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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트라우마

우발적 불안

by 바다바람

나는 곤두서있다. 문 닫히는 소리만 크게 나면 흠칫 떨고 심장이 쾅쾅 뛴다. 이제서 알았다. 사건 이후에 가해자가 나를 찾아오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었던 시기가 있었다. 마주치지 않을까 늘 경계로 1년을 넘는 시간 동안 살아왔고, 그게 몸에 베여버렸는지 사소한 소리에도 흠칫 놀라며 불안에 떨곤 한다.


그가 사는 동네는 하필 우리 집과 가까워선. 어디를 나갈 때마다 그와 닮은 체형에 놀라고, 그와 닮은 목소리에 놀라고, 그와 닮은 얼굴에 놀라고.

더 심해지더니 그와 관련된 단어, 사건과 관련된 단어 그의 이름, 그가 내게 했던 짓, 그의 종교, 그의 종교, 그의 학교, 그의 부모님의 지병까지. 그 모든 게 내겐 기억을 반추하는 매개체가 됐고, 그것은 가지를 끊임없이 뻗어내어 내 일상을 옭아맸다.


우발적인 불안. 예측할 수 없는 불안이 참. 어두운 길을 걷거나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바닷속에는 잘 만들어가면서 그 사소한 것에 놀란다. 소라게가 제집에 숨어 들어가듯 난 이불을 둘둘 말고 그 안에 웅크려있는다. 이 불안은 나를 훨씬 예민한 기질로 만들었고 삶을 살아가기에 너무나도 피곤한 성질이 되어버렸다.


"보통의 사람"이라는 사회적 기준에 벗어 났다고 해야 하나. 성실하고 꾸준한 게 내 트렌드 마크였는데 (한국 사람의 트렌드 마크겠지만) 요즘은 성실이 힘들다. 성실이. 이걸 안 좋게 보는 사람이 다반수 일 것이다. 난 그렇지 않게 보이기 위해 평소보다 더 많은 에너지와 정신력을 쓸 것이고, 그렇게 잔뜩 힘들어간 삶을 살다 보니 제 풀에 지쳐버리는 거다.


이유 모르는 무기력의 이유가 이게 아닐까? 하나의 해답을 찾은 느낌. 그래도 히스테릭한 사람이 되기 싫다. 아픈 사람이 되기 싫다. 한가한 사람이 되기 싫다. 그래 남이 봤을 때 한심한 사람이 되기 싫다. 내가 아픈 기간을 모조리 덮어낼 정도로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그 멋짐이 나를 가려줄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러면 세상에 나아가야 하고, 세상에는 우발적 불안요소들이 너무 많다. 결국은 이겨내는 법을 평생 동안 터득해가지 않을까. 얼마나 걸릴진 몰라도 차차 요령이 생기겠지. 그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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