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돌아왔다. 옷 지옥. 한나절 동안 먼지를 들이마시며 옷방을 헤매다 왔는데 뭐가 달라진 거지. 머리를 쥐어뜯으며 후회하지만 매번 비슷한 일은 반복된다. 옷걸이에 걸었다가, 서랍장에 넣었다가, 버리려던 옷을 다시 주워드는 내 꼬락서니가 한심하다. 산더미처럼 쌓인 옷만큼 한숨도 늘어난다. 이쯤에서 벌써 ‘다 갖다 버리면 되잖아.’라고 하실 분이 계실 거다. 사람 한 번만에 고쳐쓰기 어렵다. 천지개벽을 하든가 일신상의 중대 변화가 아니고서야 특히 나같이 무엇이든 쌓아 두고 사는 사람에게는.
분기별로 옷 정리를 한다. 평상복으로 입는 옷, 가벼운 외출복, 다림질이 필요한 것들로 분류하고 찾기 쉽게 정리한다. 계절이 바뀐 옷은 서랍이나 손이 잘 안 닿는 윗 칸. 자주 찾는 옷은 앞쪽으로 걸어두는 정도다. 누구나 하는 대단찮은 일이다. 문제는 옷이 차고 넘쳐 정리해도 헛수고에 그친다는 점이다. 몇 시간씩 다림질해서 곱게 걸어둬도 비좁은 틈바구니에서 칼주름과 빳빳함을 유지하기 힘들다. 지들끼리 부딪혀 ‘아악 내 팔’을 부르짖으며 막상 입으려고 보면 내 이마의 주름보다 더 깊게 파인 주름이 째려보고 있다.
옷을 좋아한다. 사는 것도 입는 것도.
직장 다닐 때 보름 안에 같은 옷을 입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한 계절에 두어 번 입고 나면 계절이 바뀐다. 굳이 같은 옷을 입지 않으려 애쓸 필요도 없다. 옷장에는 언제나 입어 주기를 기다리는 옷들이 번호표를 뽐고 기다리니까. 삼십 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한 데다 체형이 그다지 변하지 않았으니 오래된 옷이라도 마음에 들면 버리지 않는다. 덕분인지 때문인지 아무튼 옷 산을 이루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선호하는 형태의 옷이 있다. 특히 내 나이 또래의 여교사나 공무원은 단정한 정장이나 편하면서도 무난한 옷을 찾는다. 새 옷을 사도 형태면에서 큰 차이가 없고 무채색이 주를 이룬다.
나는 달랐다. 젊어서부터 퇴직하던 해까지도 옷의 형태나 색이 다양했다. 자유분방하게 생긴 얼굴만큼이나 옷도 자유분방함을 추구한다. 정해진 스타일이 없는 것이 스타일인 셈이다. 정장부터 캐주얼, 집시풍, 하늘하늘 샤방샤방한 공주 치마. 찢청, 스키니 등 가리지 않고 입고 싶은 옷을 입는다. 딱히 좋아하는 형태가 없다 보니 종류가 많아지고 그에 맞춰 장신구와 신발, 가방도 덩달아 늘어난다. 사는 것도 문제지만 늘어나는 물건에 비해 좀체 버리지 않아 방 안 가득 옷과 가방들로 넘쳐나고 신발장에는 구두, 운동화, 부츠가 비좁다고 아우성이다.
퇴직한 첫 해. 더 이상 옷을 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가진 옷만으로도 죽을 때까지 입을 수 있으니 옷이 필요하지도, 사고 싶지도 않을 것이라 여겼다. 마침 코로나로 모임도 없었다. 두 번째 해 역시 집을 지으면서 현장을 다니다 보니 작업복 몇 벌이면 충분했다. 퇴직 삼 년째. 병이 도지기 시작했다. 작심 이 년이었다. 택배상자가 야금야금 늘어나고 있다. 이미 있는 옷도 시골 아지매의 관상용으로 자리만 차지하는데.
도대체 왜 이 모양일까?
옷뿐만 아니다. 물건을 쟁여 두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 똑 떨어지기 전에 구매하는 버릇에다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하다 보니 대량 구매를 한다. 주방 수납장, 거실, 창고할 것 없이 세제와 물휴지 같은 생필품부터 식료품들이 점령군이 되어 집주인 행세를 한다. 한동안은 그릇에 꽂혀 정신없이 사들였다. 유행하는 꽃무늬 그릇을, 생활 자기에 유기그릇까지. 계절 따라 음식 따라 그릇을 달리 쓰다 그것도 시들해졌다. 집에 있는 그릇으로 백 명의 손님은 너끈히 치를 수 있을 거다. 물론 백 명을 부를 일도 없겠지만.
물건이 주인인 집이 되었다. 집이 넓어야 했고 감출 수 있는 수납공간이 필요했다. 교외에 집을 지으면서 평면도를 직접 그렸다. 생활 습관과 동선을 고려하고 수납공간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많은 물건을 버렸지만 이삿짐업체 직원은 혀를 내둘렀다. 이사 후 얼마간은 구석구석 빈 공간 없이 꽉꽉 들어찬 수납장에 잘 정리된 물건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만족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빈 공간이 없으니 여백의 미가 없다. 화분 둘 자리조차 마땅찮다. 과욕이 부른 참사다.
날마다 배송되는 택배 상자에 남편의 눈도 덩달아 돌아갔다. 퇴직 전. 일찍 퇴근한 남편은 하루에도 몇 개씩 아파트 문 앞에 쌓인 택배상자를 차마 사뿐히 지르밟진 못하고 발로 툭툭 차 버렸다. 이제 상자 안내용물이 바뀌어선지 ‘또~’하면서도 힐긋 보고 만다. 상자 안엔 주로 먹거리, 생필품, 강아지와 고양이 사료, 간식들이다.
과연 내게 미니멀한 생은 있기나 한가. 이구석 저구석에 쌓인 물건들이 밤이면 나를 노려 보는 것 같다. 지구에게 미안하고 부끄럽다는 말은 쓰기도 낯간지럽다. 과소비와 충동구매 쌍둥이 자매가 더는 내 삶에 끼어들지 못하게 해야겠다. 지금 필요한 건 뭐? 버리는 용기와 절제지. 한꺼번에 버릴 만한 용기는 아직 없다. 하나씩 둘씩 비우다 보면 꽉꽉 채워진 물건들이 주는 숨 막힘이 아니라 공간의 여백이 주는 편안함을 느끼는 날이 오겠지.
옷을 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공허한 말임을 여러 차례 경험한 남편은 콧방귀를 뀐다. 강력한 벌칙이 있어야 한단다. 그는 내게 가장 큰 타격감을 줄 벌칙을 고민하고 있다. 그러시든가. 벌칙 때문이 아니라 이번만큼은 확고한 의지를 보여 줄테다. 내 말을 완전 무시하는 당신 말고 나 자신에게. 그래서 글로 나의 만행을 자수함과 아울러 공개적으로 나의 결심을 밝힌다.
1. 앞으로 최소 일 년간(현실성을 고려함) 옷, 모자, 신발 등 내 치장과 관련된 어떤 물건도 사지 않는다.