 신체부위를 노골적으로 도촬 당한 것까지. 포항 사장님은 정말 잘못된 일이고 아직도 그런 곳이 있냐고 물었다. 샵의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내 신체부위를 도촬 당했다. 그리고 그걸 자세 피드백 하는 자리에서 다 같이 그 영상을 봤고 사장님이 장난으로 찍었나 보지 하며 웃으며 넘어갔다. 정말 수치스럽고 불쾌했다. 다른 영상이 나올 때 "저거 도촬 아니에요?"라고 말하니 이상한 사람 취급당했다. 당시에 같이 일하던 분께 급여문제 제기를 하고, 상의할 때 그분이 그런 말을 했다.

"네가 서핑씬에 계속 있을 거면 조용히 나가. 여기서 문제 일으키고 나가면 넌 다른 서핑샵에서 서핑하는 것조차 거부당할 수 있어. 바다에서 넌 쫓겨날 거야"라며 내게 겁을 줬다.


그러나, 다른 샵의 사장님과 이야기를 해보니 이건 내게 겁을 준거고 가스라이팅을 한 거였다. 내 신체 부위를 도촬 당한 것은 그리고 그걸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당연하게 생각한 것은 그냥 넘어가면 내게 평생 상처로 남을 것 같다. 일하던 샵의 동업자 대표님께 이 문제를 말씀드렸다. 영상을 확인해 보고 피드백을 준다고 하셨다.


 태풍 전 파도를 타고 온 지금 난 인생의 또 다른 태풍 전 파도를 타게 됐다. 난 노사관계에서, 그걸 넘어 그런 장난스러운 촬영일지라도 남의 신체부위를 찍는 건 불쾌한 일이고 합법적인 일이 아니라는 걸 안다. 이에, 명확한 사과를 받아낼 거다. 다시는 그 샵에 발을 붙일 수 없게 되더라도 말이다.


나, 늘 말하듯 난 서핑이 너무 좋다. 오로지 서핑이 좋다는 마음으로 그 모든 걸 버텼다. 서핑은 죄가 없다. 포항 샵의 사장님이 "서핑을 좋아하는걸 너무 티 냈어, 나도 17년도에 그 마음을 이용당한 적이 있었어"라고 말했다. 덧붙여, "아마 처음일한 샵에서 그런 일을 당했으면 그 기억 때문에 다시 샵에서 일하기는 힘들 거야 다른일을 하면서 서핑을 하자 고생했어"라고 말해줬다. 위안을 얻었다. 내게 서핑은 업이아닌 진심으로 좋아하는 취미일거다. 평생동안. 그 도촬 당했던 기억이, 그때의 불쾌감이, 아무렇지 않게 넘기며 나를 이상한 사람취급한 게 자꾸만 나를 괴롭힌다. 다시 복용하는 필요시 약이 늘었다. 하루에 적어도 3알은 먹어야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래도 파도가 내게 위안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핑이 너무 좋다.
 난 정말 서핑이랑 사별을 해야 하나 보다.




[서핑용어]


*라인업 : 파도가 부서지는 바깥쪽. 서퍼들은 일반적으로 이곳에서 라이딩을 위해 기다린다.

*챠피 : 잔물결이 이는 바다. 서핑하기 좋지 않은 바다 들쭉날쭉한 상태

*피크 : 파도의 가장 높은 부분

*패들 : 서프보드 위에 엎드려 양손으로 물을 저어 앞으로 나가는 기술




[서핑필수용어]

https://www.wsbfarm.com/magazine/LessonView?pageNo=2&magazineIndex=247

출처 : wsbfar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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